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가톨릭 교회는 교회 개혁을 위해 2019년부터 시작한 ‘시노드의 길’(Der synodale Weg)의 중간 기착지에 도착했다. 3월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시노드의 길’ 최종회의에서 독일 가톨릭 교회는 몇 가지 기념비적인 결정을 내렸다. 먼저 동성애 부부를 교회 안에서 축복하는 예식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또한 여자도 부제로 임명하기 정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남자 신부가 독점해온 미사 강론을 여자가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정으로 시노드회의(Synodaler Rat)를 수립하기로 하였다. 사실 독일만이 아니라 벨기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톨릭 교회 안에서 동성애 부부를 축복해 왔다. 그런 관행을 이제 공식화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자가 강론을 하거나 교회 안에서 실질적인 부제 역할을 해 온 것도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그런 것을 공식화하자는 것이다.
각 국가의 가톨릭 교회에는 주교회의라는 협의체가 있다. 한국의 것은 한국가톨릭천주교주교회의(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CBCK)라는 공식 명칭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영문 표기가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미국가톨릭주교회의(United States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USCCB), 독일의 경우 독일주교회의(Deutsche Bishopskonferenz, DBK)다. 그런데 프랑스는 프랑스주교회의(Conférence des évêques de France)로 표기한다. 이탈리아도 이탈리아주교회의(Conferenza Episcopale Italiana)다, 한국말로는 똑같이 나라 이름이 먼저 나오지만 영어나 유럽어로 표기할 경우 현격한 차이가 있다. 미국이나 독일 같은 강골 나라에서는 자국 이름을 먼저 내세운다. 심지어 독일의 경우 아예 가톨릭이라는 이름도 빼버린다. 그러나 프랑스나 이태리는 한국식으로 나라 이름을 뒤로 뺀다. 그 대신 가톨릭이라는 형용사를 생략해 버린다. 단어 하나에 목숨을 걸어온 전통을 지키는 가톨릭 교회에서 이런 차이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설명은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하겠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나라에 속한다. 이미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전력이 있는 나라답다. 그래서 개신교만이 아니라 가톨릭도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다. 내가 독일에 유학하며 신학을 배우던 1990년대에도 독일의 기독교는 이미 사회적 권위에 도전을 받고 있었다. 물론 현재의 사제 성추행 추문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인데도 그랬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사건 가운데 두 가지가 잊히지 않는다. 공항 검색대에서 정규 복장을 한 신부가 문자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두 팔을 들고 샅샅이 몸수색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공항에서는 정규 복장을 갖춘 ‘신부님’은 존경을 받았다. 또 하나는 독일의 KBS격인 ZDF의 방송 대담에 나온 가톨릭 주교에 대한 방청객의 태도였다. 그 대담에 당시에는 아직 신생 정당인 녹색당의 여성 당원이 나왔다. 그 여성 당원은 가톨릭 교회의 여성 차별에 대하여 맹공을 가했다. 그러자 주교는 예수의 열두 제자가 모두 남자였다는 식의 답을 했다. 남녀 차별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자 방청객에서 일제히 ‘우,,.’ 하는 조롱이 터져 나왔다. 그 주교는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것이 30년 전의 일이다.
독일이라는 먼 나라까지 가서 신학을 공부하던 나의 눈에 이 두 사건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가톨릭 교회와 관련 있는 일을 하고 한국의 가톨릭 교회, 주교, 신부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통해 그런 일은 독일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같은 가톨릭 교회인데 나라마다 그리 다를 수 있다니... 가톨릭이라는 단어의 뜻이 보편성을 의미하는 데 나중에 보니 가톨릭 교회 내부에는 보편성이 전혀 없었다. 나라끼리 알력이 있는 것도 모자라 한 나라 안의 교구끼리도 알력이 있고 심지어 협조도 안 되었다. 무늬만 보편적인 교회였다. 모든 인간의 평등과 사랑과 자유를 외친 예수를 사랑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게 만들 정도의 진실이었다.
