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이대로 머물러 줄 수 있다면

by DJDJ


퇴근길.. 이미 어두워진 겨울 저녁..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그다지 춥지 않은 바깥 날씨 속에 여의도의 칼바람 사이를 걷고 있었다. 불현듯..


'현정아, 네가 이제 더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어쩌면 힘들었는지조차 모르고 흘러간 육아의 고통 속에서 처음으로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강력한 확신이었다. 그저 가끔씩 네가 웃고 아장거릴 때마다 지나가는 말로 하던 표현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한없이 품고 싶은 마음... 그렇게 아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온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나는 아기를 싫어했다.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울음소리, 소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바랄 수 없는 상황들, 이성이라는 자리가 비집고 들어갈 수조차 없는 답답함의 연속... 어렸을 적 네 할머니를 따라갔던 시장에서 누군가의 등 뒤 포대기에 감싸져 아무렇게나 손을 휘저으며 이것저것 만져대는 아기의 모습과 울며 떼를 쓰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들의 발버둥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혀를 찼었다. 아직 나도 그리 철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을 지나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는 그다음 장면들이 그려지곤 했다. 끝까지 엄마들을 당황하게 하는 아이들의 비합리적인 행동들이 연속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큰아빠의 아이들이 갓난아이였을 때도 나는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조카들에게는 그리 친근하고 좋은 삼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들을 싫어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자만하던 2013년의 어느 날, 네 엄마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저 사랑의 결실이라는 천진난만한 생각으로 결혼만을 목적이라 여기며 소위 가정이라는 것을 꾸미게 되었다. 아니다. 가정의 꾸림을 당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스트레스 상황을 시나리오별로 생각해 둘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새 너는 나에게 밀물처럼 다가와 있었다.


등 센서가 유난히 예민했던 너, 밤마다 2시간을 채 못 채우고 울며 보채는 너에게 매일 밤마다 몇 차례씩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36.5도의 물 온도와 400mg의 분유를 감각적으로 혼합하던 수많은 밤...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집에서 너와 둘만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네 엄마가 미쳐버리지는 않을지, 화가 나서 너를 집어던지거나 험한 행동들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하기를 몇 년... 그렇게 너는 우리 가족 구성원의 개체수를 1만큼 늘려주었고, 돌봄의 대상으로 온전히 아껴야만 하고 잘 보존해야만 하는 천연기념물처럼 우리 곁을 그득히 채우고 있었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다. 생각의 확장은 여기까지였다. 나 자신의 인생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 따위를 생각하기에는 내 마음의 호수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아니 그 호수는 점점 메말라 사막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뒤돌아볼 틈도 없는 매일이 반복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육아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로 인해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랫동안 켜지 않고 지냈던 벽에 달린 전구 스위치를 누른 기분이었다. 갑자기 너의 지금의 모습 그대로 정지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간은 가지만 너의 시간은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날카롭게 뇌리에 파고들었다.


피곤했었나 보다. 집에 도착하고 몸이 좋지 않아 소파에 누워 있는 나에게 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장아장 다가온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손바닥으로 내 배를 후려치며,


"자지 마, 일어나~!"


란다. 난 또,


"아빠, 어디 아파?"


하며 세상 근심 걱정을 다 담은 얼굴일 거라 생각하고 살며시 미소 짓고는 다가오는 너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또 잠시 나의 지금을 잊어버렸나 보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청개구리 내 딸. 행복한 순간이라고 인지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레 든 나의 생각은 내가 이미 행복하다는 반증이었다. 시간이 멎었으면 싶을 정도로 지금의 너에게 집중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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