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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Feb 05. 2017

작은 사람들, 트럼프를 막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하여

여느 날처럼 남편보다 30분 먼저 퇴근, 회사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섯 시 십분 쯤 됐을까, 남편이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달라고 전화가 왔다. 트럼프가 기습으로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 때문이라고 했다. 카타르에서 LA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 중인 클라이언트가 입국하지 못 했다는 거다. 미국에 50만 불을 투자, 미국 국무부의 심사를 2년 가까이 거쳐 영주권을 취득한 영주권자임에도 국적이 수단(Sudan)인 것이 문제였다.


취임하자마자 오바마케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멕시코에 장벽을 세우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며 1월 27일, 지난 금요일 오후에 '반이민 행정명령'을 기습으로 서명, 공표했다. 관련 부처인 미국 국무부와도 전혀 논의하지 않았기에 최측근 외에는 당일날 아침까지도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난민과 무슬림 다수 국가 총 7개국(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 국적자들의 입국을 즉각 막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미국 전역의 공항을 마비시켰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본국에 드레스를 가지러 다녀온 신부가 공항에 억류돼 결혼식에 못 가기도 하고, 남편의 클라이언트처럼 투자 이민이 다 결정되고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던 외국인 사업가가 공항에 발도 못 디딘 채 돌아가기도 했다. 대량 학살을 피해 온 난민들 역시 공항에 억류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Customs & Border Patrol은 누가, 얼마나 공항에 갇혀 있는지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 'Refugee Ban'_난민 수용 120일 유예명령

기존의 미국 난민 수용 프로그램(U.S. Refugee Admissions Program, USRAP)을 120일간 유예하되 시리아 난민 수용은 무기한으로 연기한다. 2017년 미국의 난민 수용 인원을 50,00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는데 이미 오바마 정부 때 29,895명을 승인, 20,000명이 대기 중이므로 오바마 정부에서 수용하기로 한 5만 명 이외에는 더 이상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만큼 난민 수용이 가장 시급한 시리아의 난민 수용을 무기한 유예하는 것 역시 난민을 받을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시리아 난민이더라도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규정이 모호해서 영사관 등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둘, 'Muslim Ban'_무슬림 다수국가 90일 비자 금지명령

90일간 무슬림 다수 국가 7개국(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의 비자를 전면 금지한다. 90일 중 30일은 7개국으로부터 테러리스트의 입국을 막기 위해 어떠한 정보를 받아야 할지를 자체적으로 검토한 후, 60일 동안에는 7개국 정부에 필요 정보를 요청하겠다고 한다. 그 중 협조적인 국가의 국민에게만 비자를 허용하고 아닐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비자 발급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얼핏 테러 방지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미 미국 국무부는 보통 2년 정도 걸리는 길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비자 발급 및 미국이민을 승인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각국 정부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출처: https://goo.gl/jfe0il)

트럼프 대통령은 9/11 테러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 7개국에 대해서 비자 금지령을 내렸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9/11 테러 주범들의 출신 국가들은 이번 무슬림 비자 금지령에서 제외됐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 9/11 테러 주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나머지는 UAE, 이집트, 레바논 출신이지만, 그 중 단 한 곳도 이번 비자 금지령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트럼프 본인의 비즈니스가 있는 국가들은 제외, 엉뚱한 이슬람 국가들을 지정, 비자를 전면 금지한 것이다.

 

셋, 비자 갱신 인터뷰 면제 프로그램 유예

영주권 등 이미 비자가 있는 경우, 비자를 갱신할 때에는 인터뷰를 생략할 수 있었으나, 이 조항에 따르면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모든 사람이 인터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행정 처리가 워낙 느리고 비자 심사 인력이 달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취업 비자 등 적시에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개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작은 사람들, 트럼프를 막다

반이민 행정명령 공표 후,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고, 여전히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나만 해도 미국에 고작 6개월 살아놓고선 시위에 나가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신참 이민자로서 공항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나간 LAX 공항의 Tom Bradley Terminal에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Refugees are welcome here. Immigrants are welcome here."

"We are all immigrants."

"No Border Wall! No Muslim Ban!"


제각기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그 날따라 허리가 많이 아팠지만 가만히 있는 대신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연 구름이 걷힌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항 한쪽에서는 도움을 제공하겠다며 모인 미국이민 변호사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영어를 못 하는 난민들을 돕겠다며 Farsi 통역자들도 줄을 서서 대기했다. 다들 나처럼, 남편처럼 이 말도 안 되는 폭력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뛰쳐 나온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소리를 내면서도 전혀 들리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큰 폭력에 저항하는 작은 사람들의 소리는 작지 않았다. 1월 27일 금요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기습 서명 및 공표한 반이민 행정명령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으로 일주일만에 임시적으로나마 그 효력이 중단됐다. 2월 3일, U.S. District Court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서 임시적 금지명령을 내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전국적으로 중지시켰다. 또한 Department of State, Customs and Border Patrol, Airlines 등 관련 부처 및 기관들이 모두 법원의 금지 명령에 따르기로 해 트럼프의 행정 명령은 현재 그 효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로 법원에 제고를 요청했지만, 2월 5일, 상위 법원인 9th Circuit Court of Appeals에서 이를 거부한다. 따라서, U.S. District Court의 임시적 금지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 시각으로 2월 6일, 내일 저녁이면, U.S. District Court의 임시적 금지명령을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금지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양측의 oral hearing이 이루어진다. 마음을 놓기에는 아주 잠깐의 시한부 승리지만,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소소하게나마 자축하고 싶다.


내일 밤도 지금처럼 마음이 가벼울 수 있길!

나도, 그들도 부디 자유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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