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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Mar 23. 2024

내 인생은 분산투자

인생 포트폴리오 구성이 어려운 이유

*해당 글은 ‘자본주의 연속극(가제)’ 시리즈의 일부로 부정기 연재 예정입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끝장 보기 VS 경제 공부를 통한 금융소득 만들기


요즘은 그저 갈팡질팡이다. 나 자신이 요즘처럼 줏대없고, 자기확신 약하고, 인생철학이 (그런 게 존재했다면) 흔들린 때가 있었을까. 유퀴즈에 나온 할머니가 팔십넷의 연세에 대학교에 입학한 모습을 보면서는 박수치면서도 정작 나의 선택에는 순순히 박수치지 못한다. 진로 선택은 잘한 일인지(최근 브랜드 인하우스에서 금융교육을 사업 모델로 삼는 회사로 이직했다) 배부른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지(피아노 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아무튼 글은 써야 한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앞길이 캄캄해(세 달 전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고민한다.


서른 다섯이 목전인 탓이다. 선택을 내려놓고는 불안해한다. 시선이 기웃거린다. 원인은 뚜렷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정확히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끝장 보기’와 ‘경제 공부를 통한 수익 사다리 만들기’ 사이에서 오간다. 급기야 이런 질문을 한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이 희미했다면 나았을까?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지 않았더라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수월했을까? 퇴근하고 자연스레 돈 공부를 하겠다고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열 없는 질문이다.


솔직해지자.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수익을 창출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꾸준한 노력과 그에 따른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자본으로 돈을 버는 일은 Passive해 보였다고. 인플레이션이라는 채찍에 호되게 당한 게 금융을 공부하게 된 짜증나는 원동력이라고. 당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무수익의 시간을 견딜 자신도, 사흘에 한 번 들여다보는 금융 공부가 언제 수익을 가져다 줄 지 몰라 조바심 내는 탓이라고.




어제 난 새싹은 새싹이고 더 많은 홀씨를 뿌려야지


2년 전 순전히 제 욕망에서 출발한 글로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이를 통해 수익 창출의 가능성을 봤다. 지인에게도 열심히 홍보한 점을 감안해도 텀블벅에서 대략 100권의 책을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도서 재고는 약 60여권. 총 400권으로 시작한 책은 전국의 독립서점 스무곳 남짓에 입고했고, 감사하게도 부산의 나락서점에는 4차 입고까지 했다. 밀리의서재에도 전자책 형태로 입고했고, 최근에는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오디오 클립 크래커스북에 초대받아 녹음도 했다. 단순히 맘 가서 시작힌 일 치고 훌륭한 성취다.


독립출판은 귀한 경험으로 남았다. 좋아하고(사랑과 섹스, 그에 대한 글쓰기) 잘하는 일로(글쓰기)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만’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라는 다음 질문이 따라왔다. 첫 술에 배부르길 바라는 파렴치한으로 보일 테니 변명을 덧붙이자면, 콘텐츠-글쓰기를 업으로 삼은지 어언 7년이다. 콘텐츠-글쓰기가 직접적인 BM이 될 수 없는지 한창 질문하던 때였다. 그리고 이 같은 질문은 금융 콘텐츠가 BM인 기업으로의 이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안다. 창작은 무엇보다 꾸준한 누적을 요구한다. 한 번의 성취는 그 자체로 인정할 만한 것이지만, 그 성취가 갓 발아한 새싹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 새싹만을 바라보고 조바심을 낼 게 아니라는 것을. 민들레 홀씨만큼 무수한 글쓰기를 자주, 많이, 흩뿌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최근 이슬아 작가가 폴인과의 인터뷰에서 ‘부끄러운 글이라도 일단 다 세상에 보인다’고 한 말과도 일부 맞닿는다. 결국 성실한 만듦과 지속적 발표만이 글쓰기-콘텐츠의 생명력을 키운다.




자산 포트폴리오=시간 포트폴리오, 혹은 인생


지난 커리어 궤적을 반추하면 분명 나는 콘텐츠의 수익화에 집착했다. 뉴미디어에서 섹슈얼 헬스케어 브랜드를 거쳐 금융 분야, 나아가 에디터에서 PM으로 직무 이전까지 동시 진행한 데에는 수익 모델로서의 콘텐츠, 콘텐츠로서의 수익 모델을 이룩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곧 ‘내가 한 일이 수익의 원천이 되면 좋겠고, 이를 숫자로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곧 내 노동이 들어간 아웃풋으로의 콘텐츠를 한층 더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일과 소득을 쪼개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교육-콘텐츠 BM을 운영하는 PM으로서의 본업이자 근로소득, 이제는 숙련공에 가까운 브랜디드 콘텐츠로 벌어들이는 부수입, 여기에 금융소득까지(아직 제로에 가깝다). 그리고 오로지 애정만으로 온 출판과 뉴스레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자산에의 분산투자다. 한 마디로 매일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산 형성 측면에서 시간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시간’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시간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는 업의 특징과 소득 구분>                    




분산 포트폴리오,  종목의 목적과 목표는 상이


주식으로 치면 분야가 다른 분산투자다. 미국장에서는 S&P 500이라는 상품이 있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들 약 500개를 묶어 이들 주가를 추종하는 지수다. 단기간 큰 수익을 노리는 상품이라기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성장할 기업을 노린다. 그렇다면 나의 여러가지 업에서 S&P500은 무엇에 해당할까? 투자 전략은 종목마다 다르다. 어떤 투자는 ‘단타’이고, 어떤 투자는 ‘장타’이다. 그 점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인 글쓰기는 단기 트레이딩이 아니다.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당장 돈이 안 벌리니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반대로 말해 이는 돈이 1000만원이 있든 10억이 있든 (너무 좋겠다) 주워 섬길 일이다.