이번에 '정명석 신드롬'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칭 전문가들이 사이비 종교가 한국에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이유에 대하여 이런저런 분석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석이 대부분 일반 상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외로운 사람들이 주요 먹잇감이라는 둥, 세뇌를 당하면 그리 된다는 둥, 하나마나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10년 넘게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가톨릭 기관에서 20년 넘게 일한 내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기독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종교의 부패는 모조리 유교, 더 정확히 말해서는 조선 특유의 성리학의 악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남존여비와 권위주의, 서열주의, 집단이기주의다. 이 네 가지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부패의 근원이다. 한국의 종교도 이런 부패한 땅에서 존재하는 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만민평등을 주장한 예수를 교주로 모시는 기독교의 지점을 세운 한국 교회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목사는 반드시 남자여야 하고 장로도 물론 남자여야 한다. 그리고 목사는 물론이고 장로는 그 교회 안의 ‘어르신’이다. 그래서 ‘목사 님’, ‘장로 님’이어야만 한다. 돈을 많이 내고 일을 많이 하여 고생하는 계층은 주로 늙은 여자들인데 그들은 아무런 발언권도 대표권도 없다.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그저 종으로 살아간다. 가톨릭 교회도 다를 것이 없다. 신부는 거의 예수와 맞먹는 존재다. 그리고 교회 안의 모든 주요 조직의 우두머리는 남자다. 그런데 별로 권리가 없고 일만 많은 단체의 장은 주로 여자들이 맡는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여자는 종이다. 수녀도 물론 종 생활을 한다. 신부나 수사와 똑같이 신에게 자신을 바쳤는데 가톨릭 교회 안에서 여자는 한 번 더 남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참고로 불교는 낫다고? 웃기는 소리다. 절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는 것은 다 여자다. ‘스님’은 주로 받아먹는데 이골이 나서 몸을 쓰는 일에는 만사가 귀찮다. 물론 음주 가무, 노름, 골프, 집단 폭행에는 물론 남자 중들이 자주 나선다.
정명석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단이 아니라 그런 한국 사회, 특히 한국 종교계의 남성중심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멀쩡한 이른바 정통 기독교 교단이나 불교 교단에서 여자 신자들이 남자들의 종노릇 하던 버릇이 남았으니 신흥종교에 가서도 남자의 노리갯감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성 종교계에서는 ‘이단’ 단죄에만 골몰한다.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 유세를 떤다. 참으로 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왜 독일 교회는 한국 교회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인가? 독일 교회가 한국 교회에 비하여 더 거룩한가? 독일에 더 훌륭한 목사와 신부가 많은가? 독일이 신의 더 큰 축복을 받았나?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좋은 신부가 많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가톨릭 사제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폭행을 하고, 내연의 처를 두고, 교회 재산을 빼돌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인다. 나쁜 신부도 많은 것이다. 한국은 어떠냐고? 조사를 물론 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내부적 치부를 독일처럼 아니 유럽처럼 겉으로 드러낼 수준이 아직 아니다. 유교적인 가부장제도가 철저한 교회에서 감히 교회 '어르신'의 치부를 어찌 드러낸단 말인가? 어른께서 어쩌다 '실수'하신 것을 가지고 난리를 치다니, 하극상 아닌가 말이다. 정명석 같은 놈이나 치도곤을 내야지... 그것이 한국 종교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유럽은 특히 독일의 가톨릭 교회는 다르다. 왜 다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깨어있는 신자다. 독일의 가톨릭 신자, 더 나아가 기독교 신자는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에 비하여 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으로 '깨어 있다'. 이는 내가 독일에서 10년 넘게 직접 체험하고 한국에서 20년 넘게 체험한 것을 직접 비교해 본 것이니 크게 어긋나지 않는 판단이다.
