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를 펴볼까
로가 낮잠잔다. 오늘은 이렇게 느슨하게 시작한다. 브런치를 연다. 지금만큼은 침대위가 나의 데스크이며 나의 오피스다. 아기가 잠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는가.
이곳 엄마들의 만남의 장소 홀푸즈에서 우연히 만난 비엔의 엄마는 아기가 이제 세살이라며 자기도 일을 아주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that’s how we survive.
이 문장이 어제 밤까지 기억났다. 쓴 웃음을 지으며 나와 비슷한 부류를 만난것 같아서 신기했다. 결혼 10년차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남매를 키우던 나와 이름과 나이까지 똑같은 친구가 떡케익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제 나도 내 이름 좀 찾고 싶더라” 누구 엄마 아닌 내이름을 내 일에서 찾겠다는 말인지 안다. 그런데 왜 그리 서글퍼지던지.
너. 나에게 생각의 기회를 준 문이다 너가 바로.
너가 없었더라면 난 오늘도 노호의 오피스에서 일을 하고 점심이면 늘 그렇게 샐러드를 사와 모니터를 보며 먹고 있었을거다. 그렇게 쉬크하게. 나의 싱글 동료들과 슬랙으로 채팅하며 키득키득대는 시간도 있었을거다.
난 정말 일중독자였다. 길게 오래 일했고 회사 이메일을 주말에도 체크하는 못된 습관까지 소유했던 커리어 집착형이었다.
삼개월 머터니티 리브가 끝나고 난 로의 눈을 보며 다시 돌아갈수 없었다. 그리고 일년이 훌쩍 지났고 결국은 SAHM (Staying at home mom)이 되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항상 뉴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 육아라는 분야를 더해서 써보려한다. 누군가 잠시 뉴욕에 아기와 함께 머물게된다면 뉴욕은 엄마로서도 즐기기 충분하다는걸 보여주고 싶다. 아니면 간접경험이라도. 아 뭐든지 좋다.
로는 오늘 낮잠을 두번 잔다. 옆으로 누워자는데 그건 나를 닮진 않았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아는 동생의 둘째 임신을 축하했다. 부모님이며 대학생 시터까지 도움을 받으면서도 힘든데 언니는 오죽할까라는 말에 그래도 감사하며 살고있다라고 간단히 말했다. 말하지 못한게 많다. 나 시터 내니없어도 양손에 힘차게 유모차를 끌고 뉴욕에서 행. 복. 하게 잘 살고 있다고 - 여기 있지 누릴거 엄청 많다고. 못한 말. 괄호 열고 닫은 말을 여기 이곳에 펼쳐본다.
땀을 뻘뻘 흘린채 로가 일어나더니 "무..울" 물을 찾는다.