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전환율과 PIR, 출퇴근계산기가 일으킨 것
*해당 글은 ‘자본주의 연속극(가제)’ 시리즈의 일부로 부정기 연재 예정입니다.
독립은 이십대 중반 이후로 반영구적 과제였다. 대학 시절 자취방 월세는 오롯이 아빠가 내주었다. 휴학도 했다 보니 1년은 그곳에 더 살았다. 그때도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일’은 막연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회에 발을 디뎌보니 생각보다도 더 힘들었다. 졸업 후 제대로 첫 취업을 한 곳은 패션 컨설팅 회사였고, 학동역 근처였다. 매일 1시간 40분을 7호선에서 보냈고, 컬렉션 시즌이 되면 주에 2-3회 야근을 했다. 밤 10시쯤 학동역에서 몸을 실은 택시에서 난 무슨 생각을 했던가.
커리어 초창기는 뒤죽박죽이었다. 신사동의 한 빈티지샵에 일하면서 숫자 7이 포함된 세 자리 시내버스로 닿는 금호동에 월세집을 구했다.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사는 투룸이었고, 건물이 허름했다. 그 와중에 교통비를 아끼려는 마음과 코앞의 한강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16만 원짜리 중고 자전거를 구매했다. 마땅히 자전거를 둘 공간도 없는 집이었다. 그래도 별 불만 없이 2년 가까이 살았는데, 화장실만큼은 끝까지 어색했다.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 앞에 서면 옴싹달싹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후 나름 에디터라는 직업으로 가산디지털단지에 직장을 구했다. 그리고는 부모님이 사는 집에 돌아왔다. 별다른 자의식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라는 엄마의 성화에 ‘나가살 명목도 없고, 돈이나 아끼지 뭐’ 하는 수준. 이후에는 인천이라는 거주지에 맞춰서 서울 서쪽에서 직장을 구했다. 곧 마포구는 항상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점점 거주지와 직장의 좌표는 고정값이 되었다. 좌표를 옮길 생각은 희미해져갔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막차를 잊고 끝까지 놀고 싶을 때 빼고는.
2021년이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기억할 상승장이었다. 밑천도 보잘것없는 나도 계양과 계산, 주안에 임장을 갔으니 말 다한 시기였다. 당시 내 최애 유튜브는 ‘부동산 읽어주는 남자’였고, 그때쯤 클래스101에서 같은 유튜버가 개설한 클래스도 들었다. 타임트래커를 사서 매일 투자 공부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쓰고, 그날 배운 것과 깨달음을 기록했다. ‘그래서 뭘 배웠냐’라고 묻는다면, 지식적으로는 몰라도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획득했다. 더하자면 ‘난 아파트는 못 사’라고 속단하는 말도 하지 않게 됐다. 그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변화였다.
2023년. 여전히 두 번째 직장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던 내게는 애인이 생겼고, 부모님과 엄청난 마찰을 겪게 되었다. 이제는 그와도 헤어진 지 꽤 되었고 당시 겪었던 일들은 모두 과거완료가 되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넓은 관점으로는 부모님 댁에 기거하는 입장에서는 이 같은 마찰은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에 어쩔 수 없이 끄덕이는 사람으로서 부모님 댁을 은신처로 삼는 이상 갈등은 피할 수 없고, 이를 깨기 위해서는 독립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에로십 에세이에도 비슷한 얘기를 썼다.)
2024년 다이어리 첫 장에는 <내가 나의 든든한 집이 되어주기>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올해 모토로 삼은 말이다. 한편 한 해의 슬로건과는 달리 인생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었다. 이직한 세 번째 회사에 소프트랜딩(!)을 한다는 전제 하에 6~7월경에는 마포구에 30분이면 닿는 곳에 월세든 전세든 주거지를 구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당장은 어려워보인다. 하드코어한 세 번째 직장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나 자신을 철학자로 만들었다. 곧 직장에 대한 마음이 고정값이 되지 않고서는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인천 연수구를 오가는 내 출퇴근 비용은 얼마일까? 정액권이 말해주지 않는 내 출퇴근 비용은 170만 원이었다. 지난해 대학내일에서 만든 출퇴근계산기가 내린 답이다. 월세로 인한 주거비용을 셈하긴 쉬워도, 몸과 정신을 부대끼는 대가는 쉬이 환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여러 상념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남양주에서 직장을 오가는 동료는 나보다도 출퇴근 비용이 다소 저렴했다. 지하철 혼잡도가 많이 다른가? 한편 출퇴근계산기가 준 충격은 상실감으로 나타났다.
