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끝까지 어머니셨다
결혼하고 이십오 년이 넘게 가사 노동에만 전념하셨던 우리 엄마는, 막내인 내가 대학에 가 집에 "정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처음으로 바깥 생활을 시작하셨다. 머리가 굳고 줄곧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던 나는 자식을 독립시킨 어머니가 겪는다는 그 공허함과 외로움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나 너무 집에만 계셔서 '집을 좋아하는 건 우리 엄마의 성격인가'라는 철없는 생각을 할 때쯤, 집 밖으로 나서겠다고 당당하게 포고하시는 엄마를 보고선 '엄마도 진짜 외로우셨겠구나', 뒤늦게 짐작했다.
'집을 벗어나' 엄마가 처음 하셨던 일은 봉사활동이었다. 엄마가 차려 주신 밥상을 먹으면 "우리 엄마는 진짜 장사해도 되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행복했다. 그 말을 흘려들으셨던 건 아닌지, 공립 약자 보호시설의 주방에서 끼니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봉사를 일 년 정도 하셨다. 정신없이 학교를 다니다 가족 채팅방에 활짝 올라왔던 엄마의 우수 봉사자 표창장은 꼭 다른 사람들도 우리 엄마가 자랑스럽단 걸 인정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대학교 일 학년 때였다. 부모님과는 소식이 적당히 뜸해 연락을 간단간단하게만 주고받다가 얼핏 엄마가 요즘 공부한다는 걸 들었다. 돈을 벌고 싶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를 하신다고. 마음이 좀 먹먹했다.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나면 우리 엄마 고생은 좀 수그러들려나 싶었는데 이젠 돈을 벌러 나가신다니.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별 말 안 했지만, 엄마가 돈 벌려고 공부하시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진짜로 좀 그랬다. 생각해보면 옛날에 아버지 일이 시원찮을 때마다 집안에 수공업 수주를 들여와 잠깐씩 생기는 자투리 시간에도 쉬지 않고 손을 혹사시킨 게 우리 엄마였다.
그렇게 엄마가 일을 하고 계신다고만 알고 있다가, 연휴에 집에 내려가 가족들과 얘기하면서 엄마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들었다. 엄마는 이제 막 아이를 낳은 가정에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산모의 산후조리를 보조하는 보모(베이비시터) 일을 하고 계셨다. 아이를 처음 낳아본 엄마들에게 육아 노하우를 알려줄 만큼 노련해야 하고, 집안일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산모의 건강에도 빠삭해야 하니 아이 셋을 키워낸 우리 엄마가 하기엔 꼭 알맞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엄마의 생활 반경이 '부양', '집안일', '육아', '가사노동' 같은 낱말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 같아서, 또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엄마는 조금씩 변했다. 예를 들면, 계약한 기간이 끝나고 그 집의 산모 부부가 챙겨준 선물을 가끔 받아 오시곤 했다. 또 말이 많아지시기도 했다. 베이비시터는 이삼주 간격으로 담당 가정이 바뀌기 때문에, "이 집은 어땠느니, 저 집은 어땠느니"─퇴근하고 오신 엄마 입에서 이야깃거리가 적지 않게 이어졌다.
집 밖으로 나가면서 엄마가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감사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나에겐 참 뜻깊은 일이었다. 아마 나 말고 누나나 아버지에게도 그랬을 거다. 엄마가 일터 이야기를 해주신 것 중에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세 자매 중 막내로 언니들보다 먼저 결혼한 탓에 육아에 도움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한 산모 분의 이야기다. 그분은 직업 특성상 출장을 자주 다니다 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그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산모의 남편 분은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대신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둘째 언니가 내려와 있었다고.
두 자매분께선 집안에 처음 태어난 아기를 매우 아끼셨다. 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더라고, 우리 엄마는 표현했다. 그러나 갓난아기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런 존재를 다루는 노하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알려주는 것들 하나하나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들은 건 아기의 딸꾹질을 멈추는 법인데, 갓난아기는 딸꾹질 하나에도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기 때문에 빨리 그쳐주는 게 중요하단다. 그런데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이 독특하다. 바로 아기를 울리는 거다. 아기 발바닥의 용천혈이라는 곳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아기는 반드시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데 아기가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면 이 용천혈을 눌러 아기를 울린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울면서 호흡의 안정을 찾게 되고, 딸꾹질이 멈추는 순이다. 딸꾹질 하나에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그 존재의 물성(物性)이 솜살같이 부드러운 아기의 호흡과 닮았다는 건 언제나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해본 적이 있다. 어느 웨딩홀의 주방보조 일이었다. 그땐 종일 서있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똑같은 일을 몇 시간 더 반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렇게 환멸스러웠다.
집 주변의 강가를 무식하게 내달렸던 어떤 여름엔 끝이 안 보이는, 지겹게 반복되는 노동이 사람에게 주는 정신적 고통을 가늠해본 적도 있다. 그땐 자랑스럽게 이십 년 근속 감사패를 받아온 아빠가 너무 불쌍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어떤 겨울엔, 나보다 몸이 무른 우리 엄마가 아침 일찍 나가 하루 종일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일하고 온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왠지 용돈 쓰기가 참 두려웠다. 마치 숫자로 가득한 꿈에 살다 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