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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Sep 29. 2017

한국축구유람 - 2

서울, 축구라는 이름의 ‘축제’


서울, 축구라는 이름의 ‘축제’

Seoul, It’s like a Football ‘Festa’


축구장에 온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과 감정은 모두 다를 것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진지하게 축구를 대하는 이도 있고, 뻔한 데이트에서 벗어나고 싶어 기대와 우려가 반쯤 섞인 편치 않은 마음으로 축구장을 찾아온 이도 있을 것이다. 축구 따위 하나도 관심 없지만, 친구의 전도에 의해 억지로 이끌려 나온 이도 있겠고, 일주일간 직장과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분출구로 축구장을 선택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개 집에서는 영화를 보듯 조용히 집중하며 축구를 즐기지만, 가끔씩 경기장을 찾을 때는 마치 특별한 축제에 초대 받은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축구를 대하게 된다. 축구는 거의 일년 내내 시즌이 지속되는 ‘흔한’ 스포츠지만,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쯤 볼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스포츠이기도 해서 경기장을 찾을 때의 감정은 마치 뮤직페스티벌이나 영화제에 가는 것마냥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같은 공놀이지만, 일주일에 대여섯 번씩 열리는 게임과는 여러모로 성질이 다르다.


하지만 굳이 냉정히 말하지 않더라도 축구가 축제처럼, 축구장이 축제의 장처럼 느껴지는 곳이 아직 한국에 그리 많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마을 잔치처럼 느껴지는 곳들은 더러 있긴 하지만, 대개는 ‘오늘 여기서 축구 하나 보다’ 정도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적당히 알아챌 수 있는 분위기로 경기가 열리곤 한다. 텅빈 좌석들이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안겨주고, 오늘이 매치데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우 비밀스럽게 ‘신비주의’ 컨셉 하에 진행되는 경기도 있다.


그러나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좀 다르다. FC서울을 두고 K리그의 문화를 선도하는 클럽이라고 평한다면, 언제라도 악플을 무더기로 남겨줄 준비가 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경기장 안팎의 분위기’만을 잣대로 삼는다면, 서울을 앞선다고 단언할 수 있는 구단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서울보다 경기장 안이 뜨거울 수도 있는 곳은 경기도의 수원, 전라도의 전주, 경상도의 포항 정도가 되겠지만, 바깥 사정은 아무래도 많은 차이가 난다.


물론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축구 하나만으로 축제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프로축구를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우연히 경기장 근처를 지나친다면, 자연스레 흥겨운 분위기에 녹아 들어 관심이나 궁금증을 가질 만한 다양한 요소가 구비되어 있다는 것이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흐뭇하고 고맙다. ‘어, 여기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분위기 괜찮네!’ ‘우리 언제 K리그 경기나 한 번 볼까?’, ‘서울 얼마나 잘 하는지 한 번 볼까?’ 같은 생각을 안겨줄 정도의 분위기는 FC서울이 정말 잘 만들어내고 있다.


축구장 밖은 훌륭한 노천 카페이자 식당가이며, 작은 놀이공원인 동시에 음악과 춤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이다.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10대들의 활기도 생생하다. 왕년에 볼 좀 찼을 것을 같은 노년의 청춘들도, 한국 최고의 축구장을 영접하러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의 표정에서 흥분과 설렘이 엿보인다. 언젠가는 이런저런 MSG가 없어도 제대로 된 맛과 향취로 대중을 사로잡는 클럽과 스타디움들이 K리그에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런 흐름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긴 유럽 축구장에선 즐길 것이 진짜 축구 하나밖에 없어서 아쉬웠다는 사람들도 간혹 있더라…… 유럽 스타일의 축구장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분위기가 적절히 섞인 스포테인먼트로 K리그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꼭 어떤 이벤트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즐길 거리가 많이 있다. 과거 2002월드컵 기념관으로 사랑 받았던(하지만 보통의 박물관과 큰 차이가 없어 축구의 역동성을 담아 내긴 어려웠던) 곳이 ‘풋볼 팬타지움’이라는 체험형 축구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도 반갑다. 티켓 값이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FC서울 경기 입장권을 제시하면 30% 이상 할인도 받을 수 있어 축구를 관전하기 전이나 후에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며 둘러보기에 적당할 듯하다.


