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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Mar 03. 2020

어떤 시선

사람들은 장애인을 함부로 시선을 줘도 되는 사람으로 여긴다.

"소설에서 태어난 에세이" 매거진을 새로 발행합니다. 소설 속에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문장들을 발췌해온 지 반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어떤 문장은 그 자체만으로 울림을 주었고, 어떤 문장은 제 안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져왔습니다. 문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책 속 문장을 제시하고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 경험들을 풀어내려 합니다. 개별 문장에서 비롯된 생각들이므로 소설 전체의 맥락과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윤은 장애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간섭과 가르침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파인 다이닝』, 황시운 작가의 「매듭」에서)     



저 문장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간혹 사람들은 장애인을 함부로, 아니 노골적으로 시선을 줘도 되는 사람으로 여긴다.


버스 안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에 등록된 모든 인물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로지 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코로나 조심하세요. 마스크 꼭 끼고 다니셔야 해요.” 남자의 통화는 정거장 열 개를 지나치고 자신이 내릴 곳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큰 목소리로, 떠나가라.  

   

처음에는 공중도덕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가만 듣고 보다 보니 공중도덕이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장애가 있는 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말투나 행동에서 드러났다. 남자는 장애인 보호 작업장 소장님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코로나를 주의하시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귀는 좀 따가웠지만 남자의 마음씨가 곱다고 느꼈다. 남자는 최선을 다해서 주위 인물에게 위기상황에서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그통화를 빨리 끝내려는 상대도 있는 듯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당부했다.  


‘코로나를 조심하고 마스크를 꼭 끼고 다니시라.’는 당부사항은 남자의 의식세계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을 그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때문에 불쾌감이 들었다. 남자가 통화를 하는 동안 30초 간격으로 굳이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 시선. 그 안에서 내가 성인군자였고 특별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귀가 따가웠고 그 소동에 처음에는 시선이 갔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위에서 '남자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라고 적었지만 사실 조금 짜증도 났다.    


그 남자의 행동을 제지할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면서 끊임없이 노골적으로 시선을 주던 그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 시선이 단순히 ‘눈총’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일종의 공격행위 같았고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 느껴졌다. 나란히 앉은 탓에 그의 시선을 나도 함께 느껴야 했는데 그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까지 함께 혼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남자는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이었으니, 눈총을 줘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그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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