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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night 왕송희 Oct 18. 2019

지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방법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술집 -쿠와바라 쇼우텐

                                                       

    

강화도의 관광코스로 유명한 커피숖이 있는데, 방직공장의 내부를 그대로 인테리어로 사용한

조양 방직이라는 곳이다.

자연스러운 느낌과 오래된 소품들의 매력이 더해져 주말이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꽤 먼 곳에 있는 이곳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낯선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창고로 쓰이던 곳이 커피숖이 되거나 일반 주택이던 곳을 베이커리로 만드는 등 전혀 다른 용도로 쓰여지던 곳에 F&B공간을 만들어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공간은 이질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런 공간들이 이목을 끌고 사랑을 받고 있다. 


몇 개월 전 방문한 도쿄 고탄다의 쿠와바라 쇼우텐(KUWABARA SHOUTEN)은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공간의 용도를 바꿔서 영업을 하고 거기에 더해서 예술적인 감각을 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4대째 주류업을 하고 있는 쿠와바라 가족의 주류 창고였던 곳을 일종의 편의점 개념인 술을 사서 그 가게에서 마시는 매장으로 바꾸었다. 

조나가사키 건축의 홈페이지 사진 입니다.

고탄다 지역은 상업지역이 아니라 사무실이 많은 곳이라서 매장을 찾아가는데 이런 곳에 술집이 있을까 싶을 만큼 소박한 골목 안에 다른 창고와 주차장 틈에 자리하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간판도 없어서 문 앞까지 가서야 우리가 찾던 선술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앞에 서니 간판이 있었는데 매장의 주소를 담백하게 써놓았다.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50대로 보이는 남자분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도 몇몇 보였고, 양복을 입은 사람부터 작업복을 입은 사람까지 고객의 층도 다양하다. 어떤 힘이 이렇게 다양한 폭을 수용할수 있는 매장을 만들수 있게했을까?

조 나가사키 건축의 홈페이지 사진 입니다

문을 열고 매장을 들어서니 밖에서 본 이미지보다 훨씬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매장의 크기가 작아서 실내가 한눈에 읽힌다. 90m 2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군더더기는 다 걷어 내고 본질만 남겨 놓은 느낌이 들었다. 

4m가 넘는 거대한 술 보관 냉장고와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주방, 잔술을 따라 주기도 하고 계산을 하는 카운터,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단순하다. 하지만 있을 건 다 있고, 동선은 단순화돼서 일하는 인원도 많이 필요치 않은 기능적이지만 당장이라도 힙스터가 뛰어나올 것 만 같은 분위기의 잔술집이 되었다. 


이 공간의 변신을 주도한 4대 손으로 운영을 맡고 있는 쿠와바라 코우스케는 예술 기획자 출신의 경험을 살려서 공간이 변화하기 1년 반 전부터 매장에서 예술과 술, 요리에 관한 워크숍을 개최하고 이를 통해 실험 및 피드백을 반복하면서 가게의 콘셉트를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간 기획자인 준지 타니가와 와 차근히 리뉴얼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창고는 100년 된 곳이기 때문에 처음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한데, 건축을 맡은 조 나가사카의 말에 의하면 기존 술 창고의 강철 선반, 창틀을 기존 상점 정면, 바닥, 벽 및 천장에 가능한 한 많은 곳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창고를 개조한 술집인데 콘셉트가 좋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런데 공간에 머무를수록 술 저장 냉장고의 디테일이나 가구의 디테일 물건을 진열한 선반에 올려진 소품, 소품을 비추는 조명등이 보통사람이 설계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알아보니 블루보틀을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한 조 나가사카가 설계를 했다.    

주변이 창고가 많은 지역이라 조용하고 음습한 기운을 바꾸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는데, 가장 안쪽의 화장실의 디자인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채도가 높은 노란색으로 마감된 벽체는 청결한 이미지와 함께 화장실이라는 곳이 갖게 되는 습한 느낌을 쾌적하게 바꿔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타일로 마감하는 화장실 벽면을 에폭시로 마감을 해서 타일보다 더 밀도가 높은 청결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배관을 노출하고 감도 좋은 위생기기를 사용해서 심미적인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았다. 

천정에 등을 사용하지 않고 벽등을  콘센트로 전원을 사용한 점은 실용적 이면서도 

쿨하다. 또 주류를 보관하는 냉장고 크기도 크지만 외부에 스틸 앵글로 덧대어서 홀에 있는 앉는 좌석과 음식을 진열하는 선반의 디자인과의 통일감도 있어서 작은 공간이 정리되어 보이게 한다. 


앞서 말했듯이 주방의 크기가 매우 작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주방기물의 크기를 미리 대입해서 작업대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고, 재질도 청소가 쉬운 스테인리스를 써서 관리가 쉽게 했다. 주방이 작은 이유는 가족끼리 운영을 하기 위해서 식당을 운영해 보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안주를 메뉴로 구성했기 때문인데, 이런 운영계획을 미리 세워서 설계 단계에 반영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주방을 보면 냉장고가 기둥과 작업대 사이에 꼭 맞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디테일들이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내부 인테리어가 완성되었을 때 엉성해 보이지 않는다.    

조 나가사키 건축의 홈페이지 이미지 입니다.

4대에 걸친 전 가족이 설계에 참여하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서 인지 30여 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빈틈이 없어 보이면서도 시원해 보인다. 낡은 빈 벽은 비워서 미술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다양한 계층이 찾는 이 자리가 동등하게 술을 즐기는 것처럼 예술작품도 동등하게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서 먹는 자리의 테이블은 술 박스를 바퀴 달린 선반에 올려 기능과 변화를 쉽게 했는데 철저히 실용을 위주로 한 디자인이다. 예술과 실용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혼자여도 구석구석 예술 작품들과 도란도란 사람의 말소리 그리고 혼자여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작고 간소한 테이블은 혼자인 사람의 마음을 슬쩍 열수 있게 한다.


공기를 바꾼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까? 오래된 창고의 약간의 우울감과 세월의 때를 정리하고 걷어 내면서, 1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공간은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고 그 조용한 골목에 작은 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가끔 국내의 프로젝트에서도 오랫동안 운영해 오던 노포를 리노베이션이나 리 브랜딩 하게 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사실 그럴 때 가장 조심스러운데, 고탄다의 쿠와바라 쇼우텐 매장을 보며 생각이 정리되는 듯했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성을 존중하고 주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헤리티지 Heritage를 간직한 매장으로 유지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 위에 기능과 현대적 감성을 더 해서 브랜드의 값어치를 올리는 것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의 브랜드 리노베이션 작업이 될 것이다. 


(*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생기기 전에 다녀온 곳인데 불편할까 올리지 않다가,매장이 재미 있어서~살짝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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