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4 열네 번째
뭔가 어색하다. 왜인지 귀한 사람들이 연일 떠나가고, 그 실낱같은 인연의 아쉬움과 소중함이 밀려 온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더 많은 슬픔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신 샘의 묘역을 찾아가는 길은 소풍 같았다. 다같이 도시락을 싸서 좋아하는 노래를 돌려들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시간가는줄 모르고 나누는. 그 웃음소리가 참 좋았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한 가운데, 어쩌다 틀어버린 추모곡을 들으며 추모가 시작되었다. 똥또동또동 전주에서는 모두 웃었는데 노래가 마칠 적이 되니 경건해졌다. 이사하면서 찾은 다람쥐 신 샘이 숨겨놓은 담배 한 갑을 뜯어 향 대신 피우고, 정성껏 부친 전을 늘여놓고, 긴 침묵 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한 마디가 이어졌다. 형 너무했어, 그래도 힘 좀 보태줘. 소장님 밥을 못 해줘서 미안해요, 대신 사람들에게 밥 해줄게요. 하는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눈물도 참 좋았다. 웃음과 울음의 연결고리를 잘 반복하는 것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의 추모축제에서 모두가 느낀 힘과 감동이 있을텐데, 그 힘의 속성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힘이 일순간으로 휘발되지 않고, 사계절처럼 차이나는 반복으로 순환하려면 어때야 할까. 이 순간들을 소중히 잘 살려가고 싶다.
용인에 있는 묘역에는 비문이 이렇게 적혀 있다.
“떡갈나무 혁명을 만들어가는 도토리 한 알. 투쟁하면서 사랑하기, 걸으면서 묻기, 돌보면서 함께하기를 실천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두에게 분자혁명의 시작점이 될 것을 제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