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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4. 2024

독일이 전기차의 환상에서 벗어난다고?

전기차 시장의 전망은 어둡지만 결국 인류의 미래다.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의 나라다.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든 사람은 독일의 칼 벤츠다. 한국에서는 벤츠로 부르는 메르세데스(Mercedes)와 비머로 불리는 베엠베(BMW)는 물론 파우베(VW), 삼각 편대가 독일만이 아니라 자동차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세 자동차 회사의 본부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뮌헨, 볼프스부르크는 독일에서도 부촌에 속한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8,497만 대의 자동차가 생산되었다. 중국이 2,702만 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위인 미국의 1,002만 대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여기에 일본의 783만 대를 더하면 세계 자동차의 52.8%를 이 세 나라가 생산하는 셈이다. 독일은 374만 대로 한국의 376만 대보다 약간 모자라는 6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생산 비중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이 26.1%로 1위이지만 독일이 25.4%로 거의 비슷한 수준의 2위다. 스페인은 12.1%로 3위이고 한국은 10.5%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독일의 ‘태세 전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독일 <BILD>지에 난 ‘Ist die E-Auto-Wende ein Irrtum?’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상황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참조: https://www.bild.de/politik/inland/stellenstreichungen-bei-tesla-ist-die-e-auto-wende-ein-irrtum-6620f2cdd06d9e0a6061409b)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환경 보호 정책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나라다. 그래서 내연 기관 자동차 추방에도 선두를 달려왔다. 2035년에 모든 내연 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국가 정책과 법 개정도 지속해서 추진해 왔다. 그리고 에너지 정책에서도 재생 에너지 100%를 달성하기 위하여 진작 원전 퇴출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 온 나라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소비자가 전기차를 더 이상 사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2024년 1분기 자동차 구매 통계 수치가 이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전기차 구매가 2023년 1분기에 비해 14%나 줄었다. 반면에 하이브리드 자동차 구매는 13%가 늘었고, 내연 기관 자동차도 4%나 늘었다.     


독일의 유명한 여론조사 기관인 INS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는 전기차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대답했다. 53%는 한 번 충전한 후의 주행 거리가 짧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리고 50%는 충전소가 부족하다고 대답하고 44%는 전기차가 기술적으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대답했다. 전기차에 만족한다는 대답은 5%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독일 사람이 전기차를 안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수치로 그대로 드러난다. 2023년 1분기 전기차 판매 대수는 94,736대로 전체 판매량의 14.2%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4년 1분기에는 그마저 81,337대로 11.7%로 줄었다. 하이브리드 차는 218,912대로 31.7%를 차지하여 2023년 1분기의 29.2%보다 2.5%p 늘었다. 여전히 대세는 내연 기관 자동차라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이 전 세계 전기차를 선도하는 테슬라가 14,000명의 직원을 해고할 것으로 발표했다. 그 가운데 3,000명이 독일에서 일하는 중이다. 안 팔리는 차를 만들 이유가 없다.      


현재 독일에서 등록된 차량은 4,900만 대다. 그 가운데 전기차는 140만 대로 겨우 전체의 3%에 불과하다. 하이브리드 차는 290만대로 5.9%에 머물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대수를 1,500만 대까지 끌어올린다고 했지만, 현재 추세로 봐서는 언감생심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달 거의 20만 대를 판매해야 한다. 이 수치는 내연 기관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 대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말이 안 되는 목표다.      


전기 자동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전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렴한 배터리 생산 원료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전기차가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전기 요금을 낮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국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배터리 생산 원료인 리튬, 카드뮴, 니켈, 철, 아연, 망간은 주로 미국, 중국,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에 매장되어 있다. 특히 리튬은 중국, 호주, 칠레가 전 세계 채굴량의 90%를 점유할 정도로 독과점 체제가 수립되어 있다. 또한 니켈은 인도네시아, 호주, 브라질이, 코발트는, 콩고, 호주, 인도네시아, 쿠바가 거의 독점 생산 중이다. 더구나 이 모든 재료를 섞은 전구체의 70%는 중국이 생산하는 중이다. 자원 국가주의가 발동되면 전 세계 배터리 시장과 그에 종속된 전기차 시장은 중국의 눈치만 보아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러시아의 가스에 의존해 전기 요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1 kWh당 2021년 기준으로 15.73센트였던 전기료가 2022년에는 28.72센트, 2023년에는 43.88센트로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상승했다. 한국의 전기 요금과 비교해 보면 거의 4배인 셈이다. 그러나 독일은 에너지 대외 의존에서 벗어나고 탄소중립 정책 추진을 위하여 여전히 재생에너지에 올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2030년까지 모든 화석 에너지 사용 중단, 2035년까지 재생 에너지 의존도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탈원전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 중이다. 결국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원료인 우라늄도 호주, 카자흐스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에만 55.6%나 매장되어 있어서 또 다른 의미의 에너지 의존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원전, 탈화석연료 정책을 추진하던 독일은 갑자기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3년 연속 경기 침체에 빠져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기존의 재생 에너지로 100% 전환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경제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명목 GDP는 4조 6천억 달러로 40년 넘게 3위를 고수한 4조 1천억 달러의 일본을 4위로 몰아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참고로 유럽연합 27개 국가 전체의 명목 GDP 규모는 17조 1천억 달러이다. 독일 혼자 27%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후퇴하고 있는데도 일본만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전통 선진국만이 아니라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는 인도를 능가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유럽 최고의 경제 대국답게 자동차 수입에서도 2022년 기준으로 1,683억 달러의 미국 다음으로 694억 달러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자동차를 350만 대나 수출하는 1위 국가지만 수입 규모는 106억 달러로 142억 달러인 한국에도 뒤진다.     


