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남긴 각인
두 시간 동안 자꾸 뜨거워져 읽고 멈추길 반복했다. 그의 되살리기와 나의 되살리기가 교차하면서 온도가 높아졌다, 식었다 하며 읽었다.
67쪽 분량. 섹스 묘사 한 번 없는 포르노 같은 글이었다. 마치 그 속에 같이 있는 듯 같이 숨이 가빠졌다. 가쁜 숨을 내쉬며 읽은 글은 오랜만이었다.
약속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p13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p26
그곳, A와 만나기 바로 전에 내가 묵었던 장소에 있었던 물건들을 퍼내듯이 한 가지씩 열거했다. 그렇게 하면 과거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p49
살아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p59
연애, 데이트, 썸. 그런 걸 10대부터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지금까지 해왔다. 모두 사랑들이었을까? 같은 형태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시기,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만나는데 같을 리가 없다.
<단순한 열정>은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지만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내가 과열되어 잠시 멈출 때는 상념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도 품었었던 열정, 욕망의 시기를 되살렸다가, 죽였다가, 그렇게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나를 피나게 하는 선인장이여도 나는 당신을 안을래, 라는 일기를 썼던 때였다. 실제로 피가 나는 듯이 온몸이 아팠다. 그때 그 마음은 뭐였을까, 늘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저 단순히 열정이었구나 싶다. 제목 그대로 단순한 열정. 덧붙여 뭐해.
유해했다. 나는 그 열정을 유해하다고 선고 내렸고, 다시 없길 바란다. 그 경험은 사람과 관계 맺음에 각인을 남겼다. 거리를 유지하며 다치지 않으려 솔직함을 깊은 상자에 밀어 넣었다. 지금도 늘 고민하고 검열한다. 그러기 싫은데, 그렇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은 단순하게 벅차올랐던 열정의 시기가 있었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게 그 열정은 유해했으나 필수 관문같은 시간이었다. 지난 시절에는 의미부여나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도 없겠다 싶어졌다. 그때는 그때의 사치대로, 필요대로 남겨지면 충분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생각났다. 서래는 자신이 죽음으로 해준에게 영원한 미제로 남겨졌다. 글을 쓰는 그녀도 이 글로 A을 영원히 각인하려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런 시간 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p36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