과거 기념관에는 축구와 관련된 클래식한 유물들이 많았다면, 풋볼 팬타지움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해 10대, 20대 팬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굳이 돈을 들여 풋볼 팬타지움을 찾지 않더라도 FC서울의 팬샵인 팬파크와 팬카페에는 소소한 볼거리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K리그 전국의 K리그 경기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앙드레김을 닮은 슛힝이와 SNS용 사진 한 컷 찍는 것도 좋겠고, 팬샵에 들러 특가 상품을 득템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한 켠에 마련된 기념 코너에서는 구단이 오랜 역사 속에서 들어올린 많은 우승 트로피와 스쿼드를 이끌었던 수장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지만, 정작 축제의 메인 스테이지인 축구장 안에는 그리 많은 팬들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서울-포항이라는 훌륭한 매치업으로 일요일 낮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팬들은 겨우 1만 5천명을 웃돌았다. K리그 팬들 사이에서 흔히 ‘검빨 더비’로 불리는, 검은색과 붉은색을 상징으로 하는 두 팀의 대결이었지만 그라운드 안의 치열함이 관중석으로 불붙지는 않았다.


쉽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나는 최대 2만 3천명 정도의 관중을 기대하면서 경기장을 찾았기에 더욱 아쉬웠다. 이탈리아의 AC 밀란을 연상시키는 세로 줄무늬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는 FC서울과 브라질의 플라멩구를 연상시키는 가로 줄무늬의 검붉은 유니폼을 주로 입는 포항 스틸러스, 두 인기 구단의 대결이었지만, 상암 특유의 잿빛 스탠드와 시트가 레드와 블랙을 잠식하고 있어 아쉬웠다.


사실 어느 한 축제에 만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그건 꽤 큰 흥행이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의 K리그 실정에서 결코 적다고 여길 수 없는 관중이지만, 거대한 상암벌의 25%에 지나지 않은 셈이니 결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서울과 포항의 대결 이라는 것 자체도 축구팬에게는 흥미로운 이슈였고, 포항의 어제와 서울의 오늘을 대변하는 황선홍 감독의 존재, 포항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신광훈, 이명주 같은 선수들이 옛 동료들과 겨루는 경기이기도 했으니 더 큰 관심이 모일 법한 경기였다. 두 팀 팬들 사이의 특별한 지역 감정은 없겠지만, 주요 선수들이 이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새롭게 라이벌리를 형성할 수 있는 대결로 생각해왔기에 좀 더 많은 관중이 이 경기를 뜨겁게 즐기길 바랐다.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경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축구에, K리그에, FC서울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2002 한일 월드컵의 개막전이 열린 역사적인 장소이며, 대한민국이 독일을 상대로 4강전을 펼친 ‘꿈의 구장’이기도 하니까. FC서울의 홈 경기장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메인 스타디움이기도 한 이 멋진 경기장을 굳이 애써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한 때 <월드사커>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의 축구장 TOP10’에 포함되어 캄프 누, 산 시로, 산티아고 베르베나우, 암스테르담 아레나 등 유럽 최고의 축구 성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훌륭한 경기장이니 말이다. (때때로 잔디 상태는 전혀 훌륭하지 않을 때가 꽤 많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은 축구 외적으로도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이만한 곳을 찾기란 도심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난지한강공원 등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에서는 아름다운 한강 뷰를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노을과 어우러진 한강의 모습은 유난히 아름답다. 물론 한강 풍경이나 보러 가라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강보다 몇 배는 멋진 축구 경기를 즐겨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한강은 경기 끝나고 보는 게 더 예쁘다.



당신이 처음으로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전한 경기가 재미 없을 수도 있다.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축구의 신들만이, 그 중에서도 경기력을 관장하는 신만이 알고 있다. 월드컵도, UEFA 챔피언스리그도, 한일전도 재미 없을 땐 재미 없다. 그건 K리그도 마찬가지다. 분명 흥미진진한 경기가 열릴 수도, 지지부진한 경기가 열릴 수도 있다. 그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수많은 대체재가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축구가 기대에 못 미쳤다면, 경기장 내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관람하든, 푸드 코트와 식당가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든,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든, 찜질방에서 땀을 빼든 훌륭한 대안이 많다. 아니면 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마포 농수산물센터 시장에 가서 회나 한 접시 뜨던지. 하지만 굳이 그런 생각하지말자. 분명 당신이 몰랐던 재미가 있을 거다. TV를 통해보는 인기가요 따위가 뭐 그리 신나겠는가? 현장에서 즐기는 라이브 공연이 훨씬 더 재미있지. 여러분이 직접 목격할 축구라는 축제 역시 TV속 경기보다 훨씬 더 재밌을 것이다. 장담한다. 서울에는 축구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 글·사진 by 김다니엘(스포츠투어리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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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월드컵경기장

별칭: 상암벌 / 빅카이트

개장: 2001년 11월

수용인원: 약 66,000명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교통 : 지하철 6호선 서울월드컵경기장역에서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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