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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Nov 23. 2022

엄마와의 하루 세 끼




“딸..엄마 암이래.”

거실 한 가운데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어느 평일 오후.


 그렇다. 얼마전에 겨드랑이에 혹이 만져져 산부인과에 방문했던 엄마가 며칠이 지난 후 받은 전화에서는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항상 강하고 씩씩하던 엄마였기에 이런 통보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데, 앞이 깜깜하고 가는 내내 눈물이 막 났다.

아픈데도 어쩜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으신 지, 엄마는 자책하다 절망하다 분노하다 서글펐던 감정으로 뒤덮인 하루를 뒤로 하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보려 노력하셨다.


 유방암 중에서도 악성암을 선고받은 엄마는 결국 수술에 앞서 16차의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우리집 식탁의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형형색색 입맛을 돋우는 시리얼 대신 유기농 사과를 잘게 깎아드리고, 스팸 대신 두부를 투박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드린다. 유독 사람 냄새 나는 술자리와 외식을 즐기시던 엄마의 식사 시간에는 어딘가 비어 있는 것만 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해드린 음식을 곧 잘 드시는 엄마를 보며 안도하고, 또 한 번 엄마의 힘듦을 가늠해본다.


엄마의 투병으로 인해 아빠, 동생과 나 우리 가족의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우리 가족은 줄곧 늦은 식사 자리를 갖곤 했었다. 야식에는 또 술이 빠질 수 없기에 가족의 화목을 명분으로 술자리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의 투병을 지켜본 후에 우리 가족은 술을 자연스레 멀리 하게 되었다. 엄마는 종종 “무알콜로 한잔할까?”라며 살며시 농담을 건네시곤 하는데, 그러한 엄마의 농담으로 얼어붙었던 우리집의 분위기는 활기를 띈다.



 매일매일 배 멀미를 하는 듯한 울렁거림과 몸이 땅에 달라 붙는 듯한 고통, 갑자기 80세로 점프한 듯한 엄마의 나약해진 체력.. 한끼라도 더 잘 챙겨 먹겠다며 나의 정성을 맛보시는 엄마의 노력에 내 형편없는 요리 실력도 설 곳이 생겼다. 입 맛이 없는 와중에도 엄마가 유독 잘 드시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카레와 브로콜리 스프다. 엄마는 어느 날 저녁, 나의 투박한 솜씨로 만들어드린 카레를 맛보신 후로 카레를 줄곧 찾으셨다. 항암치료 중에는 모든 음식을 데쳐 먹어야 하고, 간을 싱겁게 해서 먹어야 하기에 슴슴한 음식만 잡수시던 엄마는 자극적인 강황의 맛에 매료되었나 보다. 색색깔의 채소를 잘라 넣고 담백한 닭 가슴살을 잘라 넣어 보글보글 끓인, 노오란 빛깔을 띈 카레는 엄마의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되었다. 일본 카레 말고 꼭 노란 카레여야만 한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시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속이 안 좋을 때마다 엄마의 속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브로콜리 스프는, 엄마가 마음이 불안할 때면 드시는 일명 엄마의 ‘신경안정제’가 되었다.



 “딸, 엄마 자장면 한 그릇만 먹으면 안 될까?”


엄마는 이따금씩 자극적인 음식을 찾으신다. 평소에는 몸에 안 좋다면서 입에도 안 대셨는데 말이다. 티 없이 맑은 표정으로 아이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갈구하는 엄마에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이럴 때마다 난 괜히 엄마를 슬프게 만든 것 같아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게 된다. 가끔씩 찾아오는 엄마의 칭얼거림에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엄마가 힘들어하실 때마다 함께 찾아갈 외식 장소 한 군데를 고르게 되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부터 줄곧 함께 방문하곤 했던, 엄마의 추억이 가득 담긴 만둣국 집. 고기 대신 두부와 채소로 만두속을 가득히 채우고, 그 위에 담백한 국물을 끼얹은 이북식 만둣국이다. 이북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가 어릴 적 우리에게 해 주셨던 손만두를 연상케 하여 더욱 믿음직스럽다. 엄마와 내가 간혹 배불리 먹고 싶을 때 함께 시켰던 빈대떡은 고사하게 되었지만, 만둣국 한 그릇만으로 엄마를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릇 아래에 가라앉은 고춧가루 양념을 살살 저으면 알싸한 고추향이 올라오는데, 엄마는 이에 니글니글 했던 속이 뻥 뚫렸다며 좋아하신다. 부르튼 입술로 만둣국을 호호 불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하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 엄마를 위해 40년째 골목을 지키고 있는 그 만둣국 집은 엄마의 학창시절 추억을 회상케 하고, 만둣국 한 입에 엄마의 참아왔던 식욕을 터뜨리게 하고, 창문 자욱이 김이 서릴만치 따스한 그 집의 온기는 엄마의 쓰린 마음을 위로한다.


“딸, 이거 먹으니까 엄마 다 낫는 기분이야.”


마음이 안도된다. 그토록 자장면이 먹고 싶었던 엄마도, 그런 엄마를 보며 속상했던 나도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참 고마운 만둣국. 불편했다가 안도했다가 마음이 3개월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나는 엄마가 행복하게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끝으로, 오늘도 자신에게 소중한 한 끼를 선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는 엄마의 투병 이후로, 전에 즐기던 술과 화려한 안주거리보다도 따뜻하고 소박한 밥 한 끼가 더 소중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고작 25살의 나이지만, 나를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하는 첫 걸음은 바로 따뜻한 식사라는 것이라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동안 귀찮다고 미뤄왔던 요리를 배울 것 같다. 무뚝뚝한 탓에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툰 딸이지만, 따뜻한 한 끼로 나의 사랑을 가득담아 표현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해드리며 엄마를 위로하고, 정성 들여 차려 놓은 밥 한끼로 나 또한 살아간다. 한 숟갈, 한 숟갈, 힘겨운 술을 뜨시는 엄마를 보면 또 주책 맞게 눈물이 나려는 걸 참으면서도.


우리 네 식구는 오늘도 엄마의 투병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더 행복한 한 끼를 선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건강한 밥상들이 모이고 모여 엄마의 완쾌를 돕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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