독일은 무역 규모에서 각각 6조 달러와 5조 달러인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조 달러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고 무역 흑자도 8,600억 달러의 중국에 이어 2,250억 달러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유럽연합 전체의 무역액 규모는 4조 3천억 달러다. 독일이 여기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이 유럽에서 얼마나 큰 무역 시장인지 알 수 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전 세계 수출액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1%를 유럽이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9.1%로 미국이 추적하고 있다. 일본은 8.9%로 3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한국은 5.1%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액수로 따지면 유럽이 6,990억 달러로 미국의 1,380억 달러의 5배가 넘는다. 자동차계에서 유럽이 얼마나 엄청난 시장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이 전기차 판매에 올인하는 정책에 일단 제동을 걸기로 한 모양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도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냉혹한 시장경제 원리다. 한동안 세계의 정부와 기업은 마치 전기 자동차가 골치 아픈 환경 문제를 해결하여 인류의 미래를 구할 유일한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했다. 그러나 얼리어댑터들이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위에서 말한 대로 전기차는 아직 전통적인 내연 기관 자동차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품이었다. 무엇보다 자동차 연료를 제외한 모든 부속은 여전히 공해 물질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유럽연합도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여 배기가스만이 아니라 브레이크와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분진도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공해 물질에 포함하여 계산하기로 하였다. 이런 기준이 적용되면 전기차가 기존의 내연 기관에 비해 우위를 점령했던 것이 많이 삭감당하게 된다. 이미 독일 정부를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삭감하고 있다.   

  

독일의 최고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인 메르세데스, 곧 벤츠 회사는 애초 2030년까지 전기차 생산율을 20% 이상으로 잡았다. 그러나 올해 1월 중순 메르세데스 CEO인 켈레니우스(Ola Källenius)는 애초 순수 전기 자동차 생산 목표를 높이 잡은 것을 시정하고 하이브리드와 전기 자동차 생산을 애초 목표치에 포함하기로 정한 것이다.(링크: https://www.electrive.net/2024/02/22/mercedes-streicht-elektro-ziel-fuer-2030-drastisch-zusammen/) 다시 말해서 내연 기관 자동차 생산을 2030년대에도 지속하겠다는 말이다. 메르세데스의 경쟁사인 베엠베는 처음부터 내연 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적인 내연 기관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전략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는 동안 독일은 내연 기관 자동차의 매연 발생 감소를 위한 기술 발전과 더불어 친환경 화석 연료의 개발에도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매우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감해 보이는 독일이지만 기업의 시장 대응과 새로운 전략 수립에서는 탁월한 민첩성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순수 전기 자동차에 올인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내연 기관 자동차 기술로는 도저히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중국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량과 기술에서 중국이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더욱 그런 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전기차 시장을 중국에 내주고 다른 전략을 세울 셈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내연 기관 자동차는 단순히 공해 물질과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만이 아니라 그 기술 발전에서도 이미 거의 정점에 와 있기에 미래 친화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은 전기차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른 것일 뿐이다.    

 

이런 기조에서 메르세데스도 전기 자동차 기술 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배터리의 효율 제고와 충전 시간 단축이다. 결국 전기 자동차도 재료공학과 금속공학에 더해서 기초 학문인 화학, 물리학과 수학의 산물이다. 이 학문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선두에 서 있는 독일이 전기 자동차 분야에서도 탁월한 기술 발전을 이룰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이고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넘보고 있지만 독일을 무시하기 힘들어 보인다. 한국의 정부와 자동차 기업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시장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술과 이노베이션에 앞서고 있는 독일을 배울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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