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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Oct 20. 2018

이국에서 아이를 기르는 일

둘이서 왔는데 셋이 됐다.

Joy야, 세상엔 엄마랑 아빠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도시로 이주를 하면서 가장 걸린 건 '육아'였다. 남편과 나야 서로가 친구가 되어준다지만, 이방인인 부모 때문에 아이가 고립되지는 않을까, 마음에 걸렸다. Joy가 태어난 후 여러 가족들이 Joy를 보러 토론토로 와줬지만 다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매일 나랑만 눈을 맞추고 말을 하는 Joy는 어쩌면 세상에 나와 남편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서울과 LA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Joy가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곁에 머무는 어른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오직 둘이서 아이를 보는 남편과 나에게는 살짝 부담이 되는 일이다. Joy가 우리 말고도 다른 어른들을 보고 자랄 수 있었으면 했다.

가을비가 내린 어느 오후- 무시무시한 겨울이 오고 있다.

평일엔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집에만 콕 박혀 있었는데 Joy가 태어나고 나서는 거의 매일을 밖에 나간다. 날씨가 좋을 땐 공원에 가서 같이 바람을 맞고, 쌀쌀할 땐 집 앞 몰에 나가서 사람 구경을 한다. 세상엔 엄마, 아빠 두 사람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걸 Joy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국에서 첫 명절을 치렀다. 쓸쓸하긴커녕 복작복작했다.

내게 캐나다는 빨강머리 앤과 동계 올림픽의 나라다. 그만큼 막연하게만 알았다. 토론토 역시 어떤 곳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낯선 도시였다. 이국의 처음인 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쫄깃, 짭쪼롬하던 터키 요리! 왜 찰스는 못 하는 게 없을까?

추수감사절은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캐나다에도 있었다. 미국보다 날짜가 한 달 더 빠르다. 캐나다 사람도 몇 있긴 했지만, 이방인들끼리 모여서 이 곳의 명절, 'Canadian Thankgiving'을 보냈다. 남편의 미국인 동료가 차린 미국식 추수감사절 만찬을 먹으러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따로 요리를 할 시간이 없어서 샴페인을 사들고 Joy와 함께 갔다. 각자 싸들고 온 애피타이저로 시작, 짭조름하게 간이 잘 된 데다가 쫄깃한 터키, 바삭한 듯 촉촉한 스터핑부터 애플파이, 펌킨 파이까지 완벽한 미국식 명절상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만 먹게 되는 것까지 딱 명절이었다.

친구가 직접 구운 파이를 잘라먹으며 올해 감사한 일들을 돌아가면서 나눴다. 미국, 프랑스, 불가리아, 도미니카 공화국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감사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 낯선 도시에서 서로를 만난 걸 감사하고 있었다. 다들 Joy를 안고 싶어 해서 친정 엄마가 서울로 돌아간 이후 처음으로 아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저녁을 먹었다.



가족들과 멀리 살아서 미안해. 대신 넓은 세상을 보여게.  

시부모님께서 LA에서 Joy를 보러 오셨다. 시아버지께서 Joy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시고 춤을 추시는데 Joy가 키득거리면서 웃는다. 눈물이 찔끔 났다. Joy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 멀리 있다. 외로움을 잘 안 타는 편이라 이민 생활이 많이 버겁진 않은데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늘 아쉽다. 아이를 낳고 나니 더 그렇다. 내가 그랬듯 Joy도 가족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면 좋을 텐데 Joy한테는 나와 남편밖 없다. 할머니 냄새, 할아버지의 넉넉한 품, 이모 반찬 같은 것들을 우리는 무엇으로 대신 채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도 채울 수 없겠지. 대신에 다른 거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Joy에게 (우리 둘 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 어린 시절은 없겠지만, 다양한 도시 속 각기 다른 사람들과 환경을 보여주려 한다. '서울의 숨 가쁘지만 흥 많은 하루'부터 'LA에서의 비싸지만 다채로운 일상', '토론토의 심심하지만 건강한 생활'까지 잠깐의 여행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Joy는 커가면서 누릴 수 있겠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원하는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면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Joy가 알았음 좋겠다. 아, 하나 더 있다. 완벽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도 깨닫길!


이틀 전쯤인가 LA에 살 때 남편이 일하고 싶어 하던 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 LA 사무실로 들어오라는데 둘이서 잠깐 고민하거절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아가고 싶어 했던 LA였는데 오늘의 우리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을 다. 근 일 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어느새 이 곳, 토론토에 적응을 했나 보다. 처음엔 나가 놀 곳이 없어서 심심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대신에 둘이서 먹고 싶은 요리를 해 먹는다. 처음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갈수록 능숙해져서 점점 재밌다. 주말마다 약속이 있었던 전과 달리 이 곳에선 사람 만날 일이 많이 없어서 옷이나 화장품을 덜 사게 된다. 나도 모르게 폭 젖어 있던 LA에서의 '소비하는 삶' 대신에 '생산하는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론토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미국이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기에 이 곳 생활에는 끝이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나의 30대 초반을 이 곳에서 지내게 돼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 곳은 지루하지만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한 번씩 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LA 살 땐 한밤 중에도 집 근처 푸드 트럭에서 타코를 사 먹으러 나가고 했는데 여긴 야식을 먹고 싶어도 사 먹을 곳이 많이 없다. LA서 온종일 차로 이동했는데 여기선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많이 걷게 된다. 토론토로 오고 나서 볼록 나왔던 남편의 배가 쏙 들어갔다.



우리는 일 년 뒤 어디서 살고 있으려나?

둘이서 왔는데 이제는 셋이다.

우리는 일 년 뒤에 어디서 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Joy가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다닐 때쯤에는 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다. 그 전까진 지금의 유랑하는 삶을 조금 더 만끽해야지.



안녕! 나의 아가, Joy야!

사는 건 만만치 않지만 또 은근히 재미있는 일이란다.


네가 스무 살 때까지,

같이 재밌게 지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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