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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Jan 06. 2020

2020 새해 떡국 달리기

2020.01.01 / 4.82k

2020.01.01 숫자의 규칙성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20년의 첫날이 밝았다. 연말은 되도록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조촐하지만 따뜻하게 보내던 중이었다. 거리도 세상도 그다지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를 내는 것 같진 않았다. 새해 첫날은 뭘 하면 유난스럽지 않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두 달은 쉰 것 같은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달리기로 새해 시작이라니, 조금 유난스러운가.


겨울의 달리기는 추위와 미세먼지 사이의 오묘한 밸런스를 찾아서 뛸 수밖에 없다. 이번 겨울은 추우면 미세먼지가 좋고, 따뜻하면 미세먼지가 나쁜, 그런 날씨의 연속이다 보니. 날씨의 두 요소를 모두 예민하게 들여다봐야지만 달릴 수 있는 타이밍을 찾을 수 있는데, 조금만 게을러지면 달리기는 안녕인 것이다. 그래도 “새해”라는 특별한 날이 달리기를 하라는 알람을 울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새해 첫날은 낮까지만 춥다가 오후에는 기온이 좀 오른다고 해서 달리기를 하고 떡국을 먹을 일정을 잡아 보았다. 작업실에서 떡국을 해 먹을 예정이라, 작업실에는 없는 다시마는 주인의 주머니 속에, 들깨가루는 이소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러 홍제천까지 걸어가는 길은 쌀쌀하다. 손가락이 나온 장갑을 끼고 걷다 보니 손이 시려서 주머니에 자꾸만 집어넣게 되었는데, 달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손에서도 열기가 돈다. 걷기와 달리기 사이의 템포가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몸에서 열을 내는 걸 보면 달리기의 템포는 원래 내 몸의 템포보다는 훨씬 빠른 거구나 싶다. 몇 겹이나 입은 옷 때문에 땀이 나기 시작할 무렵, 불광천에서 이소와 주인을 만났다. 새해라 그런가, 불광천에도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대신 오리와 왜가리 같은 새 들이 엄청 많았다. 지나가다가 안 본 지 오-래된 지인을 본 것도 같은데, 맞으려나. 열이 오른 얼굴로 달리기 하다 보니 아는 척하기도 귀찮아져서 그냥 지나쳐버렸다. 자전거도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한강에 도착하니 벌써 망원 한강공원 입구다. 망원시장에서 떡국떡을 사야 해서 재빠르게 달리기는 종료. 200미터만 더 가면 5k를 채울 수 있는데 이만하면 됐다 싶어, (떡국이 빨리 먹고 싶어) 종료 버튼을 누른다.


망원시장에는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연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새해 떡국을 끓인다고 나 스스로 떡을 사고 있으니 조금은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필요한 재료를 사서 캠핑 느낌으로다가 작업실 부엌에서 비건 떡국을 끓였다. 비앤비 손님인 미셸에게도 떡국의 맛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미셸도 불러왔다. 미셸이 떡국의 레시피를 물어 고기를 볶다가 떡 넣고 물 넣고 끓이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의 비건 떡국에는 고기는 없고, 온갖 야채가 다 들어갔다. 무, 대파, 양파, 버섯으로 채수를 내고, 떡이랑 두부랑 호박까지 넣으니 색다른 맛의 떡국이 되었다. 새해를 떡국 달리기로 시작하는 건 좋은 습관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에도 떡국 마라톤으로 시작했었지, 그렇다고 그 해가 엄청 기운이 좋다거나 특별한 일이 많은 해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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