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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Jan 22. 2024

독일이 참된 ‘동료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선진국에는 깨어 있는 국민이 있는 법이다.

지금 독일 전체가 난리가 났다. 극우파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 이하 대안당)의 간부가 극우 패거리를 몰래 만나 현재 독일에 수백만 명이 있는 난민 추방 방안을 논의한 것을 언론에 들켰기 때문이다. 기자가 비디오로 찍어 방송에 공개되어 이른바 ‘빼박’의 증거가 있어서 국민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문자 그대로 독일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처음 데모가 시작된 함부르크에서 사람들이 10만 명 가까이 모였다. 좁은 장소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안전을 걱정한 경찰이 해산시킬 수밖에 없는 정도로 데모 규모가 커졌다. 그리고 이 데모는 함부르크만이 아니라 독일 전체로 퍼지고 있다. 근래 볼 수 없었던 민심의 폭발이다. 매우 점잖은 독일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이 사건의 촉발제는 물론 <대안당>의 만행이다. 그리고 이제 <대안당>은 단순한 극우 정치 집단이 아니라 기존 정계에 진출하여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준에 이른 정치 세력이 되었다.      


<대안당>은 처음에는 소수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방 선거에서 몇 차례 승리를 거둔 것도 모자라 아예 총선에 후보를 내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하였다. 현재 736석 정원의 연방 하원에서 79석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 전체의 지방 정부에서는 1,894석 가운데 25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1933년 히틀러의 나치가 과거 독일 제국의회를 장악하는 과정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독일 정치가만이 아니라 국민의 공포를 촉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미지근한 대책만 내세우고 <대안당>의 인기는 계속 치솟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국민이 나선 것이다. 특히 ‘동료 시민’이 앞장서고 있다. 독일 인구 8,300만 명 가운데 24%인 2,000만 명이 외국을 출신지로 두고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독일 시민이 되었다. <대안당>은 순수 독일만 독일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 정부에 불만이 많은 국민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안당>의 행적이 과거 1933년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나치당을 떠오르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데모에 참여한 동료 시민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 쓰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No AfD, Nie wieder 1933”     


“<대안당> 반대, 1933년을 되풀이할 수 없다.”     


1933년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제국의회에서 권력을 장악한 해다. 나치당의 공식 명칭은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다. 너무 길어서 흔히 나치당이라고 부르지만, 이 공식 명칭을 보면 나치당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가사회주의는 서방의 자본주의와 동방, 곧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배척한 개념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독일 고유의 민족적 성향에 맞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말이다. 독일어로 Nation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국가라는 의미도 지녔지만, 민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독일어로 민족은 Volk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러나 이는 생물학적인 개념이 강하고 Nation은 정치색이 더 들어 있다. 물론 히틀러와 그 무리는 Deutsches Volk, 곧 독일 민족이라는 단어도 즐겨 사용했기에 두 단어의 엄밀한 개념 차이는 학자들이나 할 일이다.     


나치당은 원래 1919년 바이에른주의 수도 뮌헨에서 Deutsche Arbeierpartei, 곧 <독일노동자당>으로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당원이 수십 명에 불과한 문자 그대로 정치 모임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나중에 히틀러가 직접 Nation을 붙였고 슈트라서가 sozaialistische를 붙여 나치당의 공식 명칭이 완성되었다. 이 당은 처음부터 반유대주의를 정강으로 내세웠다. 그 당시에도 유대인은 사악한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가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대한 증오로 전이된 것이다. 사실 히틀러는 이 당의 창당 주역이 아니다. 지역 정당을 조사하라고 파견된 군인이었던 히틀러는 이 <독일노동당> 모임을 조사하러 갔다가 그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했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자 히틀러는 군인보다는 정치가가 매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입당하였다. 그리고 결국 나치당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굴러들어 온 돌이 당의 역사를 바꾸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벌어져 왔다.      