PIR은 또 어떠한가. (Price Income Ratio)로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로, 역산하면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몇 년치 소득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2024년 3월 기준 중위 소득가구가 서울의 중위가격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10.16년이 걸린다고 한다. (항상 그렇듯 한 푼도 쓰지 않고!) 2024년 6월 땅집고에서 낸 또 다른 기사는 서울의 평균 가구소득이 1.3억, 그리고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13억 원으로 역시 10년이 걸린다고 봤다. 똑같이 10년인데 뒷내용에서 더 현기증을 느끼는 건 역시 평균의 함정이겠지. 까치발 들 듯 오르는 소득과 칠리구두를 신은 양 격차를 벌리는 자산가치 상승을 본다.
전월세전환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빌라 사기 등에 전세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전월세전환율은 전세금을 1년 치 월세로 환산한 비율로, 숫자가 커질수록 높아진 월세 선호가 높아짐을 뜻한다. 전월세전환율 통계는 2020년 7월부터 작성되었는데, 작성 이래로 처음으로 6%를 돌파했다고 한다.[1] 당장 드는 돈이 전세대출이자가 더 저렴함에도, 목돈을 사기당하면 돌이킬 수 없기에 이 같은 저울질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가 이기는 형국이다. 전월세전환율에 담긴 사람들의 심리를 보다 보면, 금세 복잡해진다.
월세와 전세는 높아지는 물가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2] 2+2로 4년마다 이사를 가야하는 괴로움도 있다.[3] 매매의 어려움은 말해서 뭐하겠나. 몇 달 전 참여했던 넷플연가의 투자 모임의 호스트는 '부동산은 금리에 배팅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을 순 없다. 내 소득 수준이 감당할 수 있는 금리인지는 계산해봄 직하다. 주택가치의 증감은 주식투자처럼 접근하면 된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듯 주택 역시 온라인 조사와 임장을 통해 해당 주택의 거주가치와 시장가치를 밸류에이션해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다. 그 점에서 아래 대차대조표는 나의 현 좌표를 점검하는 취지에서 작성했다.
대차대조표가 불러운 질문 3
①비교 대상이 적절한가? (의미 있는 비교여야 한다)
②근거 있는 불안인가? (삶에는 기본적인 불안정성이 있다)
③감수해도 좋은 것과 영영 잃는 것은 무엇인가? (유효한 희생과 무효한 희생)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면서 위 3가지 질문이 따라왔다. 비교가 유효하려면 서로 비교할 만한 대상인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질문이 중요하다. 부적절한 질문은 엉뚱한 답을 도출한다. 반면 적절한 질문은 당장 답을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답을 도출하는 여정에서 올바른 지침이 된다. 인생의 까다로운 결정을 대할 때 지녀야 할 시각과 태도에 대한 책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에는 결정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 일종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략)…다이어코니스는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학자가 말했다고 믿기에는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는 우리가 실제로 비용-혜택 목록을 꼭 만들어 봐야 하지만, 그것이 비용이나 혜택을 합리적으로 평가해 보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 마음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p67)
- 러셀 로버츠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이지연 옮김, 세계사
대차대조표는 내게 투자 공부를 하려는 이유를 돌이키게 했고, 그 가운데 불필요한 고민과 불가피한 고려대상을, 나아가 시간과 돈 중 비교우위를 지닌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각 3가지 질문에 대해 잠정적인 답을 찾아보자.
①비교 대상이 적절한가? (의미 있는 비교여야 한다)
2년 뒤 하락한 전세보증금의 화폐가치 vs 금리 변동을 고려한 원리금 상환액
전세 리스크인 ‘2년 경과 이후 하락한 보증금의 화폐가치’와 매매 리스크인 ‘금리 변동에 따른 원리금 상환액 ’은 적절한 비교대상일까?[4] 전세 리스크란에 대출이자를 넣지 않은 것은 가변적인 위험인 리스크와 달리 이는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곧 주택담보대출 상환과 전세대출 상환은 성격이 다르다. 주택매매 시 은행에 상환하는 대출금은 거주비용을 치르는 동시에 자산을 사들이고 있기에 단순 비용은 아니다. 전세대출이자가 ‘당장의 거주를 위한 현재의 비용’이라면 주택담보대출이자는 ‘당장의 거주를 위한 현재의 비용+미래의 자산 형성을 위한 투자’가 섞여 있기 때문.
