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7
40대 대기업 퇴직 후 특장차 기술자가 된 이야기
특장차 정비공이 되고 나서 매일같이
여러 자재를 만지지만, 그중에서도 내 손을
가장 빈번하게 거치는 것은 '철강재 파이프'다.
사실, 이 차갑고 무거운 쇳덩어리와
나는 제법 길고 깊은 인연이 있다.
종합상사에서 철강 트레이딩을 담당하던 시절,
내가 주로 다루던 품목 중 하나가 바로 이 파이프였다.
당시 우리 조직에서 이 품목을 담당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사이즈와 스펙이 워낙 다양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간다며 다들 기피하던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철강재에 비해 들이는 노력 대비
성과가 당장 눈에 띄지 않는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파이프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리 조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생각에 묘한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파이프 담당 4년 차가 되던 해,
새로운 파이프 경력직이 입사하면서
내 보직이 다른 품목으로 변경되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오랫동안 마음을 다해 만난 연인과
헤어지는 것 같았다.
그 상실감에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이 품목을 통해 경험하고 만났던 사람들을
깊이 애정하고 있었나 보다.
파이프를 담당할 때가 내 13년 상사맨 커리어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수출했고 실적도 가장 좋았던
리즈 시절이었다. 국내외로 출장도 참 많이 다녔다.
특히 늘 한정되어 있던 동남아 시장을 넘어,
미국과 페루까지 수출 시장을 넓혀 나갔던 그 과정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시차가 정반대인 지구 반대편과 교신하느라
밤 늦게까지 메일을 쓰고, 전화 통화는 물론
메신저로 실시간 대화를 이어가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시장을
내 손으로 만들어간다는 쾌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
그토록 치열하게 부딪혔기에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나를 가장 힘들고 미치게 만들었던 것도 파이프였고,
일하는 진짜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것도 파이프였다.
그래서 나는 늘 이 녀석을
'애증의 파이프'라고 불렀다.
그런데 대기업 명함을 버리고
특장차 정비공이 된 지금,
잿빛 공장 바닥에서 이 애증의 파이프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
상사맨 시절에는 모니터 앞 책상에 앉아 이 파이프를
한 번에 수백, 수천 톤씩 수출했지만,
지금은 작업복을 입고 그 파이프를 내 손으로
직접 자르고 가공한다.
내가 자른 파이프들은 탑차의 뼈대가 되어
도로 위를 쌩쌩 달린다.
가끔 파이프 표면에 잉크로 인쇄되어 있는
제조사 마크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한창 치열하게 넥타이를 매고 뛰어다니던 시절,
내가 밤새워가며 수출했던 바로 그 제조업체들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선적 서류와 이메일 텍스트로만 존재했던 그 파이프를,
지금 내 손으로 직접 자르고 용접 불꽃을 튀기며
다루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인생의 궤적은 참으로 알 수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파이프는 여전히
내 삶의 든든한 뼈대가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