이후 히틀러와 나치당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혼란에 빠질수록 대중적 인기를 더 많이 끌기 시작했고 마침내 1923년 11월 30일에 국가 전복 음모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Bierkeller-Putsch, 곧 ‘맥주홀 쿠데타’이다. 이 사건이 Bürgerbräukeller라는 이름의 맥주홀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시도는 얼마 안 가서 제압당하고 히틀러는 국가반역죄로 체포당하여 죽을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으로 히틀러는 단숨에 민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른바 ‘전국구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다른 주요 음모 가담자는 다 도망갔는데 히틀러만 독일에 남아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히틀러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멀리 못 갔을 뿐인데 민중은 히틀러가 애국자라서 독일에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치당은 이름을 정식 명칭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의회 진출에 나섰다. 그래서 1926년 총선에서 12명을 의회로 보낸 데 이어 1932년에는 마침내 33%가 넘는 득표율로 230명의 의석을 차지한 제1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다음 해인 1933년 3월 5일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렀다. 물론 이 총선에서 나치는 대승을 거두고 마침내 모든 정당을 해산하고 일당 독재를 구축하였다.    

 

그런 역사로 독일에서는 1933년이 독일 의회민주주의가 망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위에서 말한 ‘동료 시민’의 데모에서도 1933년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구호가 나온 것이다. 나치당은 유대인만 박해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Pangermanismus, 곧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면서 나치당은 순수한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민족국가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이 순수한 게르만족은 매우 우수한 종족이기에 유대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물론 독일인이라고 해도 정신적 육체적 장애인, 동성애자, 사회 부적응자는 제외되어야 했다. 우생학적인 논리로 그런 '비정상적인' 독일인을 강제적으로 제거하여 순수하고 우수한 Rasse, 곧 종으로 이루어진 독일 제국의 수립을 꿈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에 남아 있는 외국인 혐오의 씨앗이 이때 뿌려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현재 독일에도 여전히 외국인을 싫어하는 정서는 남아 있다. 통계조사에서 보면 독일 국민의 25%가 외국인에게 불편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지금 독일 정가에서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는 <대안당>에 대한 지지율로 고스란히 옮겨지고 있다. 의원내각제의 다당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국민의 세부적인 뜻을 반영하는 정당이 출현하면 국민은 그 정당에 대한 지지로 민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 독일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신호등 정당, 곧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의 지지율은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당장 총선이 치러진다면 <대안당>이 23% 정도의 지지를 받으면서 야당인 기민당(CDU) 다음으로 2위 정당으로 도약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측될 정도다.   

  

그런데 바로 그런 <대안당>이 극우 세력과 접촉하는 비디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독일 ‘동료 시민’의 분노가 촉발된 것이다. 독일에는 비록 소수지만 외국인을 꺼리는 세력이 25% 정도 존재하지만, 나머지 75% 정도의 ‘동료 시민’이 그런 세력의 준동을 용서하지 않고, 이른바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 않도록 집단 지성에 이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독일 사회가 이성과 원칙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시민 스스로 증명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극우 세력이 존재한다. 그 세력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한국은 다당제가 아니라 실질적 양당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강력한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기에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의 극우 세력은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고 윤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계속 실정을 함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세력의 본거지가 경상도와 강남이라는 사실 정도도 드러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60~70%에 달하는 ‘동료 시민’은 독일의 ‘동료 시민’과 달리 집단 지성과 집단행동에 매우 굼뜨다는 사실이다. 현재 윤석열 정권이 사회를 보수와 진보, 부자와 가난한 자, 심지어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모조리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 그 당에서 떨어져 나간 이준석이 MZ세대와 꼰대 세대를 다시 편 가르기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데도 한국의 ‘동료 시민’은 집단행동은커녕 집단 지성을 드러내는 것에도 주저한다. 무엇이 독일의 ‘동료 시민’과 한국의 ‘동료 시민’의 행동이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상식과 공정에 어긋난 몰상식과 불공정이 판치는 세상에 너무 길든 탓인가? 아니면 각자도생밖에 없는 세상에서 ‘쓸데없이’ 나서다가 혼자 손해 보기 싫은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전 국민이 지금 ‘검찰 캐비닛 파일’로 떨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함석헌이 말한 깨어 있는 국민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답답한 현실을 보면서 독일의 깨어 있는 ‘동료 시민’의 행동을 부러워만 하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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