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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Aug 04. 2018

브라질 더워. 진짜 더워.

그런데 한국이 더 더워.

덥다. 덥다. 너무 덥다. 심각하게 덥고 지나치게 덥다. 그 자체로 심신에 고통을 안겨주는 이 정도의 더위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이런 미친 더위는 브라질을 생각하게 한다. 브라질에서 보낸 시간 약 1년 3개월, 그 열다섯 달이 모두 무더웠던 것은 아니다. 포스 두 이구아수나 히우 지 자네이루는 선선하고 따사로웠으며, 상 파울루의 비 내리던 새벽은 제법 싸늘하기도 했던 기억이다. 브라질은 대개 남쪽보다 북쪽이 덥다. 남미가 거의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내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브라질의 더위는 바로 북녘 아마조니아의 마나우스다. 나는 거기서 제대로 더위를 먹고 일주일 가까이 쓰러져 있었다. 완전히 몸져누웠던 건 사나흘이지만, 그후로도 사나흘은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고, 몸은 내 뜻대로 가눌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수액 주사를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브라질의 무더위는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여름 날씨도 브라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른 아침도, 늦은 밤도 괴롭다. 얼마 전 사우디 아라비아에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온 친구도 중동과 서울의 더위가 엇비슷한 것 같다고 평했을 정도다.

아마도 빵 지 아쑤까르 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호수와 그 위에 요트를 띄우는 부유한 이들이 사는 마을이 보인다.


하지만 더위가 내가 기억하는 브라질의 전부는 아니다. 에이... 그래도 1년 넘게 머물렀던 곳인데 설마 날씨 더웠던 것만 생각 날까? 개인적으로 브라질은 다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언제든 다시 가고는 싶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나라다. 무엇보다 친근한 사람들이 좋다. (걸인도 강도도 친구처럼 다가오는 건 싫었지만.) 브라질에 살면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 중 좋았던 일, 나빴던 일 하나하나 쌓아두고 세어보면 사실 엎거나 뒤집거나 비스무리할 거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왜일까 모르겠다만 좋은 기억은 좋지 않은 기억을 이긴다. 그냥 웬만하면 좋은 기억이 이기는 거다. 굳이 그 이유를, 근거를 만들어보자고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얼추 답이 나오는 것 같다. 그건 좋은 기억들은, 아주 작은 것들도 소소히 기억에 남기 때문인 것 같다.

살면서 혹은 여행하면서 혹은 내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 중 작은 행복들은 제법 쉬이 생각이 잘 난다. 작게나마 웃음이 터졌던 일들, 그냥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던 일들... 하지만 소소하게 불행했다거나 소박하게 짜증스러웠다거나 하는 일들은 딱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말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소소한 즐거움이라든지 소박한 행복이라는 건 말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형언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성립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자잘한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 모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흐릿해지는 걸 보면 우리 모두는 제법 큰 심장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삶이라는 게  작디작은 나쁜 기억들마저 하나둘 챙겨가며 살 수는 없는 것인지도. 어쨌든 나만 하더라도 작디작은 좋은 일들이 기억에 훨씬 더 많다.

한 브라질 친구가 "너 어디 가서 포르투갈어 할 수 있다고 얘기해도 돼"라고 했던 것이나(그 친구의 이름은 윌리엄 다비드 시우바), 꽤 많은 브라질 친구들이 "한국 사람들 거의 다 친해지기 어려운데 넌 아니라서 좋아"라고 했던 것이나(그건 사실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그 회사의 문제였겠지만...),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들리면 브라질 택시 드라이버 아저씨들한테 물어 새로운 뮤지션을 알게 되었던 일도, 큼직하고 맛있는 파인애플을 1,500원 정도에 사먹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자그마한 즐거움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소소한 즐거움은 브라질에서 함께 지낸 친구 서너 명만 모이면 아직도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맛있는 술안주가 된다.

아마도 히우 지 자네이루의 라빠 거리?! 6~7년이 지난 일들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술에 취한 남정네들이 아리따운 여인을 두고 싸우던 밤거리지만, 아침은 평온하다.


