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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Sep 11. 2017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 - 6

여행에서 음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여행이라는 것도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생활이니 일상과 마찬가지로 의식주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사람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어느 정도 다를 수 있겠지만, 대개는 그중에서 음식을 가장 중요히 여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단 신경 쓰고, 선택하는 횟수 자체가 많으니까... 잠은 하루에 한 번, 옷도 웬만하면 하루에 한 벌(폭우나 폭염을 만나지 않는다면)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보통 나는 1박에 8~12만원 정도하는 3~4성급 호텔을 거처로 삼아 여행을 한다. 1만원대의 게스트하우스(8개의 침대가 빼곡히 놓여 있던...)에서 불편한 심신으로 가방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던 적도 있고, 3만원대의 낡고 저렴한 호텔에 머물러본 적도 있으며, 5만원대의 캡슐 호텔에 하룻밤을 보낸 적도, 15~18만원 정도의 4.5성급 호텔에서 기분을 내본 적도 있지만, 대개는 10만원 안팎의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까지 내 돈으로 1박에 20만원 넘게 주고 5성급 이상의 호텔에서 체류하며 여행을 해본 일은 없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허니문 정도의 특별한 여행이라면 모를까... 물론 가격대가 높은 호텔은 그에 걸맞은 훌륭한 퀄리티를 제공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돈이 아깝다. 내게는 여행이 휴식이나 휴양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일까? 방 하나를 20만원 주고 빌리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사치 같다.


하지만 음식은 제법 중요하다. 식사는 여행에 있어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며, 음식을 먹는 것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easy but special'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비주얼의 음식을 접하는 것도 좋고, 어디서든 흔히 맛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일지라도 여행지의 로컬 식당에서 마주하는 건... 마냥 좋다. 그저그런 음식 사진 하나도 여행지에서 건져온 것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음식은 중요하다.

여행 중 제대로 음식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혼자인 편이 좋다. 아니 즐긴다기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런저런 부담 없이 먹으려면 혼자가 낫다는 얘기다. 혼자일 때는 나름의 실험정신을 갖고 현지 음식을 대할 수 있지만, 동행한 이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일종의 도전의식에서 메뉴를 선택했다가 도저히 먹지 못할 수준의 음식이 나온다면, 그 후폭풍은 간단히 감내하기 어렵다.

혼자일 경우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그냥 뭐 하나 배웠다’ 정도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웃어넘길 수 있지만, 옆에 누가 있으면 그게 안 된다. 음식도 거지 같은 걸로 시켜놓고, 실실 웃기까지 하면 속된 말로 ‘쳐 맞는’ 수가 있다. 사실 뭐 맞기야 하겠냐만,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일행이 있다면 다음 끼니까지 계속해서 눈치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후론 메뉴 선택의 권한을 박탈당할 확률이 매우 높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성패에 부담을 느껴 초이스를 주저하며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그냥 먹자는 대로 먹을게...나도 그게 편하겠어..)


생각해보면 가족 여행 중 음식 때문에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긴 적이 꽤 여러 번 있었다. 거의 매번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여행을 매우 즐기는 편이지만, 우리 가족이 여행 중 냉기류를 만날 때는 대개 음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여행을 자주 해보지 않은 친구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쉬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식구(食口)이기 때문에 밥 같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다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나 연인 같은 타인 앞에선 아무리 가까워도 어느 정도는 가면을 쓰고 행동하기 마련이니 음식 정도로 싸움을 벌이는 한심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랬다간 다시는 이들과 함께 여행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다르다. ‘이거 먹기 싫다’, ‘왜 엄마는 꼭 한식을 먹어야 하냐’, ‘넌 여기까지 와서 왜 피자를 찾냐?’, ‘난 여기 향신료는 도저히 못 참겠다’, ‘그냥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다가 호텔 방에서 먹자’ 등등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결국에는 ‘내가 다시 가족끼리 여행을 오나 봐라’까지 치닫게 된다.

단순히 음식 때문에. 단순히 음식 때문에? 단순히 음식 때문에!...

입맛이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3학년에서 멈춰버린 나는 대개 어디를 여행하든 피자나 스파게티 따위를 찾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김치부터 찾고, 국물이 있어야 하며 하루에 최소 한 끼는 한식을 드시기 원한다. 어린 시절을 굶주림 속에 보낸 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무엇이든 잘 드시고, 형은 그냥 딱히 못 먹는 게 없는 사람이다. 철근까지는 못 먹을 것 같지만, 어떤 양념도, 처음 보는 생김새의 음식도 곧잘 소화해낸다. 아버지와 형에게는 나와 어머니의 식성이 늘 문제의 근원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꼭 네 가족이 같은 식당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과 아버지는 무엇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를 현지 음식을 맛있게 즐기면 되는 것이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식당에 들렀다가 피자헛이나 버거킹에 가도 되는 것이고, 한식 메뉴와 다른 음식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푸드 코트를 찾으면 되는 것이니 큰 일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피자헛, 버거킹이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든 푸드코트에 한식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

그렇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나면 완벽에 가까웠던 여행 속 ‘혼밥’, ‘혼술’보다는 가족과 함께 했던 맛없는 음식이 더 자주 생각난다. 가족과 함께 먹는다고 맛없는 음식이 맛있어지는 건 아니지만, 기억은 제법 다르게 적힐 수도 있는 것이다. 함께 ‘먹어서’ 좋다기보다 ‘함께’ 먹어서 좋은 거니까. 음...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듯 글을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 가족은 또 다시 여행지에서 음식 때문에 싸움을 벌일 거다. 나는 확신한다! 아주 쉽게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는 분명 누구 한 명이 이렇게 말할 거다. “내가 다시 가족끼리 여행을 오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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