반면 그 외의 모든 일은 ‘수익 창출’이 목표다. 사업소득으로서의 글쓰기를 보자. 이는 내게 부수익의 영역으로서 단기 현금흐름을 키워주는, 단기 매매의 영역이다. 근로소득은 이보다는 중장기적 영역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PM이든, 에디터업으로 돌아간들 커리어적 목표는 중요하다. 그건 ‘어떠한 리더/구성원이 되겠다’는 조직 내 상일 수도, ‘맡은 프로젝트에서 무엇 하나 확실한 인사이트를 내고 말겠다’는 다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원하는 연봉이라는 목표가와 이어져야 한다.


금융소득은 말할 것도 없다. 매수를 망설이는 외국어 앱 D 종목을 예로 들어보자. 수익이 나면 분할 매도를 할지언정 ‘아무튼’ 팔 것이다. 목표가액이 실현되는 순간 매도가 행동 1순위다. 제아무리 자아실현을 얘기해도 직장이 연봉이 1순위인 것처럼. 돈을 안 주는데 직장에 다닐 사람이 있을까? 물론 직장은 연봉 외에도 자기효능감과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매개다. (이것도 엄청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을 내다보며 매도가를 설정하고 진입하는 종목이다. 주된 목적이 자산 형성이라면, 어느 시점이 되면 ‘엑시트’할 항목인 것이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하나다. 똑같이 자산 포트폴리오에 속해도, 각각을 대하는 접근법은 종목마다 달라야 한다는 것. 어떤 종목은 수익 실현을 떠나 나와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하며, 어떤 종목은 목표가가 명확하기에 이별이 예견돼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패시브 소득은 없어


몇 주전 릴스를 봤다. 좋아하는 일만 하던 노홍철이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하게 된 계기에 대한 영상이었다. 그의 지인은 말했단다. 좋아하는 일만 해서 나중에 어떡할래, 라고. 그때 그는 내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못 주는구나. 가까운 사람을 걱정시킬 정도로 신뢰가 없다면 뭘할 수 있겠나, 했단다. 공감이 갔다. 올해 내 목표는 나 자신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어떻게든 입에 풀칠을 하고, 기왕이면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일머리를 써서 소득을 올리고, 이를 통해 내 삶을 잘 가꾸고 주변과 어울리고 싶어서 나날이 용쓰고 있다.


혹자는 노홍철의 얘기를 비웃는다. 주변인을 걱정시키는 자신을 보고 각성하고서 돈 버는 일에 매진했다면서. 다른 영상에서 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도 될지 묻는 이에게 ‘될 때까지 했어’라고 답한다. 얼핏 보면 상충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략 배분의 차원 아닐까? 그의 자세한 히스토리는 모르지만, 오로지 좋아해서 매진하는 일과 돈벌이가 되어줄 일이 나뉠 수 있는 거니까. 적어도 그 성격의 비율이 다를 수 있다. 전자는 반드시 수입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후자로는 돈을 벌어 생활을 영위하고 나아가 마케팅과 세일즈 안목을 길러줄 테다. 나는 이 말에서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그간 혼란스러울만 했다고. 그리고 당분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어떤 소득은 내게 다달이 배당금을(!) 흘려보내줄 것이다. 가령 새로운 외주를 진행한다면 추가적인 현금흐름을 늘릴 수 있을 테다. 한편 장기투자 관점에서 매일 수련하듯 만드는 글쓰기-콘텐츠는 내게 먼 미래에 저작권을 100원이라도 돌려줄지 모른다. 사실 이런 걸 바라고 쓰지도 않는다. 요는 이들 각각을 서로 다른 전략으로 접근하고, 그에 따른 전술도 그때그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세상에 passive는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적어도 어느 궤도에 오르기까지 자동으로 따라오는 수익 같은 건 없다. 머리 안 쓰고, 몸 안 움직이고, 가만 앉아서 버는 것은 없다. 주식 트레이더도 안구를 혹사하며 증권사 HTS 창을 들여다보지 않는가. 부동산으로 돈을 번 친구? 부동산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시세 차익의 볼륨이 부럽긴 하지만, 그 친구도 거저한 게 아니다. 초기에 일정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 글쓰기든, 근로소득이든, 금융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똑같다.  남의 과실만을 질투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내가 펜을 굴리지 않고서는 죽을 때까지 백지인 글쓰기처럼, 부동산도 최소한 거리뷰 임장이라도 다녀야 한다고.


일도, 부업도, 에로틱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도, 나아가 투자 공부도, 다 붙잡고 못 놓는 나에게 고한다. 그냥 네 인생은 분산투자라고!



이미지 출처 | Monika Grabkowska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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