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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Nov 20. 2024

역이민 생각


2019년 11월, 한국에서의 첫 직장을 떠났다. 20대 후반의 나는 꿈 많고 에너지가 넘쳤다. 무모하리만치 사랑에 눈이 멀어 선 퇴사를 결심했고, 이듬해 곧바로 코로나와 함께 말도 안통하는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하고 합격하며 내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곳에 온지도 어느덧 4년이 조금 넘었고, 그 사이 서울대입구역 4번 출구의 5평짜리 원룸에서 시작된 고립과 유학 준비, 합격, 파리 공대 석사 입학, 인턴 구직의 스트레스 및 합격, 인턴십, 결혼과 첫 정규직 취업 준비, 취업, 유독한 사내 정치질을 못견디고 4개월만에 자발적 퇴사, 다시 이어진 취준, 6개월간의 현지 테크 스타트업에서의 업무, 불어 부족으로 인한 당일 해고, 그리고 또다시 반복된 공백.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고통스럽게 깨지고 배우는 시간을 거치며 분명 성장과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그닥 행복하지 않았다.




고립, 근본적인 외로움, 그리고 이방인의 정체성


프랑스에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불어 한 마디 못하던 채로 시작한 석사 생활은 대부분 집콕으로 이어졌고, 매 순간 구직은 긴장과 불안을 감수해야만 했다. 내가 겪은 프랑스의 직장 문화는 낯설지만 좋기도 하고, 때로는 냉정했다. 모든 도전의 끝에는 한 가지 진실이 있었다. 나는 이방인이다. 프랑스어가 유창해지고 삶이 익숙해진다 한들,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경계인의 외로움은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프랑스에서의 커리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분야는 급여와 성장의 상한선이 명확하다. 언어를 완벽히 구사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나의 전문 분야에 쏟을 노력과 에너지를 분산하여 더욱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계속 살아도 나는 주변인, 소수자일테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의 부모님은 나이드시겠지.




미래를 향한 선택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이방인의 외로움이 옅어질까? 아니면 새로운 선택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까? 나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이 고민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4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곳에서 이룬 것들도 있지만, 잃은 것들도 많았다. 이제는 새로운 장을 펼쳐야 할 때인지 모른다. 요즘 역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시 내 에너지를 찾고 싶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고민하며, 갈림길에 서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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