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drigo Domingos Dos Santos (부천FC1995)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다. 하물며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 온 외인(外人)들은 조금 더 외롭지 않을까? 비단 푸른 잔디 위에서는 강인한 전사처럼 보이는 축구선수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엇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딜 가든 눈에 띄기 마련이고,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와 환경에서는 작은 안락함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이질적이기까지 한 음식과 언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입에서 나가는 것도 생경하기 짝이 없다.
그런 곳에서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매력을 사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꿈을 찾아 왔든, 생활을 위해 왔든, 한국의 K리그를 통해 그들과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제법 특별한 인연이다. 그들에게서 한국에서의 삶과 꿈,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축구에 대해 들어본다. 축구장 밖에서는 분명한 외국인이지만, K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그라운드 위에서 국적이라는 아이덴티티는 90분간 사라진다. K리그라는 세계, 이른바, ‘K리그 문디알(Mundial)’을 이루고 있는 한 사람의 'K리거'일 뿐.
Q 안녕하세요? Kleague.com입니다. 아직 호드리고 선수가 낯설게 느껴질 한국의 축구팬들을을 위해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마토 그로소에서 온 호드리고 도밍고스 도스 산토스입니다. K리그 챌린지 부천FC1995 소속의 공격수입니다. K리그에서 플레이한 지 올해로 세 시즌 째가 되었습니다. 2014년에 처음 한국에 왔고, 지난해엔 일본과 브라질에서 활동하느라 잠시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올 여름에 다시 한국으로, 부천으로 돌아왔어요.
Q 한국의 K리그 그리고 부천이라는 도시와 클럽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 어떤가요?
A 좋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어 기쁘고, 부천에서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요. 태어나서 쭉 브라질에서만 살던 제가 처음으로 나가본 외국이 한국이었고, 축구선수로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낸 것도 한국의 K리그니 무척 특별한 기분입니다. 저는 축구를 할 때 제일 행복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축구를 할 때 좋은 성과들을 내왔어요. 그래서 행복하게 축구를 할 수 있는 한국과 부천이 더욱 소중합니다.
Q 부천에서 2시즌간 좋은 활약을 한 후에 일본으로 이적하게 됐고, 그 후 브라질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을 떠나 있던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A 부천에서 2년간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2016년에 아시아의 많은 클럽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았습니다. 좋은 오퍼들이 많았지만, 아내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일본 클럽의 제안을 선택하게 됐어요. 한국에 있는 동안 아내가 저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해준 바가 많았으니 그런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금전적으로도 좋은 조건을 제시 받았고요.
하지만 시즌을 앞두고 동계훈련을 하는데, 이상하게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완전하게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준비하다 부상이 악화된 것이었어요. 회복됐다 싶으면 부상이 재발했고,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습니다. 서너 게임 정도 출전했던 것 같아요. 그마저도 풀타임은 아니었고요. 고액연봉자에 외국인 선수로서 팀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게 참 괴로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행복한 축구’와 거리가 멀었어요. 그래서 소속팀 나가사키, 임대팀 기타큐슈와 협의해 브라질로 돌아가게 됐어요. 당시에는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00%의 실력을 보여줄 수 없는 몸 상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Q 은퇴까지 생각하게 했던 부상이 다행히 브라질에서는 잘 회복되었군요?
A 은퇴 시기를 고민하면서, 축구 이외의 커리어를 생각해보던 차에 브라질의 론드리나 클럽에서 단기 계약 제의를 해왔습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체계적인 재활과 치료를 통해 몸 상태를 회복시켜주겠다는 조건이었어요. 몸이 건강해야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때 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부상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1년 넘게 정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으니 경기력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몸 상태는 거의 최고조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몇 개월짜리 단기 계약 제의가 많았어요. 부상 공백기가 길었기에 저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부천은 달랐습니다. 제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을 거라 믿어준 것 같아요. 부천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K리그로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Q 한국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A 저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더 좋은 사람으로, 큰 사람으로 태어나게 됐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의 풍습과 문화, 예절,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부천이라는 클럽에서 팀 정신, 협동심 등을 몸소 깨달으며 성장했어요. 제가 제일 행복하게 운동했던 클럽이고, 부천에서의 생활 역시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일본에 있을 때도, 브라질에 있을 때도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부천의 상황을 주시하고 체크했습니다.
Q 처음부터 한국 적응이 수월했나요? 분명 어려운 점도 있었을 텐데요.
A 부천에 입단했을 때 외국인이 저 혼자였어요. 저도 외국인 선수로서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지만, 구단도 역시 외국인 선수에 대한 경험이나 노하우가 없어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아시다시피 부천은 재창단한 신생팀이라 당시에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부족했어요.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죠. 같이 뛰는 바그닝요나 닐손한테도 가끔 얘기해요. ‘야, 지금은 진짜 좋아진 거야… 나 때는 말이야.’(웃음)
시즌 전 동계훈련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 처음 나온 조식 메뉴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브라질에서는 보통 아침으로 커피 한 잔에 빵 한두 개, 오믈렛 같은 것을 먹는데, 당시 식단에는 김치, 나물, 쌀밥, 된장찌개, 이런 것들 밖에 없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식사를 거를 수는 없었죠. 그냥 무작정 먹었습니다. 지금이요? 지금은 빵도, 커피도 진짜 잘 나옵니다.(웃음) 2015시즌부터는 외국인 선수들을 위한 식단도 준비되기 시작했어요. 가끔 브라질 음식도 먹을 수 있고요.
