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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Jun 11. 2016

라라 아저씨의 툴박스

그래서 나의 연장은 무엇이려나

싱크대 속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garbage disposal이 고장 났다. 스위치를 살짝만 올려도 무시무시한 굉음이 나서 배관공 아저씨를 찾았다. 우리 집에 배정된 아저씨의 이름은 어렸을 때 미미인형에 붙였던 이름 '라라'였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장면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도 '라라'였다. 전화로 미리 소개를 듣고 난 후 어떤 분일지 궁금했는데 후덕하고 인상 좋은 라틴계 아저씨가 오셨다. 라라 아저씨는 garbage disposal부터 고장 났는지도 몰랐던 air pump까지 말끔히 고쳐놓고 가셨다.


수리가 끝나고 아저씨는 한참 전에 이민 온 본인보다 내 영어가 낫다며 칭찬을 하셨다. 아저씨가 나의 영어에 감탄하는 동안 거꾸로 나는 아저씨의 연장 상자가 부러웠다. 저 작은 상자 안에 든 연장들로 아저씨는 아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딸 셋을 키웠겠구나, 싶어서.


이왕에 이민 온 것, 여기선 다 무용지물인 학력이나 경력을 다 리셋하고 원점에서 시작하자는 생각에 진로 고민을 하느라 마음이 복잡한 요즘이다. 50세 이전까지는 본인이 책임질 테니 50세 이후를 대비하라는 남편 덕에 누리는 호사이기에 감사하지만, 백지에 그림을 그리려니 점 하나 찍으려 해도 망설여진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주어지니 낯설고 어색하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대립하는 갈등 구도가 익숙하기에 그렇다.


나의 연장은 무엇이 되려나? 텅 빈 상자에 어떤 것들을 채워 넣어야 할까? 라라 아저씨의 나이쯤 됐을 땐, 내 연장 상자도 아저씨의 것처럼 알차게 채워져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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