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성장했다고 느낀 3가지 순간
7년 간의 커리어에 대해 돌아본다. 2015부터 4년간 재직했던 회사는 조직 재편이 잦았다. 시의성 있는 10장 짜리 카드뉴스형 칼럼을 쓰던 업무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더해진 매거진 형태로 변했다가, 브랜드와 접점을 통해 수익 창출이 가능할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변모했다. 현재 3년간 근속 중인 회사 역시 매해 한 번은 조직을 개편했고, 그때마다 대목적과 함께 KPI가 달라졌다.
2023년 상반기가 끝나버렸다. 몇몇 KPI는 80% 수준에 그쳤다. 그 자체로 성과의 아쉬움을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은 그 부족한 20%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80%만큼 달성하면서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 데에 의문을 갖고 시작한 글이다. 정확히는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게 된 글.
질문은 적절했다. 성장이 뭘까, 라는 질문은 성장이 성취감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답변을 이끌었다. 또한 때로는 수치로 잡히지 않는 성취감이 개인에게는 성장의 증거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아가 생각보다 나는 성취감이 중요한 인간이라는 점까지도. 그렇게 지난 7년간 커리어 중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꼈던 순간을 꼽아보기로 했다.
핵심 사건 : 독립출판 (2022.9~2022.12)
지난해에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다면, 독립출판을 해낸 것이다. 출판 배경에는 약 2년간 꾸준히 써 온 사랑과 섹스에 대한 단상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이 있었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니지만, 행정 절차를 두려워하고(귀찮아하고) 새로운 시도에 소심한 나로서는 창작만큼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없었다.
순수한 의미에서 독립출판은 출판사 없이, 개인이 온전히 해내는 출판을 이른다. 그러려면 혼자 일당백을 해야 하고, 대신 계산서 발급 같은 복잡한 일은 생략해도 된다. 하지만 이후 유통 추적을 위해서라도 ISBN을 발급받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는 출판사가 필요했다. 출판사를 만든 건 순전히 그 목적이었다. 그리고, 때로 그저 수단인 일이 시야를 틔워준다.
편집과 디자인을 스스로 해내면서 책 디자인에 대한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모니터상에서 보이는 컬러와 흡사한 종이를 탐색할 때는 눈빛이 형형해졌고, 인쇄에서 문제는 없을지 인쇄소 제작부장님과 의견을 나눌 땐 포기할 것과 포기하지 않을 것, 그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을 해나가는 논의에서 잔잔한 긴장감을 느꼈다.
순전히 텍스트에만 흥미를 가졌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느낀 건 이후 지난여름 북페어에서였다. 가장 눈길이 갔던 곳이 홀 안쪽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선별한 코너였으니. 그림책과 사진집, 매거진을 두루 살펴보며 '책등은 이렇게 마감을 했구나’ ‘표지와 내지를 이렇게 어울리게 만들었네’ ‘이 종이는 무슨 종이일까?' 등 책이 지닌 미감과 만듦새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출판이 마무리된 시점, 아니 에르노의 근작을 펴낸 레모에서 열린 번역 모임에 등록했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두 바닥씩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레모의 대표이자 번역가인 윤석헌 선생님의 코칭에 기대어 문맥을 읽어내는 일은, 번역에 남은 인간의 몫을 절감케 했다. 번역가를 AI가 뺏어갈 직업으로서 꼽는 세간의 시선과는 판이한 인사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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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생각은
내 작품을 번역해서
출판할 순 없을까?
텍스트의 감흥을 비주얼로
구현해 내고 싶다
라는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어떤 세계는 발을 들인 것만으로, 시각을 넓혀준다. 독립출판은 내 텍스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종이책으로 펴내고 싶었던 단순한 열망에서 시작됐지만, 이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북디자인에 눈을 뜨게 해주고, 또 번역을 통해 기존 책의 독자를 확장할 순 없을지 고민하게 했다. 그렇게 출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열어줬다.
핵심 사건 : 칼럼형 콘텐츠 (바른꾸러기 마감 이후 2022.11~)
두 번째 성장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을 넓힌 것이다. 이건 성장이라고 하기엔 모호할 수 있다. 당장 콘텐츠는 계속 만들어야 하는 가운데 다양한 목소리가 절실했고, 동시에 인터뷰어의 사생활 보호라는 윤리적 난제에 부딪힌 가운데 가 닿은 타협의 산물이니까. 그럼에도 이것을 성장으로 꼽는 것은 이전엔 별생각 없었던 콘텐츠 제작의 방법론을 고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성과 연애에 대한 심리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었다. 콘텐츠 소스 확보와 제작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한 차례 고민했던 상황이었다. 바른꾸러기가 증거였다. 바른꾸러기는 성 관련 주제에 대해 다채로운 의견을 모으기 위한 익명 커뮤니티였다. 다행히 참여자분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실황감 가득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제약은 분명했다. 여럿이 대화하는 채팅창에서는 재질문이 어려웠고, 대화도 산발적이었다.
곧 지인 인터뷰에 눈을 돌렸다. 난제는 2가지였다. 과연 콘텐츠로 살릴 만한 답변이 나오느냐는 물음 하나, 인터뷰이가 어디까지 진솔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 둘. 전자는 내 인터뷰 실력의 문제라 쳐도, 후자는 인터뷰이의 양심-자유의 문제였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소재의 경우 인터뷰이에게 불쾌감을 일으킬까 걱정이 됐다. <조금 외람되지만> 같은 쿠션어를 붙여 상대방의 심적 장벽을 가늠했다.
