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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용 김은 Aug 12. 2016

시, 유자차

시인 김은 시

유자차


김은


얼어붙은 뚜껑을 억지로 따다가 그만

내 달아오른 손바닥만 베었다

빨간 방울이 방울방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시간들

창밖엔 쉴새 없이 찌르릉 자전거 소리

왠지 문을 열어봐야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이 달라붙은 흐린 오후

이 분의 일로 담가진 애매한 그 속으로

보다 주름진 손바닥이 스친다


단단한 열매 같았을 동그란 그녀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굳고 차가운 스푼을 딛고 일어나

움켜쥔 그 틈 사이로 벗어나려는 중이다

너와 나는 잘 모르는 한 여자

이 안에 방부제를 넣은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내 병 안에서 팽팽하다

정지한 뚜껑과 뚜껑 사이,

멈춘 그들은 점점 더 진해진다


유독 모난 말처럼 씹어진 유자 꼭지를 뱉는다

그 여느 날처럼 노란 살점들이 씁쓸하다

다시 굳게 잠긴 유자의 또 다른 배꼽이 보인다

남과는 좀 다르다던 내 배꼽도 점점 시리다


와중에 끈적끈적한 라디오에서 흘러

찌르릉 보채며 가슴에 자꾸 달라붙는 한 노래.


문예지 [문학세계] 2015


china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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