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2011)
어제 수급품으로 즉석밥 나왔는데, 도완득 네가 가져가!
고등학교 2학년 교실. 종례를 하던 담임 동주(김윤석)가 완득이(유아인)를 지목해서 말합니다. 장애인 아버지와 정신지체인 삼촌과 함께 사는 완득이의 불우한 집안 사정을 알고 수급품을 챙겨주는 것까진 좋은데, 좀 티 안 나게 줄 것이지 교실 애들 다 보고 듣는 데서 대놓고 완득이를 지목하면 어떡합니까. 애들 앞에서 수급품 타가는 불우한 학생이 되어버린 열여덟 살 완득이는 자존심이 짓밟힐 대로 밟힌 탓에 하나님에게 ‘담임 선생님 좀 죽여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까지 할 정도입니다.
완득이가 동주를 싫어하는 데에는 그토록 싫어하게 된 이유는 동네 창피하게 수급품을 몰아주는 것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완득이가 창피함을 무릎 쓰고 가져온 즉석밥이건만 옆집 사는 담임 동주는 툭하면 완득이의 즉석밥을 강탈(?)해갔습니다. 그것도 현미밥, 호박죽 등 이 밥 저 밥 메뉴를 바꿔가며 옥상 너머로 즉석밥 하나만 던져달라는 것도 완득이 입장에선 너무나 싫습니다.
하지만 즉석밥 줬다 뺏어가는 그런 것보다 더 싫은 건 완득이네 가족에 대한 동주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입니다. ㅣㅣ.부탁한 적도 없건만 완득이의 어머니를 자기 마음대로 찾아내서는 심지어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알려주는 동주. 교사가 아니라 사설탐정을 해도 어울렸을 것 같은 동주는 완득이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 아니라 17년째 별거 중이며, 호적등본에 적혀있는 완득이 어머니의 한국 이름이 ‘이숙희’라는 사실까지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완득이에게 어머니를 만나볼 것을 제안하죠. 엄청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완득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무작정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자 그날 저녁 동주는 완득이의 집으로 찾아옵니다.
완득이네 집에 오는 길에 소주도 한 병 사들고 온 동주는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서 완득이에게 훈계를 하려나 싶은데요, 어찌 된 일인지 완득이에게 컵을 하나 더 가져오라는 하더니 설상가상 완득이에게 술까지 한 잔 따라줍니다. 하지만 보기완 달리 생전 처음 술을 마셔보는 완득이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자 동주는 오히려 '그 나이에 술도 못 마시냐'며 기가 막혀합니다.
동주가 완득이를 찾아와 이렇게 술까지 한잔 같이 하는 이유는 낮에 못다 한 완득이 어머니 이야기를 마저 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주는 완득이가 엄마를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성남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까지 알려줍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무감각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곁에 없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너무 클 것 같기 때문인지, 완득이는 자신에게 엄마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꾸만 부정하려고 합니다. '어머니 젖을 먹고 컸을리가 없다'고 우기는 완득이와 '태어나자마자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큰 줄 아냐'며 일갈하는 동주.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진 완득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영화 <완득이>(감독 이한)는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살아가는 열여덟 살의 반항아 완득이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막무가내 담임교사 ‘동주’를 통해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영화 속에는 완득이의 인생을 바꾼 인상적인 음식 세 가지가 등장합니다.
첫째,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되는 즉석밥은 완득이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완득이보다 동주가 즉석밥을 더 많이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알고 보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자꾸 숨으려고만 하는 완득이를 세상 밖으로 자꾸 끄집어내려는 동주의 독특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완득이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꼭 필요한 음식이 즉석밥인 것처럼, 완득이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학생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동주 선생 같은 멘토입니다.
둘째, 영화 후반부 완득이네 집 잔칫상에 올라왔던 폐닭, 즉 노계(老鷄)는 가격은 싸지만 고기가 너무 질긴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기를 꺼려하는 닭고기입니다. 하지만 완득이 아버지처럼 폐닭을 즐겨 먹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폐닭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긴 하지만, 쫄깃한 식감과 진한 국물 맛을 제공하는 엄연한 닭고기가 폐닭인 것처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긴 하지만 완득이에게는 누구보다 크고 근엄한 존재이자 강한 근성과 생활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엄연한 가장이 바로 완득이 아버지입니다.
셋째, 완득이네 잔칫상에 오른 음식 중 가장 특별했던 시니강(sinigang. 고기, 생선, 해산물, 채소 등으로 국물을 내고, 타마린드, 레몬, 칼라만시 등의 즙으로 신맛을 더해 쌀밥과 함께 먹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음식)은 한국 사람들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는 것처럼 필리핀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일상적인 국물요리입니다.
하지만 완득이에게 시니강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그것이 필리핀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해준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완득이에게 중요한 것은 필리핀 음식이냐 한국 음식이냐가 아니라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매일 같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차려주는 밥과 반찬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즉석밥 같은 선생님과, 폐닭 같은 아버지와, 시니강 같은 어머니가 한바탕 신나게 어우러지는 잔칫집에서 완득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활짝 웃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