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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1. 2024

신의 눈에는 인간의 지혜가 지렁이 수준일까?

인간은 결국 저녁이 되어야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다.

아침에 주차하는 데 바닥에 커다란 지렁이가 보였다.      

그대로 놔두면 다른 차나 사람의 발에 치어 죽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급한 김에 차 안에 있는 물건으로 지렁이를 들어 화단에 옮기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렁이를 들어 올리려고 하자,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적’의 공격으로 여긴 모양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간신히 화단의 축축한 흙으로 옮겨줄 수 있었다.     


분명히 내가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한 것인데 지렁이는 공격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습한 흙에 놓인 지렁이가 처음에는 가만히 있더니 이내 여유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나도 마음이 놓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신의 눈에는 인간도 지렁이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위험에 처한 인간을 구하려고 신이 개입하려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건드려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예상치 못한 건드림이 발생하면 인간은 일단 자기 보호 본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상황을 파악한다. 심지어 그 지렁이처럼 몸부림을 칠 것이다.    


인간은 신을 보기는 고사하고 느낄 수도 없으니 그저 놀라서 뭔 일인가 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움츠리면서 신의 개입을 거부하는 몸짓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신의 자비로운 구원의 행위였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인간의 지혜로는 미래는 고사하고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도 정확한 식별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상황 파악이 가능해진다. 이른바 미네르바의 올빼미이다.    

 

이 말의 어원은 철학자 헤겔의 <법철학 개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내릴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어차피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어떻게 해야 신의 간섭, 더 나아가 신의 섭리를 식별할 수 있을까?     

그런 신의 뜻과 은총을 알기 위해 수련을 하고 기도를 하지만 큰 소용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여러 종교와 철학의 전통에서 가르치는 참 지혜를 얻으면 비로소 알게 될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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