Q 한국 축구, 부천의 축구는 어땠나요? 축구는 글로벌한 스포츠이지만,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국에서의 축구는 분명 다른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A 요즘은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브라질에서는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는 진짜 거의 공격만 해요. 물론 수비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은 달라요. 팀이 역습 위기에 처하면 공격수도 수비수와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해 백코트하고 수비에 가담해요. 그런 부분이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전술에 있어서도 조직력을 강조하는 편인데, 브라질에서는 아무래도 선수 개개인이 좀 더 자율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피지컬과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K리그는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고 봐요.
Q K리그나 한국 적응에 도움을 줬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A 부천에서 같이 뛰었던 알미르, 루키안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죠. 한국에서 오래 생활했던 알미르가 많은 부분을 도와줬고, 저는 훗날 팀에 합류한 루키안에게 여러 가지를 공유해줄 수 있었습니다. 루키안은 지금 안양에서 뛰고 있지만, 여전히 연락도 자주하고 가족처럼,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브라질 유학 경험이 있어 포르투갈어를 할 수 있는 최인창, 유대현 등과 친했어요. 지금은 안현진 통역관이 가장 친한 한국인 친구입니다.
좋은 동료들이 정말 많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이보예요. 이보는 제가 향수병에 시달리고, 의기소침에 있을 때 항상 먼저 연락해서 좋은 얘기들을 해줬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보내준 친구 같았어요. 늘 저에게 용기를 줬고, 힘이 되어줬던 게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워요. 그래서 저도 K리그에 새로운 브라질 선수가 들어오면 마음이 가요. 이보에게 도움 받았던 것처럼 저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에요.
Q K리그에 수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있잖아요. 혹시 브라질리안 커뮤니티 같은 것도 있나요?
A 음… 커뮤니티 같은 게 따로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다들 몇 다리 건너면 잘 아는 친구들이어서 굳이 그런 게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요. 늘 경기 전이나 후에 수다도 떨고, 시간이 맞을 때는 같이 식사도 하면서 즐겁게 친구처럼 지냅니다. 수원의 산토스랑도 가까워요. 브라질에 있을 때 팀메이트로 같이 뛰었던 적도 있고요.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조나탄도 잘 알아요. K리그의 브라질 선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는 고마운 존재들이죠
Q 어렸을 때 얘기를 해볼까요?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 그때도 지금처럼 공격수였어요?
A 사실 어렸을 때는 그냥 동네 친구들이랑 재미로 축구를 하는 정도였지,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어요. 포지션은 주로 공격수를 맡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다했죠. 동네축구니까. 저는 20세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팀에 소속되어 축구를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건축 현장에서도 일하고, 빵집에서도 일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축구와 일을 병행했습니다.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했어요.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13~14살 때부터 돈을 벌었어요. 생계를 위해, 생활을 위해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했고, 때로는 옳지 않은 일들을 하기도 했어요. 전기나 가스, 수도 같은 걸 어둠의 경로로 끌어다 쓰는 불법적인 일도 했고, 한국의 평범한 청소년이라면 결코 경험하지 않을 나쁜 일도 많이 했습니다. 축구라는 꿈이 생기기 전,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심이 자리잡기 전에는 좋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주변 환경을 탓했지만,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Q 축구선수로서 보낸 최고의 하루, 최악의 하루가 있다면요?
A 스무살 때 브라질 론드리나 클럽에서 한 경기에 네 골을 넣은 적이 있어요. 그날은 진짜 슛을 했다 하면 다 들어갔어요. 워낙 특별한 날이어서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에 비해 잘못한 날은 너무나 많아서 최악의 하루를 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불만족스러운 경기, 부족했던 경기가 훨씬 더 많죠.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축구선수가 그렇게 느낄 거예요.
Q 한국생활이 3년차 정도 됐는데, 이제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나요?
A 음…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특별히 어려운 점도, 이해가 안 되는 점도 없습니다. 굳이 한가지를 꼽자면, 한국 사람들의 운전습관이에요. 경적을 너무 쉽게 쉽게 자주 빵빵하고 울려대요. 브라질에서 운전 중에 경적을 울리는 건 ‘싸우자’는 의미거든요. 이제는 다 적응이 됐지만, 가끔씩 뒤에서 갑자기 경적이 들려오면, 순간적으로 ‘내려야 하나?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헷갈릴 때가 있을 정도예요.(웃음)
Q 선수 입장에서나, 축구팬의 입장에서 K리그의 이런 점은 아쉽다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요?
A 사실 K리그는 매우 수준 높고, 경쟁력 있는 리그예요. 1부리그 클래식, 2부리그 챌린지의 차이도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경기력만 두고 보면 브라질 프로 리그와도 엇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페셔널하게 잘 조직, 운영되는 리그이기도 하고요. 일부 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수준이 낮은 리그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중이 찾지 않는 점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그리고 K리그 챌린지 소속의 선수로서 안타까운 점은 미디어의 노출이 너무나 적다는 거예요. 물론 1부리그 클래식에 더 관심이 많이 가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클래식과 챌린지의 미디어 노출 빈도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Q 미디어에서 잘 볼 수 없으니 호드리고 선수를 보려면 경기장에 가야겠군요. 혹시 경기가 없는 날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어디 가면 호드리고 선수를 만날 수 있을지 부천 팬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요.
A 부천에서는 주로 상동의 H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내고요. 가끔은 파주 아울렛몰에서 아내와 쇼핑을 하거나 데이트를 합니다. 주로 파주와 부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네요.
Q 마지막으로 호드리고 선수에게 축구란, 한국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축구는 사랑이고, 행복입니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제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에요. 한국은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인간 호드리고를 성장하게 해준 나라입니다. 저는 축구도,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한국에서 배웠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를 더 큰 사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나라가 한국입니다.
INTERVIEW & PHOTO BY SPORTS TOURISM EDITOR DANIEL KIM FOR KLEAG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