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 이정모
실컷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과학과 자연사를 설명하는 책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 가장 좋은 글은 가장 쉬운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예 같다. 평소 관심 없었던 자연사에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쉽게 풀이하는 서술방식과 지구상의 생물에 대한 따스한 애정 덕분이었다.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본다. 멸종을 앞둔 생물의 적은 개체수와 안타까운 환경을 보여주고 결론은 인간은 나쁘다, 인간은 이러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흐른다. 그 과정에서 사실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선 멸종을 꼭 나쁘게 보지만은 않는다. 멸종되는 종이 있어야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것. 과거 커다란 공룡이 살던 시대에 인간은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멸종과 탄생이 반복되면서 지구는 잘 유지되어 왔고, 그러한 자연의 흐름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어느 학교의 어느 교장 선생님이든 누군가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교감 선생님들에게 기회가 생긴다. 교장 자격을 아무리 갖춰도 빈자리가 없으면 새로운 교장이 등장할 수 없다. 새로운 게 등장하려면 원래 있던 게 사라져야 한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태계는 꽉 차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가 생태계에 빈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멸종이다.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 23p
어쨌든 인간이 잘해야 한다. 이 책은 인간이 잘못하는 부분으로 위험을 초래하고 먼 미래에 인간 역시 멸종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멸종을 통해 미래를 상상해 보는 거다. 그러면서도 모든 방면에서 지구와 생태계 보호에 맞춰 살아가야만 하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책에 나와 있듯이 인간은 다양하고 똑똑하다. 위기가 다가오면 헤쳐나가며 멸종을 늦추기 위해 애쓸 것이다. 생태계 유지와 미래를 향한 발걸음에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 인간들은 진화할 거라 믿는다.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상어처럼.
이번에 시드니에 갔을 때 호주박물관에 들렀다. 나를 슬프게 한 동물 박제들과 공룡뼈와 화석이 다량 전시돼 있었다. 단순히 신기하다!라는 생각만으로 들렀던 건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이것들을 왜 보고 있나, 하고 생각해 보면 같은 공기를 느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책 속에서나 봤던 공룡의 멸종과 다채로운 종이 실제했음을 믿기 위해 죽은 동물의 흔적과 같은 공기를 쐬고 있는 거다. 책에서 보고 아 그러는구나,였다면 박물관에서 보면 아 그동안 읽은 게 사실이었네! 가 되는 거다.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흘러간 자연사를 믿고 미래를 상상해 볼 여지를 열어준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 자연사를 알아야 할 이유다.
티라노사우르스의 거친 포효가 사라진 생태계에 아름다운 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공룡이다. 하지만 공룡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보다는 친근하고 예쁜 이름을 갖기로 했다. 하여, 지금부터 나는 ‘새’다. 새는 티라노사우루스 자리를 차지했다. 공룡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공룡의 유산은 하늘에 남아 생명의 위대한 여정을 지구에서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 2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