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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Oct 24. 2023

무풍생활

아껴 읽는 중

자려다 침대 협탁에 올려둔 이후의 책을 읽는다. <무풍생활> (열매문고). 

아껴 읽는 중. 


지난주 예준이랑 망원동 이후북스 갔을 때 샀고. 책이 가벼워 가볍게 시작한 책인데 오우~ 내용이 가볍지가 않네. 에피소드는 시골 일상이지만 반짝이는 사유가 흥건히 묻어나는 문장들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몇몇 글은 좋아서 여러 번 정독했다. 자기 전 읽고 공철에서도 읽는다. 


책을 쓴 이후 작가는 후배다. 실은 같이 일한 적 없어 후배라기엔 좀 애매하지만 전직 잡지 종사자였으니 업계 후배쯤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무난하겠다. 몇번의 통화와 문자. 얼굴은 비 오는 저녁 어쩌다 한 번 20분쯤 서서 만난 게 전부.


작가의 글도 우연히 만났다. 그가 무주 무풍에 살며 소소한 시골살이를 어느 매체에 연재 중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집어든 잡지에서 그 글을 딱 읽은 거지. 내 고향 무풍 이야기를. 


그 무렵 작가는 우리종가 재실이 있는 철목리 묘암마을(기바우)에서 한시적으로 살고 있었다. 나와는 언제부터인지 SNS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글을 읽고 (감동해서) 문득 용기 충만해 메신저로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무주 산골 무풍면의 생활 이야기를 소담하게 담고 있는데 아이와 일상을 살아가는 단순한 전원 살이 기록을 넘어 일과 관계, 지역문화에 대한 발견과 탐구를 기록하고 있다. 전직 에디터답게 문장도 너무 좋다. 가끔은 와 하는 탄성 나오는 비유를 천연덕스럽게 써놓았다. 예컨대 <어린 시절부터 책으로 세상을 배워 망상도 많았고 부작용도 있었지만, 독서는 역시 장점이 많은 취미다. 이따금 터지는 삶의 무릎을 꿰매는 데는 더없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장. 


면사무소 목욕탕 이야기는 정말 좋다. 제목이 숭고하고 다정한 목욕탕,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가 논길을 발랄하게 걷는 표지 사진도 예쁘고, 책 무게 만큼이나 산뜻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이 많은데 어쩐지 글을 읽는데 이상하게도 약간의 슬픔, 쓸쓸함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 일종의 외로움이라 해야 하나. 그런 애잔한 감상들. 고향 이야기라서 내가 감정이입을 과도하게 한 건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 무풍을 떠나 괴산에 살고 있다. 우연히 딸아이와 망원동 데이트 중 작은 독립서점(서점 이름도 이후북스다. 작가와 특별한 관계는 없다)에서 반가운 제목을 발견하고 카드를 긁으며 오랜만에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문자로) 깔깔 웃으며 우연히 지나는 길에 들러 달라 한다. 우연히 어쩌다 주말 배드민턴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났던 것처럼. 우연히 들르기엔 너무 먼 괴산이지만. 우연히 어쩌다 한 번은 지날 일이 있을까. 거긴 대학찰옥수수가 유명한 곳이니 찐옥수수 얻어먹을 겸 우연을 가장하여 일부러 갈 수도 있겠고. 책보다 열매문고가 궁금하여 찾아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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