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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Oct 25. 2023

이알티엠이라는 이상한 잡지

요즘 같은 때, 종이잡지로 태어난 용감한 매체에 대하여

1 오래 전, 여의도에 있을 때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대구탕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넌 좋겠다. 하고 싶던 일을 하잖아. 고딩 문예반 동기이자 당시 잘나가는 증권맨이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았는데. 매달 잡지를 만들면서 진짜 만들고 싶은 매체는 늘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항상 부족하고 뭔가 갈증과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 건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럼 만들고 싶은 건 뭔지. 그때도 지금도 실은 잘 모르겠다. 번성하던 잡지의 시절은 한참 지났는데, 요즘 보면 신기하게도 그 세계 스펙트럼이 그때보다 되레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기도 하다. 독특한 관점과 유니크한 디자인의 잡지가 눈에 띈다. 

마치 트렌드를 잘 아는 양 "요즘 누가 잡지를 봅니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잡지를 안 보는 사람이다.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우리 국민의 연간 도서 구매율은 믿기지 않을 만큼 미미하고, 잡지를 사는 사람은 더욱 적지만 당시 잡지에 실리는 광고는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넘쳐났었다… 다 지난 얘기다.


2 인스타를 보다가 새로 나온 잡지를 알게 됐다.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피커(Speeker)에서 나온 <이알티엠ertm>이라는 잡지다. 제호가 리얼타임이라니. 너무 멋진데? 라고 멋대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스피커의 er과 트레이드 마크의 tm을 합친 제호라고 한다. (그렇게 심오한 뜻이?) 패션지인지 여성지인지, 라이프스타일 잡지인지 그 모두인지 표지만 봤는데도 사고 싶어져서 즉시 네이버페이로 주문했다. 발행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감도로 잡지를 만드는지 알기 때문에 무슨 잡지인지는 안 중요했다. 그보다 잡지 마감이 지긋지긋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놓고는 이제와 자기 손으로 버젓이 잡지를 낸 게 괘씸(?)하고 궁금해서…. 이틀 후 도착한 책은 기대대로 근사했다. 책 자체로 예쁘고 품격이 있다. 잡지이든 단행본이든, 손에 쥐는 상품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다. 아트디렉터, 까탈스런 <하퍼스 바자> 편집장의 무한 요구를 오랫동안 받아내던 디자이너가 책의 꼴을 책임졌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발행인은 레터에서 요즘 같은 시대에 프린트 매거진을 내는 이유를 굳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 실은, 요즘 같은 시대이기에 종이 잡지가 필요하며, 가치를 빛낼 수 있다. 기능성이나 효용가치 모두에서 그러하다. 늘 그렇듯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일 뿐. 발행인은 그래서, 이제서야 평소 만들고 싶던 잡지를 만들었는지 나중에 물어보고 싶다. 도전의식이 물씬 생긴다.


3 이알티엠 창간호엔 광고가 한 페이지도 없다. 자신감인지 어떤 계획인지 모르나, 그래도 또는 그래서 더 근사해 보인다(광고 없는 매거진을 나도 만든 적 있어서). 격월로 나올 것이고 꾸준히 내놓을 거라 한다. 전직 <하퍼스 바자 코리아> 편집장이 만든 잡지인데, 경쟁지 <보그 코리아> 인스타에 떡하니 소개됐더라. 이런 점도 아는 사람에겐 슬며시 웃음 나는 재미 포인트. 화려한 비주얼 속 읽을 거리도 풍성하다. 패션의 ‘피’자도 모르는 내가 패션지를 아껴 읽게 될 줄은 몰랐네. 리얼타임, 아니 이알티엠이 부디 꾸준하기를. 그래서 프린트 매거진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를. 번창하기를 빌고 싶으나, 그보다 꾸준히 계속 나와주기를 바라고, 또 응원한다.

제주도에서 Speeker가 기획하여 만든 아트로드 2023. 제주의 힙한 공간 19군데를 발굴해 유명, 신진 작가 작품을 전시한다.
Speeker의 er과 트레이드마크의 tm을 합쳐 잡지 제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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