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Apr 11. 2024

일상의 행복주머니

힘든 순간 나를 지탱해 주는 소소한 행복들


힘든 순간 일상을 지탱하는 데는 거창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평상시에 그저 행복주머니 안에 소소한 행복 구슬들을 빛깔별로 담아두면 종종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로부터 우아한 방식으로 나를 지켜낼 수 있다. 자아를 하나에만 몰빵 하지 않고 적당히 분산하면 설사 하나가 조금 망하더라도 다른 것들에 잠시 집중하면 그만이니까. 삶이 내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올 때는 타인을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물러서 내 삶을 관조한다. 벚꽃이 만개한 완연한 봄을 맞아 오색 빛깔의 구슬들을 살포시 꺼내어본다.



수영


자유롭다.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결연한 의지로 앞으로 전진해 나갈 동력을 얻는다. 중력의 지배를 받아 지상에서의 일상이 때로는 무겁더라도 수영장 속으로 들어가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데, 부력이 선사하는 참을 수 없는 그 자유로움이 정말 좋다.


시원하다. 아무리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더라도 물결이 송골송골 맺힌 땀을 거둬가니 더운 줄 모르겠다.


재미있다. 전투적으로 자유형 하다가 뒤집어서 유유자적 배영하면서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도 음미하고, 여유롭게 평영 하면서 허벅지 셀룰라이트도 빼고, 종종 같은 레인의 수영 동지들과 잡담도 나누고.


체력이 증진된다. 심폐지구력과 폐활량이 강화되는 게 느껴진다. 혈색이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기 효능감이 높아진다. 꾸준히 수영하는 것, 점차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있어 뿌듯하다.


명상을 하는 것 같다. 디지털 기기와 단절되어 바른 자세, 일정한 호흡으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도 사라지고 오롯이 평온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당장 숨을 쉬어야 하는데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피아노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보며 정성을 다해 건반을 꾹꾹 누르다 보면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눈과 손, 그리고 페달을 밟는 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며 나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집중하다 보면 미련이 남는 과거와 미지의 미래를 향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현재에 머물 수 있다. 피아니스트처럼 완벽하고 실수 없게 연주하지 않아도 괜찮다. 불완전하고 조금은 엉성할지라도 거듭 연습하며 어제의 연주에 비해 오늘의 연주가 1퍼센트라도 조금 더 나아진다면 충분하다. 연주를 망쳐도 사실 상관없다. 마음의 위안을 주는 소울 푸드처럼, 감정을 촉촉하게 적시는 소울 피아노 작품이 1~2개 정도만 있더라도 일상이 풍요로워진다. 내게는 드뷔시의 달빛과 쇼팽 녹턴 13번이 소울 선율이다.




활자


먹고사니즘과 관련이 없는 다양한 종류의 책, 잡지, 글귀를 읽고 적절한 단어들을 적재적소에 골라 글로 찬찬히 풀어내다 보면 생각의 전환도 되고 양질의 새로운 생각들로 뇌를 리필할 수 있다. 한국어, 영어, 불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적힌 글들을 음미하는 과정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고, 글을 씀으로써 예민함도 좋은 방향으로 승화된다. 옆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이 함께라면 금상첨화.




약한 쨉 날리기


시시하고 약한 쨉을 날린다. 거창하고 강한 잽을 날리려고 하면 괜스레 마음에 부담이 되고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면 시작조차도 부담이 되니까, 하찮은 쨉을 자주 날린다. 구직할 때는 가령 이력서를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링크드인을 통해 넣고, 리크루터한테 먼저 메시지가 오면 대화나 나눠보자는 마음으로 응답한다. 프랑스어나 코딩도 한 번에 백점 맞으려고 하면 거들떠보기도 싫어지니까, 7-80% 정도의 최선으로 꾸역꾸역 질척 질척 깔짝거린다. 매일 30분 팟캐스트 섀도잉을 한다던지, 매일 알고리즘 문제를 3개 풀고 깃헙에 커밋한다던지. 배려심 넘치고 통 크게 타인을 도와주는 대인배는 아니지만, 매일 친구들에게 다정한 메시지 한 줄 정도는 보낼 수 있고, 생일 때 달다구리한 케이크 한 조각 정도는 사줄 수 있고, 위로가 필요한 지인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다.




오감 만족시키기


오감이 발달한 섬세한 사람들은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곱게 물든 석양을 넋 놓고 바라보기, 좋아하는 입생로랑 리브르 향수 한두 방울 뿌리기, 파릇파릇 생명력 강한 꽃봉오리와 새싹 음미하기, 새콤한 파김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같이 먹기, 습사우나의 후끈한 열기 느끼기, 아침에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감상하기, 잔잔한 로피 음악 듣기, 기분 좋게 불어오는 미풍을 맞기.



취향에 맞는 행복 구슬들이 다양하게 있으면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서 조금은 생동감 있게 춤을 출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소나무보다 강한 버드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