전세 보증금의 화폐가치 하락과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따른 원리금 상환액의 공통점은 둘 다 ‘미래의 시장경제’에 그 리스크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리스크가 높을까? 참고로 주택담보대출에는 자산가치의 증감이 추가로 포함된다.
②근거 있는 불안인가? (삶에는 기본적인 불안정성이 있다)
몇 십 년간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의 원금과 이자
이직/무직/프리랜서 등 직업의 가변성과 그에 따른 대처
투자처 수준에 따른 자산가치 변동
이 글을 작성하면서 확실히 알았다. 전세나 월세로 살 때 치르게 될 비용이 확정인 만큼, 매매로 주택을 매수할 때 치러야 할 부담도 확정적인 부담이라는 것을. 일단 불안을 정체가 모호한 대상에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이라고 정의내리고 출발하자. 위 3가지는 분명 불안을 유발하지만, 성질이 다르다. 3번째가 외부에 달려있다면, 2번째는 나라는 개인의 내적 요인에 가까우며, 1번째는 2번째와 3번째를 곱한 결과값이다. (직업 안정성과 수익성에 따라 대출 부담도 달라지니까.) 3번째는 리스크이지만, 공부의 심도에 따라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상승장과 하락장 예측은 사람의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 전·현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파보면 수요-공급의 2차 요인을 파악할 순 있다.
남은 것은 2번째 뿐이다. 사실 가장 유의미한 불안이다. 에디터로 출발해 지금은 PM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같은 직업을, 직장생활을 얼마나 지속할지 확신이 없다. 일-직업-직장이 삼위일체 관계가 아님을 깨달은 지는 한참 전이다. 주택담보대출의 덜미에 잡혀 직장에 근속하는 상상을 하면 숨이 턱 막힌다.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 않은 탓일까? 종종 버거워지는 직장생활과 대출상환을 병행하는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③감수해도 좋은 것과 영영 잃는 것은 무엇인가? (유효한 헌신과 무효한 희생)
가용가능한 시간 / 나만의 공간 / 체력 증진 / 독립적인 정신력
이는 정성적이라 가장 와닿으면서도 그렇기에 가장 메타인지가 필요한 영역이다. 가령 매일 2시간이 걸리는 왕복 출퇴근 시간을 직주근접 거주지로 대체할 때 난 얼마나 그만큼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직장 아랫층에 살지 않는 이상 통근에 최소 20분은 여전히 필요할 테고, 각종 집안일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자기계발 시간은 늘어날 테고, 나만의 공간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은 선명할 테다. 곧 물리적 돈을 아끼기 위해 지금처럼 지하철 생활을 지속한다면, 정서적 독립성은 약해진다. 곧 독립을 통해 치러야 하는 물리적 비용과 얻게 될 무형적 가치를 무의미한 희생으로 볼 지, 나 자신을 위한 유효한 헌신으로 볼지는 순전히 관점에 달려 있다.
집은 내게 큰 숙제이다. 거주지로서는 당연하고, 자산으로서도 그렇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산 70%는 주택에 쏠려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부동산만큼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한 수요는 이어질 것이다. 본래 수요란 그런 것이니까. 이와중에 인천 부평구의 영구임대주택 공고를 본다. 사실 자식만 없으면(난 자식이 없다) 굳이 몇 억씩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에는 건물주 대신 다들 주식 투자자가 꿈이라잖아?
[1] “오피스텔 월세? 100만원 주세요”… 전월세 전환율도 6% 넘어, 비즈조선, 2024.4.17
[2] 해당기사는 물가가 높아졌을 때 소득이 적은 30대 전세임차인의 부담이 가장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기사이나 이를 옮길 지식이 짧아 링크를 건다. 고물가 화살은 전세대출 받은 30대로 향했다 [추적+] 더스쿠프, 2024. 6. 21
[3] 전세임차인의 거주안정을 위해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뜻한다. 전자는 2년을 거주하면 2년을 추가로 더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며, 후자는 전월세 인상율을 직전 임대료 대비 5%로 상한율을 정한 것이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4년 단위로 전셋값을 일괄적으로 상승하게 하는 부작용이 예상돼 논란을 낳고 있다.
[4] 엄밀히 말하면 변수는 더 다양하다. 주택담보대출에는 고정금리 방식과 변동금리 방식이 있다. 또한 대출에도 원금을 균등하게 갚는 원금균등상환, 원금과 이자를 합해 균등하게 갚는 원리금균등상환, 체증식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이는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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