성폭행 사죄의 자세로 고개숙인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 Éric de Moulins-Beaufort 대주교ⒸAFP
그 어느 조직도 자기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경우도 없다. 특히 이권이 달린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독일 가톨릭 교회도 사제 성추행이라는 스캔들을 오랫동안 감추기에 급급해 왔다. 그러나 독일의 진보세력이 이를 두고 보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지적하고 공격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사제 성추행이라는 대형 사건이 폭발한 것이다. 독일은 이제 27개 교구별로 개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1차 조사가 끝난 프랑스의 경우 21만 6천 건의 아동 성학대와 성폭력 사건이 확인되었다. 피해 아동만 해도 33만 명에 달한다. 심지어 신부들의 우두머리인 주교 가운데 11명이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 프랑스 가톨릭 교회다. 그런데 프랑스 가톨릭 교회는 1차 보상금의 재원으로 일단 270만 유로를 보상금으로 책정해 놓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로 문자 그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미국의 가톨릭 보스턴교구의 경우 천문학적인 수치의 피해자들과의 합의금으로 교구가 파산지경에 이르렀었다. 2002년에는 1,000만 달러, 2003년에는 8,500백만 달러를 지출해야 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도 매각해야만 했다. 역시 미국의 스케일답다.
이러한 가톨릭 사제 성추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액의 금액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린 결정적 이유는 교회의 ‘어르신’이 신부들의 성추행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도 있지만 솔선수범하여 성추행을 한 것에도 있다. 현재 정명석을 비롯한 많은 사이비 종교 교주가 성폭행한 것을 문제 삼지만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기성 교회에서 그리고 절에서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해 왔음에도 교회의 ‘어르신’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것뿐이다. 정명석은 이제 그 조직의 힘이 다하여 무기력해져 언론의 먹잇감이 되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달이 나자 신자들이 독일의 교회를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2022년의 경우 독일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 70만 명 이상의 기독교 신자가 교회를 탈퇴하였다. 이제 더 이상 교회의 부패를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그러자 교회가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신자가 빠져나가면 산술적으로는 현재 약 4천만 명에 달하는 독일 기독교 신자가 50년 후에는 0명이 된다. 한국의 인구 감소율을 훨씬 능가한다. 물론 실제로 그럴 리는 없다. 신부나 목사를 신으로 여기는 ‘늙은 아줌마’가 독일에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일 교회에서 특히 MZ세대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니 늙은 아줌마들도 다 저 세상으로 가고 나면 누가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그래서 유럽에서는 기독교 교회의 수명이 50년 남았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독일만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유럽 기독교 교회 전체가 심각한 병리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독일 교회가 신자들의 주장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첫째 징표가 바로 앞에서 말한 동성애자 부부 축복, 여자 부제 인정, 여자의 미사 강론 도입, 그리고 주교회의를 대체할만한 신자와 성직자의 공동 회의제인 시노드회의의 수립인 것이다.
당연히 바티칸은 이를 다 반대하고 있다. 감히 고고한 남성들만의 남성중심주의 단체인 교회에서 여자도 모자라서 동성애자가 발을 붙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미 신부들 가운데도 내연의 처를 둔 것은 물론 동성애자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는 가톨릭 교회가 이런 주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바티칸이 있는 로마의 가톨릭 교회 신부 가운데 일부는 주중에 노골적으로 게이바에 드나들며 ‘애인’과 놀다가 주일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상황에서 교회의 권위는 이미 실추한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이니 당연히 독일 가톨릭 교회와 바티칸이 대립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다. 마치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이 다시 일어날 듯이 말이다. 사실 루터도 매우 착실하고 경건한 가톨릭 신부였다. 그것도 경건의 정점에 있다는 아우구스티노수도회 소속이었다. 루터는 끝까지 개신교 목사가 아니었다. 비록 결혼까지 했지만 교회를 세우고 목사가 되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바티칸에 의해 파문당한 신부로 머물렀다. 그런 루터의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가톨릭 교회가 이제 다시 종교개혁의 서막을 올렸다. 그 향방이 어디로 갈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정명석 만이 아니라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여전히 ‘신’인 대한민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