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사람 박코리 Jul 05. 2016

평일의 여유, 안녕!

겁 많은 아이도 안녕!

나를 받아주는 건 그래도 사무실-

취업을 했다. 언젠가 덜컥 사고 쳐도 괜찮을 뭉칫돈을 만들고 싶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내가 쓰기는 그래서 여기저기 틈날 때마다 이력서를 넣었다. 초콜릿 가게 등 다양한 곳에 지원을 했는데 DowntownLA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게 됐다. 초콜릿 가게에서는 남편 직업이 탄탄한데 왜 일하려 하냐는 질문을 들었다. 매일 50kg 상당의 박스들을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엄두가 안 나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사무직이 싫다며 호기롭게 여러 시도들을 했으나 결국에 나를 받아주는 곳은 사무실이다. 매달 30만 원 가까이 나가던 보험료를 아끼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 그 돈만큼은 따로 모아서 여행을 가야지!



평일의 여유, 안녕! 겁 많은 아이도 안녕!

이럴 줄 알았으면 운전면허를 미리 따둘 걸 그랬다. 하필 운전면허 시험날이 첫 출근날이다. 지난 네 달 간 시간은 많았는데 운전하기가 겁이 났다. 막상 운전 연수를 해보니 내가 굴린다고 차가 굴러가는 게 제법 신기하고 재밌다. 해보지도 않고선 왜 그렇게 버텼을까? 잔뜩 겁을 집어먹을 때면 고집이 세진다. 학부 때 지인의 소개로 외국계 은행에서 인턴 제안이 들어왔을 때 금융권은 적성에 맞지 않다며 단칼에 거절했었다. LA까지 와서 어떻게든 피하던 그 분야에서 일하게 됐다. 스물넷의 나는 도망을 쳤지만, 서른이 코 앞인 나는 그곳에 제 발로 들어간다.



하루를 차곡차곡, 그렇게 평생을 살기.

나의 삶은 객관적으로는 그저 그럴 수 있겠으나, 주관적으로는 아주 좋다. 하나둘씩 모은 그릇 몇 개를 넣은 가방 하나를 품에 폭 안고 서울서 LA로 왔다. 그 그릇들에 파스타를 해 먹고 된장찌개를 떠먹는다. 둘이서 살기에 낙낙한 아파트에서 하나둘씩 취향에 맞는 살림을 마련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Venice Beach에서-

집을 짓듯 매일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싶다. Vice President와 가진 최종 면접에서 장기 목표를 묻는데 따로 없다고 대답했다. 커리어 개발이 중요한 화두인 미국에서 그런 대답은 위험한 걸 알지만, 별 생각이 안 들었다.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던 적도 있었지만, 오늘의 나는 순간순간을 살아 내다보면 순식간에 살아지는 거라 생각한다, 삶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더라도 한결같은 바다를 닮아가고 싶다. 바다라고 사연이 없겠냐마는 거센 풍파마저 품어서 해가 갈수록 깊어지면 좋겠다.


커지고 요란해지는 대신에

당신과 내가 매일 깊어지길!


매거진의 이전글 라라 아저씨의 툴박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