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자전거가 생겼다.
오래 전, 동네 극장 앞에서 잃어버린 선경스마트 자전거 이후 30년만에 생긴 내 자전거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날마다 어서 퇴근해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하루 종일 엉덩이가 근질근질할 지경이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인데 하필 바쁠 즈음이라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씩, 그것도 저녁에나 타러 나간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어느날, 조용히 자전거 자물쇠를 푸는데 아내가 앞을 가로막더니 자기도 같이 나가야겠다는 거다.
"자전거가 없잖아?"
나는 정말로 안타까워하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건 안 돼?"
자전거가 있긴 있었다. 아이가 타던 미니벨로.
낡아서 구석에 쳐박아둔 오래된 자전거.
"저걸 타겠다고?"
나는 눈을 껌벅거렸다.
"왜? 언제는 좋은 거라며."
머리에 수만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저걸 언제 손보고 있나. 수리해도 잘 안 나갈 텐데. 동네 마실용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신경 쓰이게 왜 하필 지금인가 등등.
이건 마치 어릴 때 놀러 나가려는데 동생이 울며 따라붙는 난감한 상황 아닌가.
"저건 잘 안 나갈 텐데... 당신 많이 힘들 거야."
우려와 위협을 비벼 간곡한 만류의 문장을 내뱉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그건 내가 판단할 테니, 일단 손을 좀 봐주시오."
하는 수 없이 낡은 미니벨로를 주차장으로 가져가 털고 닦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었다.
먼지 좀 닦아냈을 뿐인데 점점 광이 나더니 그럭저럭 탈 만한 자전거로 변모했다.
'이 양반아, 이래봬도 나름 브랜드라고.'
여튼 이러해서 계획에 없던 부부동반 한강 라이딩이 시작됐다.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볼을 스치는 가을 저녁 강바람은 상쾌했고 자전거 도로는 지구 끝까지라도 뻗은 듯했다.
27단 기어가 달린 나의 새 자전거는 펄펄 뛰는 야생마 같았고 뒤에 따라붙은 그녀의 미니벨로도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삐걱삐걱' 하는 소리를 냈다.
아담한 아내의 체구에 맞는 자전거는 원래 그녀의 것인양 썩 어울렸다.
그래, 이거였는데. 왜 진작 이런 행복을 몰랐을까. 하하.
그런데 달리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미니벨로가 자꾸 멀어지는 거였다.
시속 20킬로미터에서 17킬로미터로, 다시 15킬로미터에 맞춰야 겨우 거리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습지공원 쉼터에서 페달을 멈췄다.
가로등 아래 벤치에 앉은 아내 이마에 땀방울이 반짝였다.
"자전거 새로 사줄까?."
"아니, 있는데 뭐 하러 또 사."
"그런가? 하긴 뭐 이것도 괜찮긴 하지. 허허"
새로 사주고 싶지만 놔둘 데도 없고 또 이 자전거는 버리게 되니 낭비 같긴 했다.
그래. 몇 번이나 탄다고. 곧 겨울이 오는데 천천히 나중에 사지 뭘.
첫 번째 라이딩이 끝난 뒤 한달 쯤 지나 딸아이와 둘이 짧은 여행을 하게 됐는데, 무슨 말을 하던 중엔가 아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아빤, 여자 마음을 몰라."
얼마 전, 바쁘단 핑계로 대충 넘어간 아내 생일 얘기를 하던 중이던 것 같은데
"그러니? 뭐 그런 거 같네. 근데 그때 아빠가 진짜로 바빠서 그랬어." 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게 아니라요. 엄마가 진짜 자전거 갖고 싶어 하시거든요?"
"아닌데? 아빠가 몇번이나 물어봤단 말이야. 싫다고 했어."
쓰다보니 자동차 글에 웬 자전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고 있나 싶은데, 기왕 썼으니 마무리를 지어보자.
아이의 일갈 이후 잠시 대화가 어색하게 끊겼다는 것.
내가 정말로 여자 마음을 모르는가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
그런 것쯤 모르는 남자가 속편하다는 결론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대충 수습하려 들었다는 것.
여튼 뼈아프다. 중학생 딸한테까지 무심한 남자로 찍히다니.
그러나 교훈은 있다.
나중에 아내에게 차를 사주게 되더라도 내 보기에 예쁜 차를 사주진 않겠다는 것.
운전하기 쉽다며 경차를 사주거나 어차피 긁을 테니 굳이 새차 필요없다며 현명한 척 중고차를 알아보진 말아야겠다는 것.
그녀가 좋아하는 SUV를 새차로, 기왕이면 통크게 테슬라 모델 X쯤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물론 먼저 그녀가 운전면허증을 따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니다, 지금은 새 자전거가 먼저로구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