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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0. 2024

무병장수의 비결이 따로 있나?

인명은 재천이 분명해 보인다.

이달에 아버지가 드디어 96세가 되셨다. 집안에서 최장수 기록을 매일 세우고 계신다. 3남 1녀 집안의 늦둥이로 1928년에 태어나셨다. 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얼마 안 되어 큰 형님이 장가를 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큰 조카의 나이 차가 불과 서너 살이었다. 그런데 그 조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친인척 가운데 같은 항렬에 계신 분만이 아니라 조카도 앞세우신 아버지는 여전히 비교적 건강하시다. 더구나 6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에도 별 탈 없이 잘 견디고 계시다. 물론 노화로 귀가 좀 어둡다. 그러나 보청기 없이 휴대전화로 통화가 여전히 가능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사용하신다. 10분 이상 지속해서 걷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때 감염되지 않았고, 독감에 걸려도 쉽게 낫는 편이다. 고혈압, 당뇨는 물론 없다. 손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거의 없다. 그리고 노인 특유의 검버섯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력이 여전히 비상하고 사물의 관찰력과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여전히 신문과 책을 많이 읽으신다. 특히 내가 출판한 책 몇 권은 늘 들고 다니시면서 읽고 맘에 드는 구절은 종이에 적으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새로운 것을 보면, 예를 들어 민들레 꽃이 핀 것을 보면 오랫동안 바라보고 평가를 내리신다. "노란색이 특별히 강하구나. 잎사귀 모양이 약간 균형을 잃었구나."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특별한 섭생과 노력을 통하여 무병장수를 누리고 계시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불량 식품을 좋아하신다. 기름진 육류를 매일 즐기고, ‘봉지 커피’를 하루 2~3잔 마신다. 그리고 대표적인 정크푸드인 햄버거와 도넛을 매우 좋아하신다. 붉은 살코기만이 아니라 소시지도 즐겨 드신다. 닭고기도 물론 즐겨 드신다. 게다가 80대까지만 해도 대식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갈비는 2~3인분을 혼자 드시고 갈비탕은 국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한꺼번에 드셨다. 요즘은 식사량이 줄어들었다. 햄버거를 한 번에 다 드시지 못한다. 아침에는 주로 수프와 삶은 달걀 그리고 약간의 과일만 드신다. 그 대신 점심과 저녁은 육류를 주로 한 한식을 양껏 드신다.  

    

물론 건강에 안 좋은 것을 굳이 즐기시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술 담배를 평생 안 하셨다. 그리고 자극적인 음식은 절대 안 드셨다. 그래서 지금도 김치는 반드시 백김치만 드신다. 그리고 국이든 반찬이든 고춧가루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것은 절대로 안 드신다.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매운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벌건 김치를 바라만 보아도 몸에서 땀이 날 정도다. 그러나 백김치의 경우는 과도하게 발효가 되어 촛국 맛이 나는 수준에 이르러도 잘 드신다. 그러나 채소나 나물류, 그리고 생선은 거의 안 드신다. 특히 꽃게 요리는 질색하신다.     


아버지의 식습관을 관찰하면 흔히 전문가들이 말하는 상식을 파괴한 분이다. 그런데 노화현상 말고는 비교적 건강한 90대를 보내고 계신다. 그렇다면 섭생 말고 다른 요인이 있나? 물론 일본 강점기에 중등학교를 다닌 분이니 ‘일본식’ 운동을 열심히 하셨다. 일제 강점기 학교 교육은 건강한 신민을 양성하여 노예로 부려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운동을 많이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의 늦둥이로 태어나 건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라서 어릴 때 영양이 부실했고 무엇보다 이른바 ‘엄마 젖’이 안 나와 미음으로 젖과 이유식을 대신해 드시며 자랐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아버지의 어머니, 곧 내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시면서 입으로 생쌀을 씹어 그릇에 담아서 집에 와서 그것을 끓여 아버지에게 먹이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몸이 약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문자 그대로 죽다 살아나셨다. 전쟁 중에 병명을 알 수 없는 지독한 질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상이군인으로 제대하셨다. 그 후에도 가난한 피난민 집안의 2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진 유일한 밥벌이 꾼으로 사시면서 당신 건강을 챙길 여력이 없으셨다.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전해 준 말로는 결혼할 무렵 너무 약해서 출근하느라고 집의 문을 나설 때도 늘 휘청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분이 아주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2남 2녀를 키워 내고 이제 96세가 되신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관찰하면서 결국 옛말대로 인명은 재천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키가 160cm도 안 되고 몸무게도 50kg 미만인 매우 왜소한 분이 이리 무병장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평생 절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다. 위생 관념은 무척 철저했지만 ‘즐기는’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국내외 여행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이제는 친구가 거의 다 사라지고 걷는 것이 불편해서 문자 그대로 옛날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근처 공원 산책을 즐기고 계신다. 건강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즐겁게 식사하고 편히 쉬는 것뿐이다. 80대와 비교하여 변한 것이라면 낮잠이 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한다면서 밥을 억지로 굶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닥치는 대로 다 먹는다. 그리고 스트레스나 힘든 일을 피하라는 충고도 많이 한다. 모두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를 볼 때 식이요법, 운동, 특별한 약물이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아버지는 평생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계셨다. 한국전쟁 참전만이 아니라 피난민으로 남한에서 자립하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셨다. 그리고 부부 관계도 좋지 않았다. 수시로 부부 싸움을 하시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주고 당신도 받았다. 물론 가정 폭력은 전혀 없었다. 워낙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아버지는 햄버거와 도넛, 그리고 봉지 커피를 문자 그대로 입에 달고 살아오셨다. 그리고 붉은 살코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채소와 나물류는 거의 안 드시고 생선 비린내를 너무 싫어하신다. 그리고 물의 섭취를 거의 안 하신다. 수분 섭취는 식사 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수분이라고 해봐야 하루 커피 2~3잔이 전부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출생 신고를 2년이나 미룰 정도의 약골로 태어나셨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전쟁터에서 한 개 중대가 몰살당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겨우 살아나셨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웃고 떠들던 동료 병사들이 거의 다 죽는 한계상황을 체험하신 것이다. 게다가 전쟁터에서 질병에 걸려 문자 그대로 죽다 살아나셨다. 그리고 사회에 복귀해서도 먹고 사느라고 정신없이 고생만 하셨다. 아내와의 사이도 좋지 않아 스트레스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 삶을 사셨다.      


평생 안락하고 편안한, 그래서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삶과는 전혀 반대의 길만 걸어오신 분이 어찌 이리 무병장수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 결국 인명은 재천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왔지만 결국 지금 96세 생일잔치를 맞이하고 계신 분 앞에서 다른 이유를 찾아내기가 정말 힘들다.    

 

그런데도 건강한 삶을 위한 방책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분의 아들인 내가 몸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비록 인명은 재천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보는 것이 도리 아닌가? 그래서 이 대체의학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으로 개인적 체험과 연구를 통해 알아낸 것을 하나씩 풀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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