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가까이 된다.
요즘 인터넷에 자료를 검색해 보면 기독교가 거의 망해가는 분위기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다. 질문이 '과연 기독교가 망할까?'에서 '기독교는 언제 망할까?'로 바뀐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데 통계 자료를 보면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신자가 22억 명으로 단일 종교로는 가장 많은 추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망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부터 망해온 종교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을 뿐이다.
지난주에 발표된 독일 가톨릭교회의 통계를 보니 2022년 한 해에 50만 명이 넘는 독일 가톨릭 신자가 교회를 떠났다. 10년 전만 해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가 10만 명 대였는데 10년 만에 50만 명 대를 넘어선 것이다. 독일 가톨릭 신자 수는 2천만 명을 겨우 턱걸이하는 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1~2년 사이에 1천만 명대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데에는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현재 독일의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행과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교구의 비리에 관한 보고서가 교구별로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비리에 충격을 받은 독일 사회와 언론이 꼼꼼하게 보도하고 관심을 두었지만, 이제는 뉴스거리조차도 안 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가톨릭 성직자의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독일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한때 가톨릭의 꽃으로 불리던 프랑스는 아예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자체 조사를 통해 수십만 건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음을 고백하였다. 가톨릭의 진주로 불리던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 최고 수장이나 다름없던 자가 내연녀 사이에 자식을 둔 것이 드러나 난리가 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성직자가 주중에는 동성애를 하다가 주말에만 사제가 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것이 오래다.
가톨릭 성직자가 성폭력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의 본부인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돈을 둘러싼 비리는 이미 여러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바티칸의 ‘비리’ 척결에 나섰지만, 바티칸의 실권을 쥐고 있는 ‘추기경 마피아’ 세력은 노쇠한 교황이 죽을 날만 손꼽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가톨릭교회만 이리 타락했나? 물론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미 오래전부터 목격한 대로 개신교는 타락과 부패에서 가톨릭교회를 능가할 정도다. 한국 개신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형 교회의 부패는 미국의 이른바 메가-처치(mega-church)가 이미 오래전부터 ‘모범’을 보여왔다. 간통과 횡령으로 걸린 목사가 자기가 운영하는 방송 TV 카메라 앞에 아내와 함께 나와 악어의 눈물로 '회개 쇼'를 벌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 왜 나갈까? 그런 타락한 성직자는 극소수여서?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도덕성으로 교회가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 설립 초기부터 도덕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이미 예수의 직제자인 베드로와 자칭 사도인 바오로와는 처음부터 파벌 전쟁을 벌이며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기독교를 탄압했던 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혼자 생전 모르던 예수를 보았고 예수가 자기를 사도로 세상에 보냈다고 주장하는 데 베드로가 열불이 안 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베드로가 가지지 못한 권력과 돈이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무척 가난했다. 초대 교회에서도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바오로가 수시로 돈을 바치자 내분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의 ‘정통’ 교회는 베드로와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가 관리하고 소아시아 지방에 바오로가 예수 이름으로 세운 교회는 바오로 소관으로 지역 분할을 한 것이다. 일종의 저작권 양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교회 안에서는 파벌 싸움과 돈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분명히 예수를 교주로 한 하나의 교회인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파벌 놀이의 모습을 21세기 기독교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파벌 놀이는 힘들지만 재미있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교회 안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우리끼리' 모여서 남을 비난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어디 또 있는가? 교회에 가면 내 편일 것 같은 이들이 있다. 그들과 어울리면 사회에서 쌓은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회 안에서 사교만 벌이는 것은 아니다. 기도도 한다. 예수 자신이 신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전 안에서 장사하는 ‘신자’를 채찍질하며 호되게 꾸짖었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가 말한 그 신전, 곧 기도하는 집을 자처한다. 그래서 신자들을 주말에 모여서 기도한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이 가관이다. 다들 뭘 ‘달라고’ 기도한다. 돈, 출세, 합격, 명예를 간구하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내가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어느 내용도 예수의 가르침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사교 모임을 벌이고 내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할만한 곳으로 교회만 한 것이 또 어디 있는가? 그래서 교회에 나온다. 예수의 가르침에 관심이 전혀 없음에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만 하는 신자들로 넘치는 교회가 바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게다가 예수가 하지 말라는 짓도 서슴지 않고 하니 예수 스스로 돌아누울 판 아닌가?
신앙심이 깊은 사람도 있다고?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신앙심 깊은 사람이 많이 있다면 기독교가 지금의 교회가 보여주는 것처럼 ‘타락’할 리가 없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교회가 타락했다면 그 원인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기독교가 타락한 원인은 바로 신자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타락했냐고 하는 것이다. 잣대가 있어야 타락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마치 지금 기독교 신자들이 과거에 비해 타락한 것처럼 흔히 말하지만 원래 그런 타락 안 한 기독교 신자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교회 안에서도 타락한 세상만큼이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줘 온 것이 기독교 신자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거룩한 백성이고 교회 밖에는 타락한 자들이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자기 합리화에 몰입해 온 것이 바로 기독교 신자다.
