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그리고 새로움

새로움을 받아들일 때

by DJDJ


지금까지 살면서 외국 생활을 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한 번쯤은 다녀와야 했던 그 흔한(이 글을 고쳐 쓰는 2020년의 오늘, 이제는 코로나 사태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배낭여행을 빼고 나면, 그래도 2년 가까운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던 2008년 맨해튼에서의 1년... 세상에서 가장 발전한 문물을 한꺼번에 체험했던 나는, 맨해튼의 중앙에서도 그 한가운데에 있는 37번가에 위치한 10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 살았었는데(그 집도 한겨울 북대서양 북서쪽에 무시무시한 추위를 견디며 맨해튼 섬 안에서 30군데가 넘는 집들을 동서남북으로 헤매 다닌 끝에 너무 지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구하게 되었던 곳이다.), 아파트 계단을 다 내려와 정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돌아 15 발자국 정도만 걸어나가면 큰 길이 있었고, 대각선을 쳐다보면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열차들의 시작점인 펜 스테이션이, 왼쪽을 쳐다보면 타임스퀘어의 광고판에서 간혹 우리나라의 삼성과 같은 브랜드의 광고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에 살았었다. 학원이 있는 뉴욕대학교 근처로 가기 위해 옐로 라인이라는 우리나라의 분당선과 같은 색의 지하철을 타려면 메이시스 본점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매일 같이 지나다녀야 했고, 때로는 블록마다 즐비한 경찰들에 신기해하며 뉴욕커 흉내를 내곤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더 흘러 대학원 시절 교환학생 신분으로 일리노이에 6개월 남짓 지낸 시간까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미국에 신비로움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흐리고 추운 날씨만 탓하는 뒷방 늙은이처럼 외국에서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는 미국에서 무엇이든 사 가면 한국에서는 물 건너 온 것이라며 신기해했고, 이를 이용한 장사들은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 새로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아마 사람들이 그러했을 터... 나의 고향은 제주도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왔을 때에도 경계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했었고, 나만 이곳에 속해있지 않은 듯한 어색함을 이겨내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낯설었던 만큼 신기했고, 그 새로움에 조금이라도 먼저 익숙해지려 노력했었다. 마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덜 새로워하고 덜 놀라워하려고 애를 썼고, 조금은 나이가 든 지금은 새로움에 대하여 뒤처지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겸손해지는 법을 아주 조금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보면 그마저도 부족할 뿐, 아마도 나의 새로움에 대한 반사적인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는 척 쟁이 같으니...


세월이 흘러 2017년의 지금은 세상 자체가 새로움이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미래학자들이 이야기하던 세계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클릭 몇 번이면 해외 직구 사이트를 통해 신제품을 현지 가격에 얼마간의 배송비를 붙여(때로는 배송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기를 당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구매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너를 위해 보라와 함께 해외 직구 사이트를 보며 무엇이 너에게 잘 어울릴지 고민하기를 벌써 3년(이 글을 고쳐 쓰는 2020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다오.)... 짜잔~보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받아보는 너를 위한 신상! 이럴 때 나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 뿌듯하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했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러했고, 지금도 자식들에게 무엇을 해 주면 주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바로 그 모습처럼. 역시, 가장의 역할은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 안정에 이바지하고 때로는 신상을 결제해 주는 모습으로 그 위엄을 자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새로움을 경험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주며, 새로움을 만끽하는 에너지를 나와 같은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이었던 지난날이 되새겨진다. 비싼 물건을 탐내 하고, 부모님께서 사다 주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갑분싸”를 자아내며 당신들을 속상하게 했던 어릴 적 어리석음이 나는 이제 이리도 후회가 된다. 차라리 4살배기 어린애처럼 무엇을 주어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너처럼 저렇게 잘 입어주기만 했었어도 우리네 부모님은 부모로서의 자존심과 새로움을 만끽하는 행복으로 내내 웃을 수 있었을 것인데... 내 스스로의 과거가 이렇게 부끄럽고 후회되지는 않았을 것을...


더 열심히 아끼고, 절약해서 너에게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지만, 오늘 밤도 치솟는 이번 달 카드값에 조금은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샐러리맨의 운명인가 보다. 새로움을 안겨주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나의 과거와 같이 새로움을 대할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거만함과 알량한 자존심, 그 부분만은 거두어내어 고쳐서 네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계속 너에게 새로움을 안겨줄 수 있도록 그렇게 새로움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테니... 내 딸아, 너는 이 고집스러운 아재를 위해 가끔씩은 그런 새로운 경험을 나눠주며 새로움에 대한 나의 태도를 올바로 고쳐주는 새로운 인생을 펼쳤으면 한다.

keyword
이전 01화시간이 이대로 머물러 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