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기 에미
시바타는 지관회사의 사원이다. 팀의 유일한 여자 사원이라는 이유로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오고 치우는 일을 도맡는다. 남자 신입이 들어와도 커피 수발은 시바타의 몫이다. 다른 직원들은 자기 커피는 알아서 타 마시면서 손님만 오면 갑자기 티백도 뜯을줄 모르는 양 군다.
어느날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시바타는 "저 사실 임신했거든요. 커피 냄새 때문에 입덧이 올라와요"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게 미혼 여성 시바타의 가짜 임신 생활이 시작된다.
임신부가 된 시바타는 정시 퇴근, 여유로운 저녁 생활을 누리게 된다.
시바타의 임신에 여러모로 관심을 보이고 신경쓰는 다른 사원들 덕에 임신부용 스트레칭, 임신부용 식단 등을 하게 되면서 시바타는 점점 건강해지고 살도 붙는다. 가짜 임신 중엽부터는 임신부 에어로빅반에 등록해 다른 임신부들과 우정을 쌓기도 한다.
남자들은 변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시바타가 맡던 '부서에 선물 들어오면 각 사원 자리로 가서 나눠주기' 업무는 시바타의 임신 이후 사라져버린다. 커피 내가기는 옆 부서 여사원을 데려와서 시켰다. 연말 회식 자리에서 시바타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남자 상사는 굳이 여사원이 볶음밥을 덜어줄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린다.
시바타는 변했다.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달리 다른 대안이 없어 지루한 회사 생활에 고여있던 시바타는 가짜 임신을 계기로 운동도 하고 접어두었던 이직 계획도 펼쳐본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 이 책은 페미니즘적이라기보다는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 현실이 워낙 불공평하기 때문에 독자는 두드러진 여성차별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에어로빅반 동기인 한 여성은 출산 후, 자꾸 우는 갓난 아기를 밖에 데리고 나와서 어르다가
시바타를 만나서 남편을 향한 울분을 쏟아낸다.
"아기를 낳은 후에는 모유수유 빼고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조건인데 도대체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 폐를 끼치길 꺼리는 일본 사회의 정서를 보여주듯
이웃집들은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소리나게 닫는다.
시바타는 처음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하소연하는 여성을 달랜다.
제36회 다자이오사무상을 수상한 야기 에미의 소설 <가짜 산모수첩>은
친구, 회사, 이웃과 동떨어져 겉돌며 살던 주인공이
어느날 덜컥 가짜로 만들어버린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어떻게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콘텐츠 속에서 비혼은 어느덧 딱히 거창한 설명을 동반하지 않아도
하나의 삶의 형태로 자리잡은 듯 하다. 시바타가 결국 누군가와 만나 해피엔딩을 이루거나, 사회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결말은 아니다. 혼자이지만 묵묵히 걸어나가는 모습을 소설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