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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Mar 25. 2020

나는 이제 큰일 났다

'작은 마음'의 온라인 강의 적응기_코로나-19 대학교 풍경


'코로나-19'의 여파는 교육계에도 미쳤다. 초중고교의 개학 연기가 발표되었고 대학들도 개강을 미루고 몇 주간의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여 운영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2주간의 온라인 강의 실시에 이어 한 주 더 온라인 강의를 하겠다는 발표가 났다.


좀 곤란해졌다. 평소에도 인터넷 강의보다 현강을 선호한다. 강의실 내에서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면대면 상호작용으로 얻을 수 있는 교육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전공은 실험 실습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혹 온라인 수업의 충실도를 체크하려 추가 과제를 주시는 교수님도 계시지만 내가 원한 학교를 내가 벌어서 다니다 보니 학습량이 느는 일에는 도리어 감사하게 된다.


문제는 온라인 강의가 교수님 녹음 혹은 녹화영상이 아닌 실시간 강의로 진행될 때 일어난다. 한창 컴퓨터에 내장된 캠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에도 캠 한 번 켜보지 않았고, 그 흔한 카카오톡 프사도 찍지 않았는데 실시간으로 내 얼굴이 공유된다니! 전 수강생에게 내 얼굴이 공개되고 더불어 마이크를 거친 희한한 목소리까지 공유해야 하니 수업 중에도 몇 번씩 얼굴이 달아오른다. (사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의실 안에서 얼굴을 보는 것과 동일한 얼굴일지언정 카메라로 잡히는 것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도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실시간 강의 중에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토론에 참여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향형과 외향형의 특성에 대해서 글을 아주 잘 쓰는 작가님이 계시니 특성을 많이들 아시겠지만, 나는 지극한 내향형이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브런치에 쭉 글을 쓰는 이유도 말을 하는 것보다 글이 편했고, 내가 말을 할 때보다는 글을 쓸 때 들어주는 사람이 좀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극한 내향형인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특히 학교를 좀 오래 다니다 보니 강의실에서 손들고 말할 수 있는 스킬 정도는 키워 놓았다. 토론을 안 할 수가 없는 대학원 수업이어서 견고한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하는 법도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질문이나 토론 내용이 하염없이 길어지거나 내용이 산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삐걱거려도 잘 굴러가던 '수업 중 말하기 스킬'은 후천적으로 개발한 것이어서 환경을 매우 많이 탄다. 아무리 하고 싶은 얘깃거리가 생겨도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상황 맥락을 따지고 교수님의 표정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 '말을 해도 괜찮은 환경'이 될 때 '입을 턴다.' 내향형의 특성인지 정서가 민감한 사람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교수님 혹은 발제자 얼굴에 스쳐가는 찰나의 표정 변화를 구분할 수 있어서 입을 털 시점을 찾기가 용이했다. 


온라인 강의에서는 수업의 분위기, 교수님의 표정 변화,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개강을 하자마자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다 보니 전임교수님이 아닌 이상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면대면 강의를 하다 보면 상대의 말씨나 미묘한 표정, 습관, 제스처를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어 보다 적절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데 말이다.(물론 나는 상대를 관찰당하는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 그냥 '마음이 작은 사람'으로 오래 살다 보니 익힌 생존 스킬이다)


학교라는 환경에서 살아남아 보겠다고 익힌 후천적 스킬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인간은 닥치면 하게 되고, 또 교육을 통해 발전,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니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자신은 없다. 그저 어서 이 사태가 진정되어서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말 시급한 현장에 계신 분들께는 제 글이 배부른 자의 넋두리로 생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계신 자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분투하는 분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맡으신 일을 하시는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한 사람의 기록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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