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예수는 왜 오해받기를 감수했는가
우리는 보통 오해받는 것을 피하려 한다. 설명하고, 해명하고,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싶어 한다. 특히 신앙의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논쟁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그런 뜻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고, “오해하지 말라.”라고 요청하고 싶다. 그러나 복음서를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는 놀라울 만큼 자신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하거나, 더 오해를 부르는 말을 덧붙이거나, 아예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런 예수를 안타깝게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왜 그랬을까?’ 더 나아가 ‘예수는 왜 이해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했을까?’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이유다.
예수는 자신의 의도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았다. 예수의 비유는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미 오해를 전제로 한 언어이다. 예수가 한 이야기를 함께 듣고도 어떤 이는 알아듣고, 어떤 이는 분노하며, 어떤 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제자들조차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런데도 예수는 모든 비유를 해설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심한 듯 이렇게 말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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