하지만 작은 불행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불행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불행에 가까운 것이라 정말 웬만큼 불행한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불행이 가진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행복들은 소소한 불행을 쉽사리 이기지만, 수백 가지의 작은 즐거움도 단 하나의 커다란 불행을 이기지는 못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어떤 커다란 불행을 마주한다면, 단순한 짜증이나 순간적인 불만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진짜 엄청난 슬픔과 아픔이라면 차곡차곡 쌓아온 작은 행복들로는 당해낼 수가 없다. 5천 원짜리 로또에 열댓 번 당첨됐다 해도 그 즐거움이 5천만 원짜리 사기 한 건의 피해에 비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나의 경우, 브라질에서 그 정도의 일은 겪지 않았기에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브라질에서 불행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쌀밥 점심 좀 얻어먹겠다고 다녔던 한인 교회에서 무장강도떼를 만나 열댓 명의 한인이 함께 화장실에 갇혔던 것이 특히 그렇다. 그건 진짜 심각한 일이었다. 녀석들이 가진 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해볼 도리는 없었지만, 권총을 든 녀석 두 명, 기관총까진 아니어도 제법 크고 긴 총을 든 녀석 두 명과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은 여기서 내 삶이 마감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다. 그때 그 강도 녀석들의 눈빛은 꽤 오래 문득문득 불현듯 생각나곤 했다. 지금은 그들의 생김새가 조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로부터 한 서너 달은 정말이지 괴롭고 두려웠다. 그때 나는 물론 함께 있던 이들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면 내가 브라질에서 경험한 좋은 기억들은 모두 완전히 덮어지고 흩어지고 사라졌을 것이다. 정말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 자식들 진짜 나쁜 놈들이네.  


역시 '아마도' 히우의 이빠네마 해변. 유명세로는 꼬빠까바나에 미치지 못하나 조금 더 한적하고 평화로와 좋은 이빠네마. 두 해변 모두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친 팝 음악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괴롭혔을 뿐 부상을 입히거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나에게 긴 총을 겨눈 녀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건 순간의 희망, 염원, 바람, 무언의 기도였을지 모르지만 총을 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한한 열댓 명의 피해자들은 순순히 그들의 안내에 따랐고,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빼앗긴 휴대폰은 다시 살 수 있지만, 빼앗긴 목숨은 다시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협조 요청에 매우 정중하고 신속하게 대했던 우리의 행동이 어찌 보면 서로를 보호한 것이다. 브라질 혹은 남미를 여행할 계획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카메라를 달라고 하면 카메라를 주자. 돈을 달라고 하면 돈을 주자. 돈도 카메라도 휴대폰도 목걸이도 핸드백도 다 달라고 하면 있는 대로 다 주자. 그 어떤 여행도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더위 얘기를 하다 브라질에서 만난 권총 강도 얘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사실 크게 이 정도가 내가 브라질에서 겪은 불행이다. 브라질 친구 데이비오(이름 맞나?...)의 차를 타고 가다 가드레일을 들이 받았던 일이나, 호텔 객실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청소하는 직원한테 털린 일 같은 건 상대적으로 해프닝 비스무리한 추억이 됐다. 좋은 일은 훨씬 더 많았다. 나는 브라질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도 좋아한다. 물론 오롯이 여행을 하며 즐겁게만 보냈던 남쪽에서의 추억과 일에 짓눌려 압박감 속에서 생활했던 북쪽에서의 경험이 같을 수 없지만, 그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한데 모아 섞으면 제법 새콤달콤하고 씁쓸한 까이삐리냐 칵테일 맛이 날 것 같다. 브라질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은 무더위가 조금 가시면  이야기해보겠다. 어서 선선하고 서늘한 가을의 공기를 맛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브라질 상 파울루의 지하철역에서. 내가 남미에 머물렀던 2011년~2012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물가가 한 3배쯤 차이가 났던 것 같다. 지하철 요금은 거의 5~6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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