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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지 말지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여전히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by Francis Lee

16장. 떠날지 말지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 유예의 신앙을 허락하기


많은 신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결단 그 자체가 아니라, 결단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죄책감이다. 떠나야 할 것 같으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야 할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따라가지 않을 때 사람은 스스로를 비난한다.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가?’, ‘이 정도면 이미 답이 나온 것 아닌가?’라는 자책이 반복된다. 게다가 교회 문화는 이러한 자책을 더욱 강화한다. 결단은 믿음의 증거로, 머뭇거림은 불신이나 나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신앙의 전환이 즉각적인 결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신앙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즉각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삶의 구조, 관계, 정체성과 깊이 얽혀 있는 신앙의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떠남’과 ‘남음’은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세계관과 언어, 관계망 전체의 재구성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는 지금 여기에서 ‘당장’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한다. 이 장은 바로 그 규정을 멈추기 위해 쓰였다.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비겁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이 정직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다. 감정이 가라앉고, 분노와 실망이 정제되며,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반응이었는지를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필요한 시간이다. 서둘러 내린 결단은 종종 또 다른 후회를 낳는다. 유예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더 책임 있는 선택을 위한 준비다.


복음서가 그려내는 예수의 제자들 또한 즉각적인 확신의 모델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주 오해했으며, 서로 경쟁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쳤다. 어떤 제자는 끝까지 침묵했고, 어떤 제자는 배반했고, 또 다른 제자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는 이 과정을 제자의 실패로만 규정하지 않았다. 질문과 머뭇거림, 되돌아섬과 재시작의 반복 자체가 제자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오랫동안 ‘결단의 신앙’을 이상화해 왔다. 언제 회심했는지, 언제 헌신을 결단했는지, 언제 직분을 수락했는지가 마치 신앙의 깊이를 가늠하는 지표처럼 사용되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유예는 늘 불완전한 상태, 미완의 신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언제나 빠른 결단으로만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머무는 시간, 결정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신앙은 불필요한 층위를 벗겨내고 본질에 가까워진다.

이 장에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유예의 신앙’이다. 지금은 떠나지도, 완전히 남지도 않는 상태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이 상태는 애매함이 아니라 과도기다. 과도기는 정체가 아니라 이동의 한 방식이다. 목적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더라도, 무엇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는 분명해지는 시간이다.

유예의 시간 동안 신앙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내부의 감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기대, 공동체의 언어, 성공적인 신앙인의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상태를 관찰하게 된다. 이는 무엇이 나를 살리는지, 무엇이 나를 마르게 하는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예배에 참석했을 때 숨이 쉬어지는지,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확장되는지, 혹은 점점 위축되는지와 같은 미세한 신호들이 중요해진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과도한 해석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감정의 기복을 곧 신앙의 성공과 실패로 환원하지 않고, 잠시의 거리 두기를 배교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유예의 신앙은 ‘아직 결정하지 않음’을 그저 하나의 정당한 상태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또한 유예는 혼자만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공동체 활동을 중단하지 않더라도, 참여의 밀도를 조절하고 언어의 노출을 줄이는 방식으로도 유예는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속도를 낮출 때 비로소 자신의 방향 감각이 회복된다.


이 장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신앙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서두르지 않음은 불신이 아니라 존중이다. 자신의 내면과 삶의 조건을 존중하는 태도 없이는 어떤 결단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떠날지 말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시간은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재배열되는 시간이며, 언젠가 내리게 될 선택을 더 정직하게 만드는 준비 기간이다. 유예의 신앙을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 신앙은 다시 강요가 아니라 길이 된다.

� <이 장을 읽고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나는 언제 떠날 것인가?” 대신 “나는 언제 숨이 막히는가?”를 화두로 자신의 교회 안에서의 삶을 기록해 본다. 떠남의 기준은 교회의 문제 목록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 감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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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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