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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Sep 27. 2020

그리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편지 왔어요. ep2

편지 왔어요, 편지 소개. 편지 발송인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 순례길 이야기, 캠프힐 봉사활동 이야기, 직장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연애 이야기, 우정 이야기...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일상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타인의 일상이 은근히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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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팍팍한 삶에, 광고 메일에 허덕이기만 하다가 편지를 받았더니 좋더라고요. 일요일마다 이 편지엔 그런 힘이 함께 발송되면 좋겠습니다. 내일 다시 살아갈 힘, 그래서 다음 계절도 두 팔 벌려 맞이할 힘.                 


편지 쓰기를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만 마구 읊어대는 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기억이야말로 종교나 믿음 뺨치는 걸 겁니다. 꼼꼼히 읽어도 삶이나 인간이 쉬워지지는 않습니다만 편지를 읽을 때만큼은 잠시 다른 차원에 온 것처럼 행동해보기. 도심에 위치한 숲이 얼마나 평온한지, 아는 사람은 다 알더라구요.



여행만 다닐 때가 있었지요. 자유라는 명목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 돌아가기 무서워서, 빨리 현실에 기죽고 싶지 않아서… 아마 도망을 다닌 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때의 경험들이 살아가는데 엄청난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몸뚱아리 만 한 가방을 메고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 내렸던 새벽, 빛이란 빛이 모두 사라진 시골길 위에서 목장의 울타리에 의지해 걷다 소의 혓바닥을 만졌던 날… 두려움은 혼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줬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제게 남은 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말보단 '나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돈이 없는 제게 싼값으로 머물기엔 호스텔 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만 원 정도면 씻고 잠들고, 운이 좋다면 이전 여행자들이 남겨두고 간 파스타 면으로 허기까지 채울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여행하는 젊은이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랄까요. 답례로 두고 올 수 있는 거라곤 믹스 커피나 동서 보리차 같은 것이었지만 뭐 어때요. 차 한 잔이 식사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에게는 또 도움이 됐을지 모르죠. (자기 합리화는 이렇게 하는 것...^^) 주머니에 여유가 생길 때면 에어비앤비라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단 며칠이지만 여행지의 로컬이 되는 기분에 취해 본 사람이라면, 24시간을 통째로 이국적으로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서비스만큼 근사한 게 없죠. 숙취에 부스스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창 밖을 보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시장을 여는 소리, 종소리, 종소리의 메아리… 나도 그 도시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은근히 자랑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이 멋진 배경에 나도 한몫하고 있다는 뿌듯함이었겠죠. 그러다 너무 멋진 공간을 만나면 밖으로 나다니기도 싫더라고요.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던 에어비앤비의 광고 문구가 무진장 성공한 걸 보면 여행이 삶이고 곧 삶이 여행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니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기억 속의 장소에 있었나 싶을 만큼요. 지금이라도 당장 문을 벌컥 열면 그 나라의 국기가 펄럭거리고 노천의 펍과 카페가 눈에 들어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하루 이틀만 지나면 익숙했던 장소에 빠르게 적응해나가게 되죠. 그러다 일상에 권태가 올 때쯤 여행에 관한 기억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썼던 메모나 일기 같은 것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구매했던 코딱지만 한 트램과 지하철 티켓, 햄버거를 먹고 받아두었던 영수증 같은 것들이 책 사이에서 툭툭 떨어질 때마다 그때의 감정들이 코를 찡하게 지나갑니다. 나의 이기심, 슬픔, 연약함, 절망, 기쁨, 환희, 친절, 절망... 느꼈던 모든 것들이 휙 하고 파노라마처럼요.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우리가 늘 안녕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지금 디디고 있는 장소에서 늘 좋을 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그렇게 여행하고 오세요. 무언갈 발견하러 떠나는 것도 좋지만, 발견할 무언가를 찾아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어머니의 김밥을 한 손에 들고, 사랑하는 사람의 배웅을 등지고, 잠자리 누울 때마다 그리웠던 그 곳에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다음 주도 근사한 여행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2020. 09. 27

김민수 드림








추신: 일기장이나 메모장을 뒤적거리다 과거에 썼던 것들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모르겠고, 늘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살아가던 제가 쓴 메모인데 오늘 다시 읽으니 무척 힘이 나기에 편지에 함께 실어보냅니다. 


이제 조금 알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낼 수 있고 고독을 사랑할 수 있으며 나만의 장소를 찾고 완전히 고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조그마한 친절이 얼마만큼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는지. 나를 믿는 것이 무엇이고 내 한계가 어디인지. 또 내가 얼마나 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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