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룬 2024.9.11
아주 행복한 밤을 보냈다. 순례길을 걸을 생각에 다양한 마음이 차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한 스님은 생의 말미 즈음에 오니 아, 나는 이 세상에 순례하러 왔구나 싶더란다. 그 말이 좋았다. 자연스러웠다. 어떤 사명도 어떤 과업도 어떤 목적도 아닌 그저 순례. 그러므로 순례에는 이유가 없다(그렇기에 이유가 있기도 하다). 이유란 있기도 없기도 한 것이다.
북쪽 길의 초입인 이룬Irun 이라는 마을이다. 프랑스 최남단의 엉데에서 철도 하나만 건너니 프랑스에서 스페인이 되었다. 아무도 검사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EU구나, 우리도 철조망 없이 국경을 넘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남과 북으로 두 국가로 나뉘어 살더라도 갈라질 것까지 있나. 내가 사는 곳은 파주니까 북에서 온 친구들 많이 생기겠네. 그럼 나는 평안북도가 고향이라던 할아버지 이야기로 말문을 터야겠다.
길을 걷기 시작할 때에는 온갖 잡념이 다 든다. 짐이 너무 무거운 건 아닌가. 가방은 제대로 메었나. 신발은 불편하지 않나. 너무 늦게 출발했나. 오랜만에 걷는데 제 때 도착할 수 있나 등. 물론 그냥 나서는 게 답이다. 고민과 잡념은 걸어가면서 푸는 것이기에. 그레고리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리지 말고 그냥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풀면 어떤가 싶다. 가다 보면 도착하듯이 풀다 보면 다 풀리겠지. 그렇게 늙어가는 것인가.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유레일 패스를 끊었는데 패스 개시일이 꼭 일 년 만이었다. 나는 일 년 만에 이 순례길을 또 걷는다.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구나. 그때는 할머니와 신 샘을 보내고 헛헛한 마음으로 미친 듯이 걸었는데 지금 나는 무슨 마음으로 걸으려나. 그런 생각이 괜스레 함께 든다.
그것 또한 걷다 보면 알 것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노트북을 책상 앞에 두고 가져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가지고 다니는 가벼운 친구가 맛이 가서 워커홀릭을 위한 무거운 친구가 남았다. 몇 번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출장인데 생각도 들고 마감해야 되는데 생각도 들고 그냥 내가 노트북 없이 어떻게 살지 싶었다. 바로 현대인의 중증 노트북 분리불안증이다. 스무 살 되고 어디 외출할 때 노트북 없이 나간 적이 있었나 싶다. 정말로 신체의 일부가 된 나의 노트북. 저번 순례길에 던져버리고 싶었던 나의 노트북. 이번엔 안녕.
길을 걷는데 노트북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짐은 10kg(끝날 때는 8kg)에서 6kg가 되었다. 다음 길에서는 3kg가 될 것 같다. 걸으면서 비우는 것을 배운다. 비우기 위해 걷는 것일지도.
자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