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Bom Apr 02. 2017

실패했던 사랑이야기도.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름 최선을 다해 실패했던 당신과 나의 러브스토리.


알랭 드 보통은 <불안>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사랑의 철학자라고 불리지만 정작 난 사랑이야기는 처음 접하게 된 거다.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였고, 좋은 후기가 많아 궁금했다. 막상 쉽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았다. 사랑을 일차원적으로 보지 않는 시각에 놀랐다가 새삼 놀랄 것도 아니라며 웃었다가.

누구나 알거나, 느꼈거나 또는 아팠던 사랑에 대한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냈다. 그렇구나, 이래서 많이 사랑받았구나 싶었다.


처음 이야기는 우리가 낭만적이라 부르는, 그 시작에서 출발한다. 라비와 커스틴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거기까지. 우리는 그때를 ‘로맨틱한 날들이었지’라며 회상한다.

맞아, 너무 짧다. 그 시기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그 순간만을 곱씹으며, 또는 기다리며 산다. 내 영혼의 짝은 너였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이 드는 그 순간을. 이 시기에 용암처럼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은 뜨거움의 고통마저 환희로 바꾼다. 하지만,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둘이 어떻게 만났어? 어떻게 사랑에 빠졌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이 러브스토리가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 작가는 책을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잔인하게 덧붙이는 말.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p. 14


세상의 낭만주의자들, 그러니까 사랑꾼들은 ‘뭣이라!’라고 할지도 모를 이 부분에서 난 무릎을 탁, 쳤다.

자, 우리 같이 사랑을 이야기해보자고 모아놓고는 ‘그러니까 말이야,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문제거든’이라고 말하는 용기에 감탄했다.


이후 라비 부부에게 펼쳐질 이야기는 사랑이 아닌 기술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미친 여자와 결혼했어’

라며 라비가 결혼을 후회할 때, 서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질 때, 네가 이제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을 때도 러브스토리는 계속되는 중이다.


책 마지막 즈음에 알랭 드 보통은 충격적이고 신박한 결혼 서약서를 제안한다.

“우리는 앞으로 몇 년 후에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행위가 우리 인생에서 최악의 결정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공황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것도 약속합니다.
모든 인간은 언제나 구제불능, 우리는 정신 나간 종입니다.”


정신 나간 종이라는 말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나서 킥킥 웃었는데, 실제로 결혼식에서 이렇게 했다간 양가 부모님이 뒷목 잡고 쓰러지실 지도.

그렇지만 '우리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로 시작하는 서약서보단 더 합리적이고 엄청난 자기 합리화도 없다.




상대방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거라는 착각, 내가 하는 생각을 함께 하고 있다는 기대, 앞으로도 우리는 변치 않을 거라는 오만에서 벗어나서야 라비는 이제야 완전히 결혼할 준비가 됐다고 느끼게 된다. 


책에선 일반적인 경우로 ‘결혼’이라고 했지만, 사실 연애의 결말, 사랑의 완성은 결혼은 아니지 않나. 내가 하고 있던 사랑이 실패했어도 그 상태로 그 사랑은 완성형인 게 아닐까.

나와 당신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던 사랑의 최종본.

이별 후 펑펑 울면서 처음 전화를 걸어 만난 친구가 내게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슬픔을 겪어 내는 건 결국 너 혼자 몫이겠지만, 니 잘못은 하나도 없어. 자기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냉소적이었던 난, 오히려 이별 후 낭만에 대해 기대가 커졌다. 완벽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낭만적일 때 내 열정을 쏟아부어야, 마음을 계속해서 지켜나갈 연료가 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