그래서 중간 결론을 내려 보자면 기독교가 망하는 이유는 기독교가 타락해서, 기독교 신자가 타락해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기독교 교회가 망해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직자의 돈과 성을 둘러싼 타락도 아니고 신자들의 타락도 아니라면 무엇이 기독교를 몰락의 길로 이끄는 것인가? 교회의 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세속화가 기독교 교회를 무너뜨리나? 절대 아니다. 기독교 교회는 처음부터 거룩해 본 적이 없다. 거룩한 척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 세속화로 타락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독교 교회가 몰락의 길을 가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바로 정치권력이다.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융성했다. 그런데 이제 최소한 형식적으로나마 모든 선진국이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면서 교회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다. 불교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처, 정확히는 고타마 싯다르타는 지금의 네팔 지역에 있는 작은 왕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부처가 기원전 480년에 죽고 나서도 한동안 불교는 그 세력이 보잘것없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02년에 태어난 아소카 왕이 불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비로소 제국의 종교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중국으로 수입된 불교도 별 볼 일 없다가 당 시대에 들어와 국교가 되면서 발흥하였다. 한반도에서도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비로소 큰소리치기 시작하였다. 교리나 진리 때문에 특정 종교가 성공을 거둔 경우는 사실 없다. 현재 이슬람교가 크게 융성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슬람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순간 이슬람교도 그 운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테오도시우스가 380년 느닷없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고 392년에 이 작업을 완수하여 기독교가 독과점 종교가 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와 정교분리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이 되면서 기독교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진리나 신앙으로 교회가 흥성하고 타락으로 망하는 경우가 아니었다. 물론 종교가 타락하여 민심을 잃었지만 원래 거룩했던 종교가 타락한 경우는 없었다. 종교는 원래 처음부터 타락했으니 말이다. 현재 불교나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심심치 않게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21세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결국 기독교의 몰락은 정치의 흐름을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정교분리를 법으로 정해 놓았음에도 기독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나라다. 그래서 기독교가 미국을 믿고 버티는 중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망하면 기독교도 망한다는 논리적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아무리 보아도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아직은 망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영원무궁 버틸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미국의 국력이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영원히 세계를 지배한 제국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세계를 지배한 종교도 단 한 개도 없었다. 기독교는 미국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패권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기독교의 패권도 오래가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쇠락은 언제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중국에 달려있다. 중국의 국력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느냐에 미국의 운명 그리고 기독교의 운명이 달려있다.
많은 학자는 2050년을 고비로 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중국이 적어도 경제력에서 미국을 앞서는 때에 기독교의 몰락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현재 미국이 중국을 최대한 견제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도 중국을 악마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기독교의 운명은 중국의 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도 중국 선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2,000명도 안 되는 몽골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방문한 이유도 중국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다.
사실 중국에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7세기에 경교로 불리는 네스토리우스교가 중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 무종의 조치로 절멸했다. 아무리 신앙이 깊고 기도를 많이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13세기에도 원 쿠빌라이칸의 허락으로 가톨릭교회가 중국에 들어갔지만 명이 권력을 장악하자 소멸해 버렸다. 신앙이 아무리 깊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면서. 16세기에는 하비에르와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에 나섰지만 별로 볼일이 없는 세력을 유지하였다. 청이 들어서면서 강희제가 가톨릭을 공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티칸이 전례 문제를 시비 삼아 전교를 막아버렸다. 19세기에 다시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가서 선교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종교를 통제하면서 다시 절멸했다.
사실 기독교는 중국인의 심성에 맞지 않는 종교다. 아니 중국만이 아니라 유교문화권 국가에 기독교는 전혀 맞지 않는 종교다. 현재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필리핀과 한국만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있을 뿐이다. 필리핀은 1571년부터 1898년까지 400년 가까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니 당연히 그 당시 스페인 국교인 가톨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98년 필리핀이 독일을 선언했음에도 미국이 다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아버렸다. 그래서 1946년까지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니 필리핀이 기독교 국가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비기독교 국가인 일본의 식민지였음에도 기독교가 번창한 매우 특이한 나라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하여 약 1,500만 명 정도의 기독교 신자가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특이한 나라이다. 중국은 종교 개방을 해도 기독교 신자가 생길 리 만무하다. 일본도 일찍이 기독교가 전파되고 종교 자유가 허용되지만 기독교 신자는 국민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시아 전체적으로 기독교 신자는 3%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난 종교가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는 철저히 미국과 유럽 기독교에 의존적인 기생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세계의 기독교는 중국의 패권과 무관하게 이미 앞에서 본 대로 그 내부적인 모순으로 이미 붕괴는 시작되었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제국이 되고 기독교의 내적 모순이 심화하면 기독교는 내외적인 요인으로 순식간에 붕괴할 것이 예상된다. 그래서 빠르면 50년 늦어도 100년이면 기독교는 이제 흔한 과거의 종교가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나 불교나 교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다. 무엇보다 교주가 교회나 절을 세운 적이 없다. 예수나 부처나 아예 '자기 집'조차 없었다. 그런데 부처와 예수가 죽고 나자 그들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나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교단을 세웠다. 물론 교주의 가르침에 감동을 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세적인 욕심이 앞섰다. 권력과 돈이 마련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국교가 되면서 다른 종교를 철저히 탄압한 기독교의 경우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권력과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재산을 정교분리 정책으로 빼앗기고 나서도 그 대가로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 챙기는 알뜰함도 보였다. 예를 들어 독일 교회는 아직도 국가에서 보상금을 받아 챙기고 있다. 교주인 예수는 돈과 신 가운데 하나만 섬기라고 했는데도 그 모양이다. 돈이 없으면 교회도 존재하지 못한다는 진리를 교회 자체가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문제는 과연 기독교가 망하고 나면 무슨 종교가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개념도 이미 나와 있다. 바로 post-Christianity, 곧 탈기독교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이어서 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