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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Jan 24. 2024

나의 투블럭 이야기

머리카락 '단백질 히잡'

탈코르셋. 코르셋을 벗는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여성주의적 실천이다.

화장을 하지 않고 거추장 스럽고 비싸고 질이 좋지 않으며 비싼 옷을 소비하지 않는 것은 쉬웠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보통 가장 마지막 단게인데 나도 그랬다.

단발머리를 고수했지만 숏컷이나 투블럭을 시도하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울릴까 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묶이는 정도의 머리 길이가 관리하기 더 쉬운 건 아닐까 하는 핑게 아닌 핑계도 있었다.



어느 여름 충동적으로 미용실을 찾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한몫했다.

별다른 일정도 없었고 한번쯤 잘라보고 싶었다.

앞서간 이들이 말한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

미용사는 여러번 물었다. 투블럭, 남자들이 하는 투블럭을 원하시는게 맞냐고.



거침없는 가위질이 시작됐다.

머리가 잘려갈수록 이목구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남자 형제와 딴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닮아 보이더니 어쩐지 꽤 잘생긴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머리를 감고 탈탈 터는데 넉넉히 5분이면 끝났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머리카락의 무게가 없어지고 나서야 새삼 느껴졌다.

무엇봐 좋았던건 언제 어디서나 벌러덩 드러누워도 뒷덜미에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

화장을 하지 않고 꾸미지 않는 스타일이 머리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3주에 한번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을 찾는게 귀찮다면 귀찮은 일이지만 생활의 소소한 환기가 되기도 했다.



겉모습의 변화는 생각보다 큰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머리카락은 죽은 각질에 불과한데 그 동안 나는 때때마다 어떤 커트를 할지 어떤 펌을 할지 사진을 찾아보고 기십만원이 넘는 거금을 치르고도

원하는 머리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매일 아침 몇 십분을 머리 단장에 소요하곤 했다.



그래서 어떤 여성주의자들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단백질 히잡이라고도 부른다.

크게 동의하는 바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굳이 모두가 머리를 잘라볼 필요는 없겠으나 우리는 충분히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리고 혹시 여건이 된다면 한번쯤은 권한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겉모습이란 없다.

청결하고 단정하기만 하다면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겉모습이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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