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2017)
빨갱이, 배 안 고파?
우리 밥 먹고 가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북한 정찰총국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간 곳은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유명한 국숫집입니다. 곽철우의 군대시절 단골식당인 국숫집에서 남북한의 두 철우는 처음으로 식탁에 마주 앉게 됩니다.
식탁에 올려진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곽철우가 먼저 맛깔스러운 비빔국수를 한 입 가득 후루룩후루룩 흡입하는 걸 보는 엄철우는 군침을 흘리면서도 왠지 눈치만 보고 앉았습니다. 남쪽 정부 공무원이 사주는 국수를 먹어도 나중에 뒤탈이 없을까 걱정되는 것이죠. 하지만 얼른 먹으라고 권하는 곽철우에게 별다른 꿍꿍이가 없어 보이자 일단 국수는 먹어두기로 하는 엄철우. 눈앞에 놓인 잔치국수의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 본격적으로 입맛이 돌기 시작합니다. 수갑 찬 불편한 손으로도 허겁지겁 국수를 뚝뚝 끊어먹는 엄철우. 그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진 곽철우는 엄철우의 결국 수갑 한쪽을 풀어줍니다. ‘우린 같은 편’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두 명의 철우는 나란히 앉아 한 손엔 수갑을 찬 채 국수를 먹게 되는데요, 정신없이 국수를 먹는 엄철우가 순식간에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웁니다. 그리곤 좀 아쉽다는 듯 눈빛으로 곽철우를 바라보는데요, 두 철우는 이젠 눈빛만 봐도 제법 통하게 된 걸까요? 곽철우는 주인장에게 잔치국수 하나와 만두를 더 시켜줍니다.
얼마나 허기가 졌는지 두 그릇째 국수도 순식간에 뚝딱 비우고 세 그릇 째 국수를 먹으려는 엄철우를 보고 있자니 곽철우의 얼굴에 흐뭇한 아빠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러자 엄철우는 명색이 북한 정찰충국 최정예요원인데 너무 허겁지겁 국수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한 듯 구구절절 변명을 해댑니다. 자기는 개성에서부터 며칠을 굶었다는 둥 남쪽에 내려와 조사받을 때 엄철우를 주려고 사 왔던 햄버거를 곽철우가 다 먹어치우지 않았냐는 둥 말이죠. 정작 곽철우는 아무런 구박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데요, 무진장 배가 고프기도 했겠지만 엄철우가 왜 이렇게 국수를 잘 먹나 했더니 우리는 ‘잔치국수’라고 부르는 이 국수는 사실 북한에 있을 때 엄철우가 즐겨 먹던 ‘깽깽이국수’였습니다. 남쪽에선 잔치국수라 불리는 깽깽이 국수를 두 그릇은 더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전쟁 날지도 모르는데 ‘피난 안 가냐’는 곽철우의 질문에 대한 식당 주인의 한숨 섞인 대답을 듣자 엄철우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에 두고 온 엄철우의 가족들은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곽철우의 가족들에게도 전쟁이 위험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두 명의 철우는 가족들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든 전쟁만큼은 반드시 막아내야만 합니다.
영화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북한 쿠데타 발생 직후,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위기상황을 그린 액션 드라마입니다. 영화 후반부 핵전쟁을 막기 위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에 극 중 동명이인인 두 주인공의 한자 이름이 마침내 밝혀집니다. 북쪽의 철우는 ‘무쇠 철(鐵)’자에 ‘동무 우(友)’자를 쓰는 철우이고, 남쪽의 철우는 ‘밝을 철(哲)’자에 ‘집 우(宇)’자를 쓰는 철우입니다.
그런데요,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철우인 것은, 이 영화의 제목인 <강철비>를 한자로 쓰면 ‘철우(鐵雨)’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한자와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발음은 모두 ‘철우’인 두 남자가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시무시한 강철비 ‘철우’를 막아내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같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두 사람이 결국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남한에선 ‘잔치국수’라 부르고, 북한에선 ‘깽깽이 국수’라고 부르지만, 결국은 그 국수는 같은 음식인 것처럼, 남과 북의 두 철우가 결국 같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가슴속에 같은 단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화(平和)’
이 두 단어는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같은 글자를 쓰고, 같은 의미로 쓰이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