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느티나무 Feb 27. 2022

설화의 재탄생

 재료 모으는 중.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제공하는 우리나라 설화의 가짓수를 확인해 본 바로는 무려 3만 가지에 가까운 숫자였다.

흔히 알고 있는 설화는 말할 것도 없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설화가 부지기수였다.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읽다 보니, 경상도에 상당히 많은 사례가 있었다. 어째 그런가 했더니 동고서저의 지형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깊은 산속이라야 설화의 배경에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 아주 어린 시절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옛 이야기를 듣던 모습이 생각난다. 부채질을 해 주시면서 얘기를 해 주셨는데 금세 잠이 들곤 했다.

그때의 그런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인생의 반쯤 되었던 어느 날부터 그런 것에 대한 향수가 깊어지더니 종내에는 그런 설화를 잘 모아둔 곳(앞서의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을 종종 들려 오래 전부터 녹음해 두었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구전으로 전해 오는 설화들을 학자들이 직접 찾아가서 녹음을 한 뒤에 주제, 지역 등으로 구분해 두었다. 지역별 사투리로 녹음을 해 두었는데 듣다 보면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강원도 영서 지방의 사투리와 비슷한 사투리가 나오곤 했다. 

아무튼, 그런 자료를 한동안 듣다 보니, 이걸 지금 쓰는 표준어로 잘 각색해서 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편을 작성해 보았다(https://brunch.co.kr/brunchbook/k-fantasy).


하다 보니,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언젠가 같은 출판계에 있던 후배가 해 준 얘기가 떠올랐다.


"선배, 선배가 하는 모든 일들이 언젠가 그 결과로 나타날 거예요.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해 보세요."


힘이 들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난다.

덕분에 몇 가지 책을 사서 읽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미야베 미유키(미미 여사)' 작가의 시리즈를 사서 읽고 있고(일본 설화를 잘 엮어서 장편을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김동식 작가를 배출해 낸 요다 출판사의 <판타지 유니버스 창작 가이드>도 구해 두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테이 켈러의 <호랑이를 잡을 때>도 읽었다.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아직 그 세계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신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장덕순 선생님의 <설화문학개설>도 구해서 살펴 보았다.

이밖에도 몇 가지 책(러시아 동화 전집, 민담 형태론, 서유기)이 더 있는데 모두 읽고 정돈하는 데만도 적어도 1년은 걸리지 싶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서유기'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인터넷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며 김광주 선생(소설가 김훈의 선대인이시다)이 번역한 <정음사 본>을 추천해 주셨다.

학교 다닐 때 '중국의 4대 기서는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라고 외웠던 책들. 그 중 삼국지연의는 몇 차례나 읽었고 드라마로도 몇 차례나 봤다. 수호전(어문각)도 다 읽고, 최근에 올재에서 펴낸 걸 다시 구매했다. 금병매는 영화로 한 차례 정도 본 것 같고... 

서유기는 중학 시절 정도였을까, 더 어렸을까? 사촌 형네 놀러 갔을 때 책장에 꽂힌 전집 중에 눈에 띄어 꺼내 들었으나 '만지면 안 돼.'의 꾸지람을 듣고나선 내려 놓고 말았다.

그 뒤, 어디선가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책으로 읽은 내용 중에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바로 '붕어 한 마리가 득도한 내용'이었는데 그게 염화미소.와도 연결이 되었던 거 같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아무튼, 최근 서유기를 열심히 읽고 있는데 최초 집필가의 방대한 개념, 철학적 사유(논어, 맹자, 공자, 불교, 도교, 천국, 지옥, 부활 등)와 섬세한 필력에 무척 놀라고 있다. 최근에 알게 된 단어 하나는 팀원들에게 소개를 했는데 그 단어는 '鵝毛(아모)'라는 글자이다. 아모는 고니(백조, 혹은 거위)를 말한다. 그 글자가 쓰인 용례를 살펴 보면(소개하는 블로그가 극히 적다), 마음이 담긴 선물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어째서 가치 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단어를 본문에 씀에도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 쓴 걸 보고 자고로 유명한 작가들은 이러한 바탕을 준비한 뒤에 집필했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요새 브런치 글을 올리는 게 부쩍 뜸해졌다. 그에 앞서 좋은 책을 읽는 것부터 다시 하고 있다. 그게 바탕이 된 뒤에 다시 정돈해 보고, 그런 뒤에 수많은 습작을 해 보고, 종내에는 우리나라 설화가 바탕이 되는 장편 소설를 출간해 보는 게 최종 목표쯤 된다고 해야 할까?

^^ 쉽지 않겠지만 올해는 그 터를 닦는 원년이다.

남은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 하니 기분이 흐뭇하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반성(反省), 돌이켜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