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9 / 5.08 k
오랜만에 달리기 패턴을 바꾸어 보았다. 걸어서 홍제천까지 걸어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간 후에, 거기서부터 일정구간 달리는 것으로.
날씨가 꽤나 따뜻해지고 있어서 자전거 바퀴에 바람도 넣을 겸, 자전거를 끌고 나가보았다. 겨울 내내 잠들어있던 자전거를 오랜만에 탔더니 앞바퀴에 바람이 빠져 덜컹거리고 있었다. 근처 자전거 가게에서 바퀴에 바람을 넣고 망원 한강지구까지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햇빛도 좋고, 온도도 제법 올라서 기분이 좋아 망원 한강지구 입구에 자전거를 대고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갑작스레 바꾸었다. 좀 더 자전거를 타다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걸로 하자. 사람과 차를 요리조리 피해 자전거를 타야 하는 시내 길보다는, 한강 자전거길을 방해 없이 주욱 타는 것이 훨씬 신나기 때문이다. 양화대교 밑에 자전거를 대고, 서강대교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달리기 bgm은 새 앨범을 낸 방탄.
방탄소년단의 새 노래를 들으며 서강대교를 따라 달리다 보니 갑자기 봉준호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한가로워 보이는 한강인데 여기서 괴물 같은 영화를 생각해 내다니, 그 감독은 내가 종종 가는 카페의 푸딩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고, 아카데미상에서 한국말로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는 그 장면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달리기 속도에 리듬을 넣어주고 있는 방탄 역시 전 세계의 아미들이 그들이 하는 말이 뭔지 알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있지 않던가, 한국같이 작은 나라고, 이 언어를 쓰는 국가가 하나 (아니 두 나라,라고 해야 하나)인데 그 언어가 어떤 문화 컨텐츠에 의해 이렇게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새삼 새삼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앨범에선 Respect 이 노래가 달리기 딱 좋은 노래 구만, 하며 5k를 막 채워가던 참이었다. 갑자기 한강공원에 방송이 흘러나온다. 코로나 예방하라는 방송을 한강에서도 하는 건가, 싶어서 흘려듣고 있었는데 뭔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카드, 분실, 000”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방송은 한 번뿐이어서 혹시 지갑 또 없어진 건가 싶어 그제야 주머니를 뒤적여 보니, 카드지갑이 또 사라져 있었다. 사실 이번이 세 번째라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한라산 등반하다가 윗세오름에서 한 번, 출근하다 망원역에서 개찰구에 태그 하자마자 한 번, 오늘이 벌써 세 번째. 폰케이스가 고무라 마찰력이 있는 편이라 폰을 꺼내며 자꾸만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진 것을 깨달을 때마다 카드와 신분증을 재발급해야 할 생각에 귀찮음이 하나, 3년이나 쓴 카드지갑이라 아쉬운 마음이 하나, 왠지 모르게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하나씩 교차되어 올라왔다. 이번에는 사라진 것을 깨닫기도 전에 찾아가라는 부름이 먼저였지만 말이다. 방송에서 어디 와서 찾아가라고 한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아 120에 전화해서 망원지구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 보았다. 그들도 아마 와서 찾아가야 할 텐데라는 마음 반, 과연 방송을 듣고 찾아오기는 할까라는 마음 반으로 방송을 하지 않았을까. 전화를 했더니 내 신분증에 적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는, 축구장 옆에 있는 망원지구대에 와서 찾아가라고 알려주었다. 어떤 커플이 와서 맡겨놓고 갔다고 하는데, 거기에 이런 역할을 하는 지구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사람들도 신기하고, 시설만 달랑 있을 줄 알았던 한강공원에 이런 지구대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세 번이나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가 찾았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 지갑을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이 카드지갑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니면 이 지갑을 보면 주인을 꼭 찾아줘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거나. 지갑을 찾아 돌아오며 한국은 그래도 살기엔 괜찮은 나라인 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