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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우 May 13. 2018

채식주의자 선언

나는 채식하기로 했다

 채식은 육식을 하지 않는 식단으로 육류와 가금류, 어패류와 어류, 달걀, 유제품을 허용하는 정도에 따라 플렉시타리안(Flexitarian, 경우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채식)부터 비건(Vegan, 완전 채식)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질병이나 체질, 취향, 윤리적인 신념 등등으로 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윤리적 선택'일 것이라는 사회적인 편견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 다섯 중 넷은 "고기반찬 없이는 밥 먹기 싫다"는 투정을 해봤을 거다. 그만큼 육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상생활의 필요조건이 되어 있다. 누구나 채식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거라는 사실은 긴 계산 없이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은 생소하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은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채식주의자는 소수자(少數者)다. 우리나라에선 채식주의자가 '채밍아웃(채식+커밍아웃의 합성어)'을 하면 앞뒤 재지 않고 "그런 걸 왜 하냐", "돈이 많아서 채식하냐"와 같은 무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또, 일반음식점에 가면 메뉴를 고르지 못할 정도로 대부분의 식당이 '비건 메뉴'를 따로 준비해두지 않는다. 길거리의 어느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비건 메뉴를 찾을 수 있는 외국 문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채식주의자는 소외당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채식혐오사회'로부터.



내가 채식하는 이유


 5월 3일, 채식을 시작했다. 2년 전, '정말 그냥 어쩌다가' 채식하게 되었다는 어떤 분의 스피치를 듣고 내 맘 속에서 '채식'은 흥미로운 것으로 남아 있었다. 괜히 궁금해서, 어쩌면 한 번은 해볼지도 모르는 것. 그리고 2018년 5월 3일, 정말로 채식을 시작했다.

 그저 채식을 흉내 내는 데 그치는 게 싫어서 정보를 꽤 많이 찾아봤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는지, 육식 중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얼마나 다양한지, 어디서 그걸 먹을 수 있는지 등등. 그리고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인 건지, 아니면 채식하는 나의 행동이 먼저인 건지 고민하다가 그냥 채식을 시작해버렸다. 채식을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난 채식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이 행동을 따라간다고, 채식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내가 채식을 앞으로도 꾸준히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이유가 몇 개 생겼다.


 첫 번째, 채식은 나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정치적인 행위다. 육식 식성은 내가 유일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의 기득권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이성애자 비장애인 성인 남성이다. 나는 이성애자이기를 포기할 수도 없고, 비장애인이기를 포기할 수도 없고, 남성이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부모님의 소득을 포기할 수도 없고, 고졸 학력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육식성의 사회에서 나는 선택적으로 육식주의자이기를 포기할 수 있다. 식품의 거의 대부분이 공장식 축산업과 관련이 있는 이 육식성의 사회에서, 조금 힘들겠지만, 나는 육식주의라는 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채식의 이런 측면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두 번째, 채식 도전은 나에게 '소수자 되어보기' 경험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의 신체적 불편함을 직접 느껴보는 관례를 더러 한 신체 장애인이 "당신들은 나의 장애를 체험할 권리가 없다"라고 발언한 것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고작 하루, 그중에서도 몇 분동안 신체적 장애를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게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 그것은 신체적 장애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해도 가져다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수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말이 없는 사람들, 호모 사케르에 속하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 나에게 '소수자 되어보기' 경험은 무엇보다 값진 배움을 내게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 번째, 채식은 나로 하여금 나와 '사회적 소외 대상'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한다. 채식은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는 동물보호의 성격이 강하다. 다시 말하면, 채식은 소외 대상인 동물을 보호와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자는 관계 담론이다. "우리는 그저 인간이고, 그들은 그저 동물이고, 모두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데 인간은 무슨 권리로 동물을 학대하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으로서의 나'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내가 소외된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내가 어떤 가치를 좇으며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단순히 동물을 보호하자는 주장을 넘어서는 철학적 질문이 채식에는 있다.

 마지막으로, 채식은 건강에 좋다. 이번 방학엔 아예 채식 요리를 배워볼 생각이다.



최소한의 폭력을 향하여

서교동 '수카라'에서 먹은 비건 메뉴 "천연효모빵∙현미야채스프 플레이트"


 처음엔 육류와 가금류를 포함해 달걀,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을 하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유제품은 허용하는 락토(Lacto) 채식을 하는 중이다. 직접 채식을 해보니 정말 쉽지 않다. 기숙사에 사는지라 요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끼니 한 끼니가 고역이다. 평소에 즐겨 먹던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포함해 우유와 계란이 포함되어 있는 빵도 먹을 수 없으니 말이다.

 며칠 전에 회식 자리가 있었는데 식당에 가기 전 "저 채식해요"라고 말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식당에 비건 메뉴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실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회식 자리에 가기 직전 채식주의자에겐 세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본인의 채식을 위해 그냥 회식 자리를 피하거나, 본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채식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아 가게 하거나, 혹은 회식 자리에서 본인이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 채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 번째 선택지를 선택하고, 나 또한 그랬다. 주변 사람들에게 채식한다는 사실을 알린 나조차 이 정도인데, '채밍아웃'에 뒤따르는 시선과 관심이 꺼려져서 채식한다는 것을 숨긴 사람들의 공기는 얼마나 불편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나의 생존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동물이든, 지구이든지 간에요.
그게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최소한의 폭력적인 삶을 지향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린 너무나 주어진 것만 먹잖아요.
무엇을 먹든 선택할 권리는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택의 과정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 비로소 채식 김여운 대표 -


 단순히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해서'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식성이라는 것은, 그리고 동물 식품이라는 것은 폭력의 관계가 무수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전쟁이다. 그래서 채식을 통해 먹고, 먹히고, 강요하고, 낭비하고, 파괴하고, 채찍질하는 세상을 지양하자는 거다. 나는 그런 연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한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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