여전히 상대방의 심기가 우려될 때는 익명 설문지를 돌렸다. 설문지는 종종 유익했다. 하지만 익명 설문지 역시 재질문이 어려웠다. 또한 익명이라 해도 모수가 크지 않아 각색은 필수였다. 그렇게 주변의 이야기는 약 처방전 찢어지듯 헤쳐 모였다. 어느 순간 사실 기반 각색은 더는 픽션과 구분되지 않았다. 같은 점이 있다면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변화는 일순간 찾아왔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나는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실화와 픽션을 자유자재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며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인물들은 자생하듯 알아서 자기 목소리를 냈다. 곧 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매여) 사람들의 목소리를 곧이곧대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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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생각은
‘장르적 기대감에 왜 방법까지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페르소나를 구축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도 있구나
라는 쪽으로 변모했다.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과 제작 과정에서의 사생활에 대한 보호, 다양한 음성에 대한 갈급은 새로운 글쓰기 기법을 체득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이슬아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의견을 접했다. ‘글쓰기는 편집의 기술, 정직하다고 좋은 글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설명. 무한 끄덕였다.
핵심 사건 : 기획전 (2021. 여름~겨울)
세 번째 성장 사례는 기획전을 온전히 내 손으로 마무리진 일이다. 이는 내 한계와 역량을 목격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컸다. 당시 나는 팀장님에게 기획전을 이관받는 상황이었다. 기획전을 진척시키려면 단계별로 확인할 사항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난 “이다음엔 어떻게 해요?”라든가 “제가 언제부터 전담하면 되나요?” 따위의 질문을 하지 못했다. 사실 일이란 게 금 그어놓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A님이 담당하세요, 같이 표현하기 어렵잖은가. (그런가?)
아무튼 그러한 상태로 발렌타인과 커플 운동, 바캉스 총 3번의 기획전이 지나갔다. 막 도입되는 상품을 촬영용 샘플을 챙기고, 기획전 콘셉트와 스토리를 짜고, 스튜디오와 촬영에 대해 논의하고, 디자이너와 운영 MD와 일정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이전에도 미디어에서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를 진행한 바 있지만, 투입인원, 기간, 품, 비용 모든 면에서 기획전은 내가 도맡은 업무 중 가장 큰 볼륨이었다.
테마에 맞춰서 상품을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소싱 MD, 성=섹스, 주력상품은 콘돔뿐이라 생각하는 소비자에게 기획전을 어떻게 소구할지 머리가 지끈한 마케터, 관리 포인트가 많아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운영 MD까지. 각자 직무상 주안점을 두는 바가 달랐기에 이들 의견을 모으는 건 어려웠다. 설상가상 디자이너와는 관계도 좋지 않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결과물을 낸다는 건, 적어도 내겐 근 몇 년 간 가장 큰 과제였다. 여기에 기획전 포맷을 개선한다는 과업까지.
놀랍게도, 일을 해냈다. 기획전은 예정한 때에 열었고, 긴 스크롤 여정을 줄였고, 연출컷을 상단 메인 자리에 배치하고, 카피를 추출했다. 또 각 연출컷에서 개별 제품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도록 버튼을 넣었다. 그리고 성격 급한 고객들이 페이지를 이탈하지 않도록 스크롤 버튼을 삽입, 하단엔 집 데이트 아이디어를 적는 이벤트를 삽입했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겨냥한 집 데이트 기획전을 온전히 해냈다.
일의 볼륨은 말할 것도 없었고, 회의를 할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다. 그나마 협조적인 직원들, 이 모든 상황에 지친 팀원들, 적대적인 시선으로 또 무슨 일을 벌이나 노리는 시선까지. 감정을 덜래야 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대가 감정을 온몸으로 드러내도, 이를 어르고 달래서 이끄는 데에는 재능이 부족했다. 그저 나는 기획전을 개선해야 할 이유에 주목했고, 이를 피력하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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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나는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황에서도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누군가를 달래는 외교적 기술 대신
목적을 설득해 일을 추진하는 성향이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구성원들과 의견이 첨예한 가운데 PM 업무를 수행해야 했던 두 번의 기획전은 ‘내일 회사가기 싫다’할 정도로 괴로움을 안겼다. 그러나 이후에는 ‘난 열악한 상황에서도 일을 해낸 사람이야’라는 자긍심, 정확히는 심리적 맷집을 만들어 주었다.
커리어 조언에는 회사에서의 성취를 지표 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 채용과 연봉 협상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한 개인이 조직에 몸 담은 이후 업무를 지속하려면, 그 자신의 성취감도 중요하다. 적어도 몇몇 직원에게는 ‘한 뼘 성장했다는 감각’이 그 조직에 머무르게 하는 핵심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젠 안다. 조회수 신장이 KPI 달성일 순 있어도, 개인의 성장과 같은 뜻은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나라는 개인의 성장에는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시야의 확장, 직무를 수행하는 또 다른 방법론의 체득, 자신의 한계와 역량을 체감하는 일이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