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박상
“남자들은 가방 없이 다녀서 편한데 여자들은 핸드백 들고 다니기 귀찮지 않아?”
언젠가 만나던 친구에게 질문을 들은 적 있다. 가방 없이 다니면 편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만사 귀찮으면 주머니에 핸드폰과 카드지갑, 립밤만 넣고 출근한 적도 있었으니까. 어깨가 가벼웠고 손목에서 덜렁거리는 촉감이 없어 좋았다. 그래도 오래가진 않았다. 워낙 가방에 많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성향 때문이었다.
지갑, 책, 물티슈, 파우치, 빗, 간식거리, 이어폰 등등 갖고 다니는 게 늘 많아서 가방도 컸다. 그래서 내가 가방을 드는 이유는 갖고 다니고 싶은 게 많은 내 성향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친구의 질문에 뭔가 모순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남자는 갖고 다니고 싶은 게 없고, 여자는 대체로 많다는 건가?
그다음 떠오르는 건 화장이다. 남자는 화장을 안 하니까 들고 다닐 게 별로 없고, 여자는 화장을 하니까 갖고 다니는 게 많다? 그런데 그것도 모순이다. 왜 여자만 화장을 해야 하고, 애초에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내 대답은 대강 이랬던 기억이다.
“귀찮아도 갖고 다닐 게 많아서 들고 다니는 거지. 남자들도 그냥 다니지 말고 화장도 좀 하고 휴지 정도는 챙겨서 다니면 좋겠네.”
사실 휴지를 들고 다니기 위해 가방을 갖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괜히 뾰로통해져서 공격적인 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요즘 말로 긁혔다고 해야 하나. 가방을 갖고 다니는 나, 실용적이진 않아도 작고 예쁜 가방을 사는 나, 가방에 넣을 물건이 항상 많은 나. 이 모순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이번에 읽은 <친애하는 슐츠 씨>에는 내 오랜 기억과 관련된 글이 나온다. <여자 옷과 주머니> 챕터에서였다. 오래전부터 남성의 옷은 끊임없이 ‘발전’ 해왔고, 남성의 옷에 달린 주머니는 고귀한 계층에게만 허용됐으며 그 안에 만년필, 줄자, 칼, 라이터 등을 갖고 다녔다. 하지만 여성은 그런 물건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는 존재였기에 옷에 주머니가 많은 필요가 없었고 시대의 유행이 적용된 드레스만 입어온 터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매가 넓어 이런저런 물건을 넣고 다녔다는 우리 한복이 더 평등한지도.
미국에서 여군을 만들었을 때는 똑같은 군인인데도 남성군인과 달리 치마를 입고 주머니 덮개만 있을 뿐 실제 주머니는 없었다. 미군에서는 여군이 남자와 똑같은 군복을 입을 경우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오해를 살 것을 염려해 여성스러운 군복을 입히고 주머니에 물건을 넣은 옷을 입으면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주머니의 덮개만 달아 군복을 만들었다. 여군의 옷은 실용성보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써 탄생했다.
진짜 문제는 남성과 여성 중 남성만이 기능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입게 될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고 그걸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 “옷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했던 페미니스트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의 말이 맞다면 주머니가 없는 여자의 옷은 여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게 주머니 문제의 핵심이다. - 123p
몇 달 전 패딩코트를 하나 샀다. 주머니 덮개가 있어서 똑딱이를 열어보려 했는데 하도 안 열려서 보니 덮개만 달려 있었다. 속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거면 덮개를 붙여놓지나 말지, 혹은 여자들은 옷 주머니가 많이 필요 없다는 생각하는 건가 싶어 분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왜 주머니와 가방 타령에서 번번이 속이 꼬이고 거슬렸는지 알 것 같았다. 여성을 한정 짓는 것. 여성을 보조적인 입지로 내려다보는 시선. 그러한 것에 늘 열패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 이야기 외에도 차별과 편견에 맞서 다른 각도의 시선으로 발을 내디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꽤 볼만하다. 조금 웅장한 버전의 꼬꼬무 같다.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도 든다. 내 오랜 열패감을 파헤쳐줘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