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은 시
유자차
김은
얼어붙은 뚜껑을 억지로 따다가 그만
내 달아오른 손바닥만 베었다
빨간 방울이 방울방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시간들
창밖엔 쉴새 없이 찌르릉 자전거 소리
왠지 문을 열어봐야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이 달라붙은 흐린 오후
이 분의 일로 담가진 애매한 그 속으로
보다 주름진 손바닥이 스친다
단단한 열매 같았을 동그란 그녀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굳고 차가운 스푼을 딛고 일어나
움켜쥔 그 틈 사이로 벗어나려는 중이다
너와 나는 잘 모르는 한 여자
이 안에 방부제를 넣은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내 병 안에서 팽팽하다
정지한 뚜껑과 뚜껑 사이,
멈춘 그들은 점점 더 진해진다
유독 모난 말처럼 씹어진 유자 꼭지를 뱉는다
그 여느 날처럼 노란 살점들이 씁쓸하다
다시 굳게 잠긴 유자의 또 다른 배꼽이 보인다
남과는 좀 다르다던 내 배꼽도 점점 시리다
와중에 끈적끈적한 라디오에서 흘러
찌르릉 보채며 가슴에 자꾸 달라붙는 한 노래.
문예지 [문학세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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