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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07. 2020

달리는 마음. 새해맞이

2020.1.1. 수

새해맞이 달리기를 했다. 집에서 불광천으로 내려가면 러닝 앱을 켜고 바로 뛰는 편인데 오늘은 날이 추우니 최소한의 준비운동(손목 두 번 발목 두 번 돌리기)을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뛰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10월 중순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앱의 기록을 보니 11월 초에 두 번 더 뛰었다.)  

 어제 친구들과 겨울에 달리기할 때 챙겨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예전에 겨울에 뛰었던 기억을 더듬어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는 곳과 달리면서 매우 시렸던 신체 말단 부위를 생각했다. 모자, 목도리, 장갑, 마스크... 마지막으로 귀가 엄청 시렸던 게 생각이 나서 귀마개까지. 마침 명동에 있어서 내친김에 오천 원짜리 귀마개도 셋이 단체로 샀다. 디자인이 아쉬웠지만 가볍고 따뜻하고 소리가 잘 들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보러 오랜만에 명동에 간 건데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스트릿 푸드는 진화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장어도 굽고, 독에 묻은 고구마도 봤다.) 나도 명동이 신기하면서 괜히 외국인들의 표정이 어떤지 살폈다. 명동 거리의 중심을 지나며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이라는 그 자리에 원래 무슨 가게였지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는 원래가 언제를 말하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대학생 때가 떠올랐고 그걸 기준으로 삼기 어렵구나 생각했다. 글쎄. 하지만 뭔가, 그때, 엄청난 프랜차이즈였는데. 엄청난 게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빨리 영화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영하 10도에 가깝게 날이 추웠다. 내일도 이렇게 추우면 곤란한데. 

 다음날인 오늘 모자, 목도리, 장갑, 귀마개, 마스크를 챙겼다. 다행히 오늘은 어제만큼 춥지 않아 마스크는 주머니에 넣고 뛰었다. 주머니에는 손수건, 에어팟, 립밤도 있었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어서 겹마다 주머니에 이것저것 넣을 수 있었다. 물건을 꺼내려면 어느 주머니에 있는지 찾는 게 수고스럽긴 했다. 한 주머니에는 들깨 가루가 있었다. 오늘 새해니까 달리기를 하고 나서 떡국을 끓여 먹기로 했다. 들깨가루를 새로 사기 부담스러워서 집에 있는 재료를 요리할 만큼 비닐팩에 담아 주머니에 넣었는데 어디서 본건 있어서 가루를 몸에 숨기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박 씨는 국물용 건다시마를 어딘가 넣고 뛰고 있을 거다. 2017년에 서울 사대문을 돌고 떡국을 먹는 10K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그때 추운 날 관절에 무리가 갔는지 이후로 무릎이 안 좋긴 했지만, 새해가 되면 어쩐지 떡국 달리기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리고 떡국을 먹는 건 너무 새해 같아서 좋다. 

 오랜만에 뛰어서 조금 달렸는데도 힘들었다. 박 씨는 안 달린 지 두 달 정도 된 거 같은데 몸이 처음 달리기할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느는 건 오래 걸리지만 다시 돌아가는 건 금방이지. 달리기를 오래오래 하기 위해 잘 달리려고 하는 마음을 꾸준히 버리고 있다.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으면서 좋아해야 하다니.) 난 또 맨 뒤에서 달리며, 다리의 무게를 줄이면 좀 더 가볍게 뛸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생각들을 한 거 같긴 하다.

이러나저러나 새해엔 꾸준히 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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